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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l 18. 2022

체력이 곧 인성이다.

그런 날이 있다.

절대로 급브레이크를 밟고 싶지 않은 날.

예를 들면 그날따라 하체에 복근까지 조져져서 하반신이 마비된… 뭐 그런 날.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어떤 차 한 대가 내 앞으로 무리한 끼어들기를 시도했고, (님아… 깜빡이 좀…) 급브레이크를 밟기에는 내 하반신은 이미 걸레짝이 되어있었다. 어딜??


그랬더니 그 차가 내 옆을 나란히 달리면서 차 창을 내리는 것이었다!

 

 하하. 니가 나랑… 대화가 하고 싶구나?


내 비록 하반신은 넝마가 됐을지라도, 주댕이는 살아있으니… 하여 나도 창을 내렸다. 그런데 그 차주… 나를 힐끗 보더니 창을 도로 올리고 매우 부드럽게 그대로 직진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 좋아. 자연스러웠어. 근데…


“쟤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었나?”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그렇죠. 언니… 근데 방금 언니 근육이 언니 대신 대답해줬잖아요.”


으흥?? 내 근육이???

그렇다. 나는 그때 운동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고, 운동복 차림이었으며, 근육은 몹시 펌핑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ㅋㅋㅋㅋㅋㅋㅋㅋ 뭐 대충 이 상태 ㅋㅋㅋㅋㅋ

대략 이 상태였다.ㅋㅋㅋㅋㅋㅋㅋ

이봐요… 내 등짝이 이래 생겼어도 화를 내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건 오해시라고요.


내 주차 레벨 이 정도 ….

내 차는 경차다. 그것도 핑크색 경차.

사실상 도로 위의 샌드백이나 마찬가지다. 도로 위의 차들은 왜때문인지 차선 변경을 전부 내 앞에서 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ㅇㅇ. 아님. 그냥 니 기분 탓임.)


아, 오해할까봐 말씀드리자면, 저 샤랄라한 코랄핑크… 절대로 내가 고른 것이 아니다. 나도 안다. 핑크랑 나랑 안 어울리는 거..

그런데 그 사실을… 우리 신랑만 모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이렇듯 물주가 지 취향대로 차를 사줬을 경우, 차종과 차주의 성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우 몹시 그런 경우다!!


그런데 내 성향이 핑크빛이 아닌 것이 타인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남들이 보기에 나는 핑크색 경차의 차주이자, 체격 작은 아줌마일 뿐인데…

하여 도로 위의 무법자들은 잘잘못을 떠나서 일단 화부터 내는데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고, 뭐… 나도 똑같이 개차반인지라 종종 거친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었다.


그치만 결단코!!! 아까처럼 먼저 급발진을 시도한 상대측에서 아무 이유 없이 먼저 포기하고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 이거였어????

내 비주얼만 경차가 아니면 되는 거였어?


너무 당연한데도 자주 잊고 있는 진실.

사람의 비주얼은 그 사람의 첫인상을 평가하는데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한다.


그 후로도 내 근육은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대화를 종종 줄여주었다. 하… 인생 …


이렇듯 친분이 전혀 없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 인성은 차차 나아졌다… 고 치자.


그렇다면 아이들과는 어떨까.


걸어다녀 시키들아…

놈들은… 기본적으로 걷는 법을 모른다.

늘 날뛰고 있으며 영원히 날뛸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해다. 놈들도 언젠간 분명히 지친다. 다만… 놈들보다 내가 먼저 지칠 뿐이다.

하여 이런 말이 있다. 육아는 장비빨이다!?


“얘들아, 우리 이제 그만 집에 갈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정도면 이미 유체는 이탈한 상태이다. 하여 그 쯤되면 나에게도 놈들에게도 선택권 따위는 없다. 온갖 협박과 회유를 동원해서 놈들을 끌고 집으로 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성이 오고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놈들이 나보다 먼저 지친다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어깨란 이런 것이다.

봐라! 육아는 이렇게 하는 거다! 눈 감고 가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쓰러질 일은 없다. 이게 육아다.

feat. 강철부대. (어우… 이동규 님의 유명한 멘트 따라 했더니 오글거립니다. ㅋㅋ)


고로 육아는 뭐다? 장비빨… 아니고 체력빨이다.  



그럼 이번엔,

매일 얼굴 맞대는 성인들과의 관계는 어떨까?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보통 체지방률이 이 정도까지 내려가면 (나 지금 10.4%) 성격이 예민해지는데 국주 회원님께서는 늘 해맑고 한결같으십니다.”


