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거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여보야. 등근육 만들어오면 차 바꿔줄게요.”
일관적이고 확고한 울 신랑이 말했다. 왠지 제정신으로 말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까짓꺼... 등근육만 만들면 되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몰랐다.
근육 1kg 증량이 체지방 5kg 감량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중에서도 등근육은 그 끝판왕이라는 사실을… 심지어 나는 이 젠장할 근육이 드럽게도 안 생기는 체질이라는 사실도... 게다가 근육을 만들어도 체지방이 있으면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이때의 나는 전혀 몰랐다.
당시 나는 하체보다 상체가 더 부실했다. (지금은 차마 제가 상체가 부실하단 말은 못 하겠습니다.)
아,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부실하다는 것이 절대로 사이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육을 말하는 것이다.
내 생에 첫 운동 선생님이었던 코치님은 첫인상이 뭐랄까 무척… 애기 같았다. 성격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이가 엄청 어렸다. 내 아들이랑도 나이 차가 얼마 안 날 것 같은 코치님(이하 스승님이라고 하겠음)은 동생이라기보다는 조카에 가까웠다. 그래서 처음엔 만만했고, 스승님 역시 나를 어려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스승님께서는 점프 턱걸이란 것을 자주 시켰다.
턱걸이란, 철봉을 잡고 당겨서 올라간 후에 쇄골을 봉에 찍고 내려오는 간단한(?) 운동을 말한다.
그렇다면 점프 턱걸이란, 당기는 것이 힘드니까 점프로 올라가서 내려올 때만 등에 힘을 주고 천천히 내려오는 방식의 턱걸이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당시 나는 상체가 몹시 부실했으며 특히 등짝에 붙어있는 거라곤 지방과 살가죽뿐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팔로 버텼다. 근데 뭐 팔이라고 별거 있나… 하여 내 가냘픈 이두가 육중한 내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닭가슴살 찢어지듯 갈가리 찢어졌다.
그날 밤에는 팔이 구부러지지도, 올라가지도, 펴지지도 않았다. 세수와 양치질 마저 불가능했다. 그래서 욕조 안에 물을 채우고 얼굴을 넣고 흔들었다. 양치질 역시 입에 칫솔을 넣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장 곤란한 것은 맥주를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맥주를 컵에 따라 그 컵을 들어서 내 입으로 쏟는 이 단순한 행동을 내 팔이 이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신랑한테 맥주 좀 먹여달라고 했다가 ‘뭐 이런 또라이가...’ 하는 뭐 대충 그런 종류의 눈빛을 받았다.
차라리 입으로 욕을 해요. 여보야.
그다음 날은 팔을 드는 것까지는 가능해졌다.
그래서 맥주캔에 빨대를 꽂아서 빨아먹었다. 팔이 안 올라가서 맥주를 못 마신다고 징징댔더니, 친구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고맙다, 내 친구야.
일요일이 되자 팔이 구부러졌다.
드디어 맥주를 정상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분명 호전되고 있었다. 뭐든 현상태보다는 나아가는 방향성이 중요한 법이니까.
드디어 월요일… 상태가 호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이 완벽하게 정상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육안으로 봐도 퉁퉁 부어있었다. 이 상태로는 절대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유 없이 운동을 설렁설렁하는 것을 스승님께서 두고 보실 리도 없었다. 하여 스승님께 내 팔뚝 상황을 보고해야만 했다. 그런데… 회원이 운동하다 다쳤다고 스승님이 어린 마음에 자책할까봐 그게 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부풀어 오른 내 이두를 유심히 보시던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진짜로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이거 다친 거 아니에요.”
…… 눼??? 내 뇌가 내 팔을 인식을 못 하는데요?? 안 움직인다고요…
“저… 이거 안 움직이는데… 다친 거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물론 뼈가 탈골되면 그때는 병원 가야지요. 이건 그냥 근육이 부은 거예요.”
하하. 이런 운동처돌이 같으니.
운동처돌이들 종특 하나. 뼈가 골절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건 본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덕분에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근데요… 팔이 잘 안 움직여서 살살해야 할 거 같은데요.”
“괜찮아요. 하체를 빡시게 하시면 돼요.”
아하… 상체가 작살나면 하체를 하면 된다.
