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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거복이 Dec 10. 2024

03. 짧지만 소중했던 10년의 사랑

_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엄마

  나는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참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엄마 옥이 씨는 36세의 젊디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11살 아들과 10살 딸을 두고 죽음을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살던 동네에서 누가 봐도 맏며느리감이었던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던 우리 엄마는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결국 이기지 못했다. 암은 가족력이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나 한때는 엄마보다 1살이라도 더 오래 사는 게 내 삶의 목표일 때도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 내 나이가 40이 넘었으니 어찌 되었건 그때의 목표는 달성했다.

  우리 엄마 옥이 씨는 아버지와는 선으로 만났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첫눈에 반했는데 엄마의 가족들이 대단한 '전 씨'가문의 무성한 소문을 듣고 결혼을 반대했고, 엄마도 아버지와의 만남을 거절하다 마지막으로 보자는 말에 아버지를 만나러 나갔다가 아버지가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모들의 증언 참고) 그렇게 아버지와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되었고 '전 씨'가문의 맏며느리가 되었다.




  우리 엄마는 인상이 푸근하고 성격이 싹싹했다. 예전에 살던 집 앞에는 커다란 평상이 있었는데 매년 김장철이 되면 엄마와 동네 사람들은 이 평상에서 다 함께 김장을 했다. 수십 포기의 김장을 할 때 늘 웃음이 가득했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김장이 끝나면 양념이 제법 묻어있는 커다란 고무대야에 김치를 쭉쭉 찢어서 따끈하게 갓 지은 밥을 넣어 쓱쓱 비벼놓고, 어느 이웃분이 수육을 삶아서 가지고 오면 준비는 끝난다.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김치에 밥 비빈 거에 수육을 올려먹으면 세상 꿀맛이었다. 이 추억으로 결혼 후 시어머니와 함께 김장 후 똑같이 해 먹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맛이 나지 않아 슬펐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엄마는 자주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에 왔다가를 반복했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큰 이모가 엄마를 위해서 커다란 보온병에 전복죽을 쑤어왔다. 아마도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께는 부탁하지 못하고 미용실을 운영하던 언니에게 전복죽이 먹고 싶다고 말한 모양이다. 이모가 정성을 다해 끓여 온 전복죽을 오빠와 나는 서로 먹겠다고 누워있던 엄마 옆에서 싸웠다. 연년생이었던 오빠와 나는 항상 싸움 모드였기에 이날도 어김없이 철딱서니 없이 전복죽을 서로 먹겠다고 싸웠다. 결국 엄마가 "제발 엄마 죽고 나면 싸워"라고 말을 하자 오빠와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엄마와의 추억을 생각하면 철없던 행동 때문에 몸도 아픈 엄마에게 마음까지 아프게 한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다.





  엄마는 체격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그 좋은 체격을 물려받았나 보다. 건강했던 엄마라 처음에는 암을 이겨냈었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은 다 빠져버렸지만 퇴원해서 예쁜 모자를 쓰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건강했던 체격이 오히려 독이 되어 암은 다시 재발을 했고 전이 속도를 빠르게 했다. 엄마 배에 복수가 점점 차오를 때 철없던 나는 "엄마 배에 동생이 있나 봐"라고 하며 좋아했다. 결국 엄마는 그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렇게 싫어했던 병원을 장례를 치르기 위해 겨우 퇴원할 수 있었다.


  10년이라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다. 오빠가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고집불통이었던 나에게 오빠 몰래 인형을 사주셨고, 오빠와의 끊임없이 싸움에도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셨다. 두 딸의 엄마가 된 지금 나는 엄마가 내게 주었던 사랑처럼 우리 딸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있다. 살아오면서 엄마 없는 설움도 많았었지만 엄마의 부재로 나는 어른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부족한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배우고 채우고 싶은 그 사람이 되었다. 엄마에게 배운 사랑 덕분에 두 딸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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