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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응답하기] 못하는 사람

by 김경민

“계속 글을 쓰고 계세요?”

어색하게 마련된 자리에 뭔가 할 말을 찾는 듯했던 옆자리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음… 그 누구도 나에게 쓰라고 요청하진 않지만… 쓰고는 있어요”라고 말을 했다.


“오~ 그럼 디자인에 관한 글?”이라고 되물어서 “아니요. 그냥 이것저것 써지는 건 다 쓰고 있어요”라고 말해버렸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기대’에 기대어 또는 ‘그 기대’를 부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둘도 아닌 상당히 어정쩡한 삶을 살아왔는데, 딱히 기대받은 바도 없고 나 또한 나 자신에게 딱히 기대한 게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계획이 계획이다’라는 어느 유명한 영화의 명대사처럼 계획 없고, 야망 없고, 욕심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나, 알아듣지 못했고 설령 알아 들었다 해도 끝없이 피해 다녔다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없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그저 구호에 지날 뿐, 피할 수 있으면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 피한 게 나였다. 그 이유도 기원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살았다.

그런 내 모습에 어떤 이가 기대를 할 수 있었을까. ‘기대 없는 삶’이 나 자신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원하든 원치 않았던 나를 깨부수어야 하는 순간이 내게도 오고야 말았다. 그 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다.

돌처럼 굳어버린 내가 나를 깨부수지 않으면 다른 이가, 곧 내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큰 두려움이 나를 그 딱딱한 껍데기를 부수고 나오게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말한다. “많이 변한 건 알고 있지?”

“응, 알고 있어”


‘맞아, 그렇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변한 게 맞나. 나는 그저 나를 감싸고 있던 그 무엇을 부순 것뿐인데. 이제야 나 자신을 대면하고 나 자신 앞에 서있는 것뿐인데.


‘변화’라면 ‘변화’겠지만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되찾아가는, 자발적으로 갇혀 있었던 나 자신을 조금씩 꺼내는 느낌이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내 안의 나’는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변화’를 진정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위해서도, 그들을 위해서도 매일 한 발짝씩만이라도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도 기대라면 기대일까.


어딘가 고장 나버린 수신기처럼 기대받기를 거부했던 나는 이제 기대에 열심히 응답하고, 부응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글을 쓴다. 이것으로 잘 된다는 보장은 여전히 없지만, 누구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말한 적도 없지만.


글쓰기는 내 안의 선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더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살아야 하고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해요. 모두~


잘한 일:

아이가 한동안 폐렴에 걸려 열이 올랐다. 평소에도 머리로 열을 뿜는 아이라 얼마 있지도 않은 머리칼이 엉망이 됐다. 그런데 만지도 못하게 하고 묶지도 못하게 해 할 수 없이 티브이를 보는 사이에 급한 대로 집에 있는 문방구 가위로 잘라버렸다. 1차 커팅을 마치고 보니 양쪽 머리에 삐죽 머리가 두 개 쑥 나왔다.

내 눈에는 뉴진스 머리처럼 예뻤지만 남들 눈에는 안 그럴 것을 알기에 아쉽지만 과감하게 잘라냈다.

2차 커팅을 마치고 보니 아마추어치곤 꽤 잘 잘랐다고 생각했는데 좌우가 비대칭이다.

이젠 더 건드리면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언밸런스 스타일이라 우기기로 했다. 아이는 다 낫고 다시 등원을 시작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바뀐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집에서 잘랐다니 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덕분에 손재주 있다는 칭찬까지 받았는데, 디자인할 때 각 요소들 줄 맞추는 감각으로 잘랐더니 확실히 주변 반응이 좋다. 십몇 년을 디자인을 했지만 이렇게 써먹는구나 싶고 허투른 경험은 없구나 싶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역시 칭찬은 기분 좋은 것이다. 나도 칭찬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는 칭찬도 잘 못하는 사람이었지. 다음 글은 [칭찬] 못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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