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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기, 정리하기] 못하는 사람

by 김경민

나는 어려서 산만하고 까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어린애가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

일단, 물건을 너무 자주 잃어버렸다. 물건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다 잃어버렸다. 그게 새것이건 뭐건 상관없었다. 하루는 부모님이 큰맘 먹고 사주신 새 자전거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렸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하루도 안 쓰고 그 비싼 것을 잃어버릴 수 있냐며 엄마도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우산 같은 것은 맨날 잃어버려서, 아예 새 우산을 들고 가지도 않았다. 당장 잃어버려도 안 아까운 걸 손에 들었다. 오죽하면 스무 살이 넘어서 학교를 가려는데, 곧 환갑이었던 아빠가 달려와서 말을 했다.


“핸드폰! 지갑! 열쇠! 교통카드! 엠피쓰리!

아!! 전공책은 있나?”


이게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의 자식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이었다. 우산을 들고 가도 비를 맞고 돌아오는 게 나란 사람이었다. 이런 정신머리 없음은 생활을 하는 것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줄줄줄~ 물건 흘리기는 일쑤. 무엇 하나 제대로 읽는 것도 없었다. 글을 읽어도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어딘가 감각이 둔감한 게 아닐까. 스스로 내 몸 안에 어떤 부속품 같은 게 있다면 빠져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책감이 들수록 자신감은 더더욱 떨어져 산만하지만 밝기는 했던 나는 밝음마저 사라져 다크 사이드로 입성하게 되었다.

우당당탕 시끄러운데 어둡기까지 한 청소년기가 끝나고 나는 비로소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면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시끄럽고 또 시끄러운 데다가, 사고 치고 수습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했지만 일을 하면서도 맨날 사고를 쳤다. 하지만 어려서 치는 사고와 월급을 받으면서 치는 사고는 무게가 다르다. 이제는 변화할 수밖에 시기가 오고야 만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치열한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을 시작하면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많다고는 할 수 없어서 작은 습관부터 고치기로 했다. 미리 계획하고 그 계획을 잊지 않도록 계속 메모를 했다. 메모를 지우며 일을 해나갔다. 그렇게 쌓인 실수의 데이터가 결국 책이 되었다. 어떤 영화의 한 대사처럼 ‘모든 것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하면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수를 다 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젠 실수를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수련하듯 하루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그런 기상천외한 실수담을 담은 덕분인지 책이 나온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는데, 운 좋게 이번에는 1회성이지만 강연을 나가게 되었다.

수없이 원고를 써서 고쳤고 소리를 내 연습을 했다. 연습을 여러 번 해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리허설을 했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됐다.

강연장이 집에서 매우 멀었기에, 이번에도 치밀하게 예상 시간보다도 한 시간 먼저 출발했다. 버스에 내려 지하철로 가려는데 묘하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뿔싸. 이건 내가 예상 못한 일이었다. 지하철이 멈춰서 가지 않았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동네가 워낙 외져서 택시도 들어오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택시를 잡아타고 겨우겨우 강연장에 도착했다.

그동안의 긴장감은 어디로 갔고 그저 도착했다는 것에, 지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안도감과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흔들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강연을 시작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자기 시간을 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고 이 자리에 도착했다는 것 그 자체에, 그리고 실수 투성이었던 내가 그 실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아요. 저도 실수를 했지만 이렇게 있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실수가 많아서 실수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하는 훈련 아닌 훈련을 하면서 살았지만, 때로는 내가 준비했던 그것이 아닌 나도 모르는 그 어디에서도 '불쑥' 또는 '까꿍'하고 예상 못한 일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 신이 나에게만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불쑥'하고 말이다. 또 그것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어려서는 그것을 몰라서 나 자신을 많이 원망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안다. 원망만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그럴수록 원망은 한편에 놔두고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 배운 것은 그것이다.


여전히 계획도 잘 못 세우고, 정리도 못 하고, 남이 하는 말도 잘 못 듣고, 한마디로 부주의하기 그지없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만약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괜찮아질 수 있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못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

이런 기질이 혹시 ADHD가 아닌가 싶어 의사 선생님께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선생님은 한마디를 하셨다.



의사 선생님: 지금까지의 말을 들어보면 ADHD는 맞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 사시는 데 불편하세요?

나: 예전엔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의사 선생님: 그럼 그냥 사세요. 많은 어린아이들이 ADHD와 그 언저리에서 구분할 수 없게 성장하기도 해요. 하지만 성장하면서 많은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좋아지기도 하죠. 만약 님께서 좋아졌다면 굳이 치료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잘하고 계시고 부족한 부분도 스스로 잘 알고 계시니까. 그건 생활 속에서 노력하시면 되는 거고요. 의식하지 말고 그냥 사시면 됩니다. 지금처럼요. :)


참 감사한 말이었다. 지금처럼 살면 된다… 부족해도 노력하면 되는 거니까… :)



잘한 일:

버스도 안 오는 동네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 택시를 잡고 강연장으로 간 것은 빠른 판단이었다. 덕분에 막히지 않는 뻥뻥 뚫린 도로를 보며 갈 수 있었고, 흔들리는 마음도 더 다잡을 수 있었다. 도착하는데 의의를 둔 덕분에 강의는 덤. 오히려 힘을 뺄 수 있었고(남은 힘이 별로 없었던 것이지만), 준비해 간 말도 충분히 다 할 수 있었다. 웃으면서 말하는 것까진 실패했지만 그래도 처음치곤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올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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