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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Oct 01. 2022

동네 구석구석 문화의 전령사들이 있었다

18세, 그 시절의 음반점 아저씨들

테이프가 늘어진다는 표현이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쓰던 것인데, 시디도 아니고 음원도 아니고 테이프라는 것이 있었다. 시디 한 장이 대략 1만 원 내외이던 시절, 테이프는 그 절반의 5천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디 한 장 가격에 테이프라면 두 개를 살 수 있기에 제1의 선택지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마음대로 순서를 넘길 수 있는 시디와 달리 테이프는 모든 순간이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꼭 순서대로 들어야 했고 , A면과 B면에 듣고 싶은 노래가 각각 흩어져 있다면 한 곡 듣고 B면의 그 노래를 향해 열심히 화살표를 누르고 또 눌러야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용돈이 일주일에 약 3천 원이었던 나는 한 푼도 쓰지 않고 한 달을 꼬박 모아야 원하는 시디 한 장을 살 수 있었다. 그러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에 비해 테이프는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2주만 참으면 내 손에 원하는 음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 땡기는(?) 선택지 중에 하나기도 했다.


그 시절 학교 앞에는 문구점, 분식집과 함께 레코드점이라고 불린 음반점이 하나씩 있었다. 아이돌 문화가 막 꽃 피우던 시절이라 최애 아이돌의 음반이 나오면 음반 가게 앞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 날을 위해 무려 한 달이 아니 두세 달의 용돈을 모으기도 했다. 최애의 음반은 테이프 2개, 시디 2장씩은 꼭 사야 했기 때문인데, 한쌍은 듣는 용도 나머지 한쌍은 비닐도 뜯지 않은 채 보관용으로 썼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멤버별로 에디션이 나오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내추럴 본 덕후’인 내게 이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돌만 좋아한 건 아니어서 늘 용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한 번씩 음반점에 갈 때마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음반점 아저씨들과도 친해지곤 했었는데, 한 번은 앞서 말한 시디 한 장을 살지, 테이프 두 개를 살지 한 자리에서 깊이 고민하다(무려 30분 이상) 테이프 두 개를 들고 카운터로 갔다. 아저씨는 계산을 해 주며 “학생은 이런 음악 좋아하는구나~ 다음엔 저것도 들어봐”라고 말해주시기도 했다.


또 나는 자기 전에 라디오를 틀고 자는 버릇이 있었는데, 어느 날 잠결에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센세이션 한 음악을 하나 발견한다.

종이와 펜을 준비하고 음악의 제목을 받아 적고 다음 날 바로 음반점으로 달려갔다.

아저씨에게 종이를 내밀며 “아저씨, 이거 주세요”

다행히 음반이 있어 계산을 마치고 (아저씨의 배려로) 청음대에 음반을 넣고 들어 봤다. 가수와 노래 제목이 같다고 해도 버전이 다를 수도 있고 이름만 적어 간 것이기에 전혀 다른 음반을 산 것일 수도 있기에 꼭 확인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어제 들은 그 음악이 맞아서 둘이서 손잡고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그 음악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어서 음원으로 시장이 넘어가면서 음반점도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음반점에 가서 음반을 산 것은 지금은 없어진 을지로입구역 지하에 있던 *풍문고 안의 음반점이다. 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하나씩 구입했다. 너 하나 나 하나 사서 나눠서 같이 듣자는 취지였다. 음반을 하나씩 포장해주던 아저씨는 “요즘은 이런 음악 안 듣는데, 어린데 너무 심오한 거 아니야”라는 그 시절의 ‘라테는~’을 시전 하기도 했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음반점이 그랬고 도서대여점이 그랬고 비디오 대여점이 그랬다.

문을 열고 “아저씨~ ‘와호장룡’ 들어왔어요?”라고 물으면 아저씨는 “그거? 아직 안 들어왔어. 그거 이안 감독 거잖아(아는 척, 그러나 나름 고급 정보)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다~”.

때로는 “아저씨, ‘러브레터(이와이 슌지 감독)’ 들어왔어요?”라고 물으면 “그거 저기 세 개 들어왔는데 다 나갔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정작 ‘러브레터’가 무슨 영화인 줄도 몰랐다. 그냥 뒤집어져 있는 하얀색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대여 중에는 케이스를 뒤집어 놨었다).


이런 기억을 잊고 살았는데 어젯밤 우연히 발견한 동네책방을 들렀다 나오면서 고개를 들었더니 어디서 광채가 나는 듯 도서대여점이 눈에 띄었다. 아직도 도서대여점이 있다니… 그리고 홀연히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립기도 했다. 그 시절 나의 추억을 공유해 주신 모든 가게 아저씨들… 잘 계시지요? 보고 싶습니다.



* 그렇다고 요즘 것이 싫다는 게 아니다. 이 글을 다 쓰고 추억의 노래 한 곡을 듣고 있었는데, ai가 기억 저 편에 있던 노래 하나를 자동 재생했다. 진짜 십 몇 년 만에 들은 것 같은데, ai가 아니였다면 이 이후로도 쭉 안 들었을 것 같다. 너또한 고맙다.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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