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북디자이너가 전시회에 가면 생기는 일

by 김경민

코로나시대로 여행도 못가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책을 보거나 넷**스 보는 일뿐, 활동적인 여가활동이란 건 꿈에도 못 꾸는 나날들을 보내다 몇몇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중 세 가지 전시가 기억에 남는데 그 이유는 전시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였다.


삐뽀삐뽀. 여기서 북디자이너의 직업병 발생. 전시에 가면 전시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나는 자꾸 거기에 쓰인 글, 전시 공간을 보고 있었다.


전시를 갔을 때 그 전시 공간에서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전시장 입구겠지만 그 다음은 무엇일까. 바로 작가의 정보 및 작품 정보를 담은 작은 판넬. 작가 정보의 경우 보통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첫번째로 보이는 곳에 있고 작품 정보는 작품의 바로 옆에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만 봐도 작품을 대하는 이 업체들의 정성과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첫번째, 일단 정보가 틀리면 안된다. 이 정보를 생각보다 안 보고 지나가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이 정보가 틀렸는지 확인을 안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작가이름에 오타가 있다던지(혹시 작가이름이 너무 길더라도 꼭 체크해야 되는 문제 아닌가) 생몰연도는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하는 것이다. 기본 중에 기본. 인터넷 서치만 한번 해봐도 다 나오는 것 아닌가


두번째, 최소한의 가독성을 신경써줘야 한다. 여기서 가독성이란 글자의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을 포함한다. 특히나 작품 정보의 경우 정보가 워낙 적고 글자도 작기 때문에 한가지 폼으로 통일하는데 이또한 한번만 잘 설정해 놓으면 될 일이다.


세번째, 작품을 그래도 가져올 수 없는 경우나 작품을 이용해 전시 공간을 꾸밀 때, 확연한 100퍼센트의 의도가 아니라면 작품을 함부로 쪼개거나 나누지 않는다.

내가 간 한 전시는 작가의 특성상 대부분 작가의 원본을 가져올 수 없는 경우였는데, 그렇다면 관람객에게 그 부분을 확실히 고지하고 작품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현했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까지 a1, a2 사이즈가 작품에 들어가는지 잘 알 수 있도록 얼기설기 짜깁기를 했다. 원본을 기대하고 오진 않았더라고 이런 만듦새는 작가의 의도를 해치면서 관람에 크게 방해가 됐다. 전시장을 나오며 ‘도록이 더 잘 나왔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전시는 있었다.

좋은 사례였던 것 만큼 실제 전시명을 밝히도록 하겠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렸던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솔직히 고백하건데 디자인이 10000년이나? 라는 제목에 혹해서 간 전시였다.

예술 작품전처럼 화려하거나 그런 전시는 아니였고 공간도 여느 전시장처럼 크지도 않았다. 보면서 다소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작은 아이디어를 확장해 이렇게 전시를 꾸밀 수 있다는 것도, 관람객을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전시의 경험(오로라 체험, 핀란드 사우나 체험)으로 끌고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표현한 게 아주 눈에 잘 들어왔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 정보들도 아주 깔끔하고 정확하게 눈에 쏙쏙 들어왔다.

‘이 전시는 화려하진 않지만 참 깔끔한 게 눈에 잘 들어오고 인포도 좋다. 다른 전시에서 잘 쓰지 않는 서체를 썼음에도 오히려 균형감있고 안정감이 있어~’라는 생각을 하며 전시 도록을 살피는데… 역시 이 전시 공간의 디자인은 ‘o’사에서 했다.

아니 왜! 전시마저 이렇게 잘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에 이르러 ‘o’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

아니 왜 또 홈페이지까지 잘 하는 것인가.

무언가 통달한 그들의 내공이 느껴지는 홈페이지였다.


하나를 잘하면 열을 잘하는 그들을 보며 디자인이란 것이 이것 다르고 저것 다른 건 아니며 뚝심과 정직한 디자인을 하다보면 그걸 알아 보는 사람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다시 한 번 느꼈다. 뚝심있게 하루하루를 잘 쌓아가도 보면 내공도 같이 쌓이는 것. 그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 번외: 일단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