운동처돌이들의 종특 둘. 운동에 관해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대안이 있다. 어느 한 부분만 작동하면 운동은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 강도는 협상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그날 하체를 했다. 다리는 멀쩡하니까…
8킬로짜리 자루를 짊어지고 박스를 오르내렸다. 이두가 아작 났는데 저 자루를 어떻게 짊어질까 물었더니, 뱅뱅 돌려서 휘리릭 던지듯 어깨에 얹으면 된다고 하셨다. 니가 알아서 대충 하란 뜻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스승님한테 나는 이모뻘 되는 40대 아줌마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다져야 할 회원 중 한 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스스로 알아서 서열을 정리했다
우리 체육관은 모든 시간과 공간이 소리와 조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일단 비트감 있는 신나는 음악! 운동의 속도감을 높여주기 위함도 있지만, 회원들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덮어주는 역할도 한다. 물론… 후자 쪽이 더 강하다. 그리고 스승님의 응원의 목소리! 이는 죽어가는 회원들을 일으켜주는 역할을 한다.
“강요는 안 합니다.”
“고고!! 다음 거 빨리 진행하세요! 쉬지 마세요!” (웅?)
“무리하지 마세요. 체력에 맞게 하시면 됩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세요. 멈추지 마세요.” (웅?!?!)
응.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고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운동 처돌이들의 종특 셋. 두 개의 인격이 공존한다. 물론 저 사람이 그 인격이 바뀌는 템포가 남들보다 좀 빠르편이 긴 하다. 하지만 이때 ‘응? 뭐 어쩌라는 거지? 하란 말이야? 말란 말이야?’라고 헷갈려할 필요 없다. 내가 해석해 준다. 그냥 하라는 말이다. 하긴 하되 무리를 했다고 생각하지 말란 뜻이다.
“본인 체력에 맞춰서 5킬로짜리 드셔도 되고요. 10킬로짜리 드셔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10킬로짜리로 드는 걸로 해요.”
응?? 네?!? 왜 선택권을 줬다가 뺏으시는 겁니까?? 그럴거면 애초에 5킬로 이야기는 왜 꺼내신 겁니까?!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 볼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무 무거워요!!“
그러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손으로 들면 안 무거워요.”
어. 씨알도 안 먹힌다.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앞문장 떼고 그냥 10킬로짜리 들고 오면 된다. 그리고 이틀 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 회원님, 오늘은 상체 하셔야죠.”
아무리 봐도 아직 회복이 덜 된 거 같았지만 그냥 했다. 별 수 있나… 해야지.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비로소 내 팔이 회복되었다. 아니, 회복을 넘어서 난생처음 보는 팔근육… 이두를 보았다. 그걸 보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와!! 국주 회원님!! 우와!!! 이두 생겼네요?!?”
응? 스승님?? 어찌하여 감탄을 하시는 건지요?
身體髮膚 受之父母(신체발부 수지부모)라 이 모든 신체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지만, 이 근육은 니가 만들어준 거잖아요.
백문이불여행.
근육 증량이 체중 감량보다 힘들다는 사실, 근선명도를 높이는 것은 더 힘들다는 사실 그리고 내 경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이렇게 배웠다.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신다.
“국주 회원님, 여기서 만족하지 마세요!!“
운동처돌이들의 종특 넷. 만족이란 없다.
QnA Time
Q. 운동은 얼마큼 해야 해요?
A. 저는 하루에 3,4시간씩 운동합니다.
적지 않은 운동량이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운동량보다는 운동 강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목표는 근육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럼 근육을 찢어서 그 사이를 단백질로 채우면 되는 건데, 그 근육을 30분 만에 찢으나, 3시간 만에 찢으나 찢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오래 하기보단 빡세게 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얼마큼 해야 빡세게 하는 건데요?
A. 유산소는 하는 순간은 죽을 것 같아도 사람이 절대로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때까지 뛰면 됩니다.
근력운동은? 힘들 때까지…
가 아니라 ‘안 될 때까지’ 합니다.
소위 ‘운동 불능’ 상태가 올 때까지요.
그래야 근육통이 옵니다.
Q. 헐… ㅆ… 근육통이 꼭 와야 합니까?
A. 아니, 왜 화를…
근육통이 없다고 운동 효과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근육통이란 근육이 미세하게 찢어져서 생긴 통증이잖아요. 하여 나름 믿음직스러운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근육통을 목표로 운동을 합니다. 새벽에 근육통 때문에 잠에서 깨면 뿌듯하잖습니까. 하하하하하.
질문들 메일로 보내주시면 친절하게(?) 답변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