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자랑은 잘 안 하지만 왠지 생애 최초로! 사람들 앞에서 말을 했다는 것에 고무된 나는 자랑이 하고 싶어졌다. 강연을 했다는 것 자체보다는 거기에 뻔뻔하게 앉아있었습니다…라고. 그 어려운 걸(‘나’ 한정) 제가 드디어 해냈습니다!라고…
그런데 사람들 반응은 똑같았다.
“좀 웃지 그랬어”
!!!
정신을 차리고 다시 사진을 살펴보니 확실히 웃지 않고 있었다. 사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사진일지 이미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그렇다. 난 확실히 안 웃었다. 웃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경직 그 자체였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내 얼굴은 울상이 되어 버렸다. 해 질 녘 노을이 서서히 하늘에 그라데이션지듯 내 얼굴에도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게 고정값이 되어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은 표정을 장착하게 됐다. 사실 엄청 즐거운데도…
게다가 나는 어색한 상황이 되면 안면 근육이 오작동을 일으켜 심각한 상황에도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웃으면서 얘기하곤 해버리는데, 일반적인 상황과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곤 사람들 사이에선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혹시 쟤가 말로만 듣던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또 하루는 가게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가게 주인이 울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맛이 없나요?”라고 물어볼 정도. 그런 나를 잘 알고 있기에 타인이 가득한 강연장에 더군다나 내 얘길 들으러 오시는 분들이니 더더욱 신경을 쓰고 갔는데도 그렇게 해버렸다.
생긴 거(?) 어쩌라고~ 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건 내 일 뿐만 아니라 남의 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어 더더욱 조심하려 한다. 때는 얼마 전 한 선생님의 북토크 자리.
북토크라는 것의 성격상 사람이 많지 않았고, 장소가 작은 책방이었기에 딱히 숨을 자리도 없다 보니 내 얼굴이 다 보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나. 름. ‘마스크 속으로’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웃고 있는 입과 달리 보이는 눈은 전혀 안 웃고 있었나 보다.
나중에 들어보니 강연자 님께서 나의 눈빛(정확히는 ‘어디 한 번 해보시지’라는 눈빛)에 압도되어 덜덜 떠셨다고 한다.
이런 나의 상태를 다시 한번 알게 되고 나니, 이 전에 신청해 둔 다른 북토크에 가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분명 작은 장소일 테고, 그럼 또 사람이 없을 텐데, 또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표정으로 강연자를 겁주는(?) 상황이 되진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래도 안될 수록 해보는 심정으로 한 번만 더 가보기로 했다.
도착한 북토크 장소는 역시나 예상 그대로였다. 게다가 행사 진행자가 “저기~ 앞으로 가서 앉으세요~”라고 하는 바람에 거의 앞에 앉게 되었다. 아… 이번에는 정말 잘 웃고 있어야 한다. 마인드셋을 하면서 북토크를 기다렸다. 북토크는 즐겁게 진행돼있었고, 나도 열심히 웃으면서 들었다. 공감도 많이 된 주제여서 더 집중해서 듣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 좋은 표정~ 좋은 표정~ 하면서 나 자신을 푸시하느라 온전히 집중하기도 어려웠지만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또 예상 못한 일이…
평소에는 아이와 함께 21시에 불을 끄고 잠드는 나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눈꺼풀이 내려왔다. 어두운 표정과 무거운 눈꺼풀이라니… 최악의 상황이다. 움찔움찔하는 강연자 님들의 표정을 보고 다시 힘내서 강연을 들었다. 그런데 나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 건 의외로 나 자신이 아니라 강연자 님들의 표정이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것이, 웃는 것이 참 예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밝고 예쁜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미소에 부러우면서 나도 같이 따라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자꾸 쳐다보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감탄하게 된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저 미소를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노력 끝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저 미소가 결국 나오는구나 싶었다. 또 그런 모습에 부러워 또 쳐다보고 나도 닮아지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에든 그럼에도 웃는 자! 그렇기에 주변에 은은히 향기가 퍼지듯 감동을 주고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자! 가 되자!!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부러워서 열심히 보고 따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그 글에 진심으로 감동하는 순간이 있어다. 감동하니 잘 써지든 안 써지든 어떻게든 나도 써지게 됐다. 글쓰기 때 했던 것처럼 매 순간 감동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나도 조금씩 웃고 있지 않을까. 내가 알게 모르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처럼.
잘한 일:
책이 나오고 (1회성이지만) 강연까지 끝내고 나니 뭔지 알 수 없는 헛헛한 마음에 빠져 있었다. 책이 나와도 사실 일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이렇게 좋은 경험이 일생에 한번 있었던, 좋았던 단 한 번의 이벤트가 되는 것은 아닐지 좋으면서도 불안한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데, 계속 뭔가를 하고 싶은데... 그냥 좋았던 기회로 끝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방법이 뭔지 몰라 방황해서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표류하듯 또 폭포처럼 쏟아지는 내 감정들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결국 나는 방법을 찾았다. 그게 결과적으로 나의 꿈을 향한 곧게 난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발을 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계획을 하나씩 세우기 시작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러고 싶다. 작가로서 살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글을 써보고 싶어서. 베스트를 지향하진 않아도, 누군가에겐 적어도 나에겐, 글을 쓰는 온리원으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잘 생각했다. 나 자신. 맘껏 칭찬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