허… 당연하다.

체지방이 빠지고 탄수가 부족해지면 성격이 급해지고 예민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위계질서를 잊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지방… 몸에서 빠져나가는 거지, 뇌에서 빠져나가는 건 아니니까.

(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지방입니다.)


하여 내 인성이 아무리 바닥을 쳐도 내가 하극상으로 위를 치는 일은 없다. 즉, 스승님한테 성질을 내보일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란 뜻이다.

내가… 늘 해맑고 한결같아야지 뭐 어쩌겠는가.


체지방률 10.4%

그렇다면 부부 사이는 어떨까??


내 신랑 역시 내 윗사람이다.

성별, 나이 때문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니 서로를 윗사람으로 여기자는 것이 우리끼리의 약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여보야, 혹시… 지방이랑 인성이랑 같이 뺐어요?”


그렇다. 신랑은 내가 지한테만 안 대들 뿐, 여기저기에 포악질을 하고 다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날은 내가 운전대를 잡은 날이었다.

딴엔 일을 하고 와서 지쳐있을 신랑에 대한 배려였다. 아이들이 재잘대며 말을 걸어왔다.


“엄마, 휴게소는 언제 도착해요?”

“엄마, 이따 고속도로 들어가면 휴게소 가서 소시지 사주세요.”


 …… 출발한 지 5분 지났다. 이 자슥들아….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신랑이 대신 대답해줬다.


 “얘들아… 엄마한테 말 걸지 말아요. 엄마 지금 좌회전 준비 중이시잖니.”


 ….. 눼???


 “여보야. 나 지금 멈춰있잖아요. 대답할 수 있어요.”


그리고 좌회전 정도는 대화하면서도 가능해요.


“아니에요. 여보는 일단 좌회전에만 집중하세요. 놈들은 내가 맡을게요.”


 ….. 왓…. 네… 뭐…. 놈들을 맡아준다니….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을까… 시간은 이제 막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애들은 다 자는데 여보는 왜 안 자요?”


당신도 피곤할 텐데… 당신 쉬라고 내가 운전하는 거잖아요. 그랬더니 신랑 왈…


 “네… 눈 뜨면 응급실일까 봐 못 자겠어요.”


 …… 읗르흥?? 뭐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그리 편안하게 하십니까????? 그러더니 신랑이 갑자기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우리 부부는 무교입니다.)


 “하나님, 부처님…. 제발 두 시간만 우리를 굽어살피시옵고…”


 결국 운전대 바꿔줬다. 하…


체력이 곧 인성이다

어느 날 사이좋게 티비를 보던 신랑이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여보야가 작고 약해서(?)…”


…… 눼??? 뭐라고요????? 이건 또 무슨 개….


 “네?? 내가 작고 약해서… 다행이라고요??”

 “네. 그러니 그렇게 열심히 패악질을 하고 돌아다녀도 그 피해가 굉장히 미미하잖아요. 여보야가 강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휴…”


그래… 뭐… 다행이고 나발이고 일단!!! 내가 작고 약하다는 건 인정할 수 없었다.


 “여보야… 나 이제 안 약해요!!!! 우리 체육관 사람들이 내 근육이 위압적(?)이래요!!!”


나도 말해놓고도 웃기지만 뭐… 일단 우겨봤다. 그랬더니 신랑놈이 말하길…


“여보야… 완두콩이 근육이 생겨봤자 땅콩이죠. 땅콩이 무슨 수로 위압적이 될 수 있겠어요.”


 …… 하하하하하하. 젠장…

체력이고 나발이고 우리 신랑에게 나는 그냥 성격 드러운 땅콩이었다.


근데 여보야, 그거 알아요?


지나가려면 나를 치고 지나가라 포스

울 아들들… 당신보다 내 말을 더 잘 들어요.

언제나 나에게 이렇게 당부한답니다.


“힘센 엄마가 말썽꾸러기 아빠 좀 봐주세요.”


그럼! 물론이지! 엄마 인성은 대한민국 최고니까.

왜냐면 체력이 곧 인성이거든.


사춘기… 눈치껏 문 앞에서 돌아가길.




덧붙.


둘째 놈이 학교에 제출한 엄마의 인적사항

우리 엄마
이름 - 김국주
직업 - 턱걸이
특기 - 턱걸이
취미 - 턱걸이
장점 - 힘, 근육

???????????????

어쩐지 학부모 상담 때 선생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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