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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Oct 03. 2022

어차피 내 인생은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는 것을

20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나

책이 나온 이후로 내 책을 많이 검색해본다. 이건 다소 뻔뻔할 수도 있는 것인데, 책이 나오면 부끄러워서 잘 검색을 안 해본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뻔뻔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안 쓰고 피드가 하나라도 올라오면 “좋아요”도 누르고(정말 좋고 감사하기 때문에)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좋아요’를 안 누르는 다른 초보 작가들이 감사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란 사람이 그렇다는 것)


그중 최근에 한 글을 발견했는데, 내 책이 도서관 ‘새로나온책’ 코너에 있길래 읽어봤다는 글이었다. 도서관이라니… 책을 처음 낼 때부터 꿈꿨던 어떤 일 하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이루어지다니. 게다가 재밌게 잘 읽었다는 말까지. 책이 세상에 나올 때만큼 기뻤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또 한 가지 생각이 나버렸다. 그건 바로 스무 살 무렵의 나.


내가 스무 살이던 2002년은 한일월드컵이 열린 해였다. 어찌어찌 들어간 대학은 적성에 오지게 안 맞았고, 코리아팀의 4강 진출로 나라가 떠나갈 듯 흥분의 소용돌이 그 안에 있었던 ‘그’ 월드컵도 열리고 있는 판에 재수를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혼자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재수는 어려울 것 같으니 몰래 반수라도 하자’라며 혼자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어찌나 어설펐는지 엄마에게 걸리고 말아 바로 반대에 부딪혔다.

학과는 적성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세상도 떠들썩하고 어차피 공부도 열심히 안 할 것 같으니 일단 학교에는 다녀보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다 금방 시간이 흘러 대학에서의 첫 여름 방학을 맞았다.

하지만 에어컨도 하나 없는 집구석은 너무 덥고 움직이기 싫었다. 나의 회심의 반수를 반대한 엄마에게 나름의 반발도 있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죽이면서 보내고 있었는데, 언제나 교양이 넘치는 엄마가 보기엔 그런 나의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던 것 같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퍼질러 자고 있는데 엄마가 문을 활짝 열며 한 마디를 하셨다.


“야! 너 알바라도 쫌 해라! 다른 집 애들은 알바라도 하러 가는데, 이건 공부도 안 하고?!!!”


엄마의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야” 한 마디는 나를 쫄게 하기 충분했지만 이에 나도 지지 않고 누운 채로 대답했다.


“엄마, 어차피 일평생 일할 건데 좀 천천히 삽시다.”


이 말에 엄마는 매우 기막혀하셨지만 그 이후론 나에게 일절 터치하지 않고, ‘응 그래 니 맘대로 살아라’ 모드를 유지하셨다. (하지만 사람 말조심해야 된다고 [?] 지금도 쌔빠지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


엄마의 말은 일견 서운했지만 일리가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도 아까워 뭘 하지 고민을 하다 도서관을 다니기로 했다. 마침 도서관이 근처에 있었고 어차피 학교도 그냥 다니기로 한 이상 책을 많이 알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도서관행은 시작됐다. 그 시절의 나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지하에 있는 비디오 대여실에서 평소에는 극장 같은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옛날 영화(트뤼포, 고다르, 잉마르 베리만, 구로사와 아키라 등)를 한 편 때린다(이건 정말 때린다는 표현이 맞다. 그냥 의미 없이 리스트에 있는 것 중에 <씨네21>에서 본 것 같다 하는 것을 랜덤으로 본 것이었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맨 위 식당에서 간편하게 한 끼를 또 때우고 2층으로 내려간다. 2층에는 주로 신문, 잡지 등이 있는데 이곳은 중년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나름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없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잡지도 보고 신문도 본다.

그리고 한 세시쯤 되면 다시 1층으로 가 대회의실 같은 곳에서 틀어주는 (비교적) 최신 영화를 본다. 그곳에선 일반 극장에서 느낄 수 없는 현장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여러 이유로 극장 나들이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노년의 어르신들이나 아이들 부모, 학생들 등.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다섯, 여섯 시쯤 되는데 그럼 3~4층으로 올라가 빌려갈 책을 고른다. 주로 대출 번호 600번대에 예술, 디자인이 많았으므로 그 코너를 한번 돌고 ‘새로나온책’ 코너까지 가 하루 3권의 책을 채워 대여를 한다. ‘새로나온책’ 코너에는 그동안 읽고 싶었으나 주머니 사정상 못 사보는 책도 많았고, 그렇게 모아 놓지 않았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책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깨.끗.한 새 책이 많았다. 내가 사진 않았지만 마치 내 것처럼 깨끗한 책을 빌려 들고 귀가하면 기분이 새 책처럼 산뜻해졌었다.


그런데 그런 ‘새로나온책’ 코너에 내 책이 있다니!!! 너무 기뻐서 피드에 그 도서관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조용히 ‘좋아요’만 눌렀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스무 살의 경민이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럼 스물다섯의 경민이는? 서른 살의 경민이는? 아니 바로 얼마 전의 서른여덟의 경민이는?


멋진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한 삶이었는데 조금만 달리 보니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 기억들을 옮긴 것뿐이었는데 운 좋게 좋은 분들을 만나 책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스무 살의 경민이는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놀듯 지냈던 하루하루가 나중에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를. 어떻게 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시간을 거슬러 찾아가 말해준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앞으로의 날들이 더 이상 무섭지가 않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분명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지금은 믿는다. 많이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스무 살의 경민이에게 나도 이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안아주고 싶다. 완벽하진 않았어도 그래도 멋지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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