딸은 이제 꽉 찬 35개월, 곧 만 3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유아의 거의 모든 기준이 36개월이고 36개월까지는 그 어떤 고통(?)의 순간이 오더라도 무서운 훈육은 하지 않겠다는 우리 부부의 원칙이 드디어 목전에 다다랐다. “요놈 좌식~ 36개월 1일부터 두고 보자!”라고 말하곤 했지만 순간순간 욱하는 감정을 다스리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도를 닦듯 키워내서 그런지 아이는 유달리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었는데, 요 근래 들어 전에 없던 행동을 많이 해서 걱정이 되었다.
잘 먹던 밥을 먹지 않는다던지 엄빠를 깨문다던지 방방 뛴다던지 사(4)춘기가 아니라 영(0)춘기가 왔나 하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파주에서의 외근을 뒤로하고 쫄딱 젖은 몸으로 들어와 이사 준비를 하고 아이를 먹이려고 시도를 해 본다. 정말 시도뿐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아이는 또 퉤퉤. 맘에 안 들어~~~~~ 뿌앵~~~ 을 시전, 본인의 불만을 온몸으로 표출한다. ‘뭐가 그리 맘에 안 들어?’라고 물어봐도 ‘아니 그르니까… dnfkjnerjkjnec;’라고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언어로 답을 한다.
드디어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밤잠을 자야 할 시간이 도래하고 온 가족이 어둠 속에서 아이의 잠을 기다린다. 이야기 책도 들려주고 좋아하는 노래도 틀어주지만 기회만 보고 있다가 방을 탈출하기 일쑤이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말을 꺼낸다.
“얘기해 줘”
@.@? 얘기?
아이가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땐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었다.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고, 정말 궁여지책이었다. 누구보다도 말이 없던 나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애국가를 불러 주며 재운 적도 동화책을 외워서 들려준 적도 있었다. 외워두었던 동화가 다 떨어지면 이야기끼리 주섬주섬 기워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었다. 그런데 그런 시기도 어느새 지나가고 코코멜론 노래의 시대가 온 것 같았는데, 아이는 이야기를 들려 달란다. 왠지 미안해지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옛날 옛날에~”
그러자 아이가 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쑥쑥이: “쑥쑥이가 살고 있었어요”
나는 짐짓 놀랐지만 또 대꾸를 해봤다.
나: “그런 쑥쑥이는”
쑥쑥이: “옥토넛 친구들이랑 소풍을 갔어요”
나: “그런데~”
쑥쑥이: “친구 중 하나가 넘어졌어요~”
아이는 이어달리기를 하듯 나와 이야기를 꽤나 긴 시간 동안 만들어 나갔다.
쑥쑥이: “그래서 재밌었답니다. 끝~”
시계는 벌써 열 시를 넘어섰고, 아이는 어느덧 스르르 잠들었다.
요 며칠 힘들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잘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아이는 엄마랑 이야기를 통해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렇구나. 우리 쑥쑥이는 엄마랑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아이는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고 기다려 주고 있다. 내가 자기 옆으로 다가올 때까지. 항상 내가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고 키워주는 그대. 우리 쑥쑥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