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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Sep 12. 2022

흔한 근육통의 세계

부상과 엄살 사이

당시 내 데드리프트의 중량은 40kg였다.

누군가에겐 워밍업에 불과한 중량이겠지만, 나에겐 굉장히 자랑스러운 고중량이었다. 어쨌든 빈 봉만 들고 설치던 내가 양쪽에 판 하나씩은 끼웠으니까.


그래서 그깟 책상자 따위! 가뿐하게 들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무려 40kg를 드는 여자니까!! 기분도 좋았고, 컨디션도 좋았다! 자신 있었다!

좋아! 허리 펴고 힌지 접고 무게 중심 뒤로! 상자는 몸에 딱 붙이고!! 마치 데드리프트 하듯이!!!


그런데… 내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벨과 상자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당연히 자세가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들자마자 허리에 신호가 왔고, 동시에 상자와 함께 내 몸도 나가떨어졌다. 순간 허리가… 아니 상반신 전체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토요일 밤이었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신랑도 없었고, 친구들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토밤에 집에 얌전히 있을 인간… 내 주위엔 없었다.


핸드폰을 쥐고 한참을 고민했다.

하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눈 한번 질끈 감고 스승님께 연락했다.


 “스승님, 이런 연락을 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제가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다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냥 누워있어야 하는지요? 아니면 스트레칭을 해야 하는지요?”


하… 토요일 밤은 언터처블이건만.

그것도 자정에… 스승님께 아프다고 징징대는 톡을 보내버렸다. 주무시고 계셨다면, 잠이 깨셨을 것이고, 술을 드시고 계셨다면 술이 깨셨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 병원이라도 갈 수 있으려면, 지금 당장은 상반신부터 일으키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바로 답이 왔다.

상세하고 명확한, 운동 시작 전에 수없이 했던 그 스트레칭이었다. 몸통이 작동될 때까지 그 과제를 수행했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누군가 들었다면 꽤나 억울한 오해를 했을 법한…


그렇게 침대로 기어서 이동했다. 취기 없이 네발로 기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아, 처음은 아니구나. 며칠 전에 하체 운동하다가 기었구나.


그리고 다음날, 일요일.

진료가 가능한 유일한 병원을 찾아갔다. 이 상태로 운전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일단 시동을 걸고 출발했고, 정신 차려보니 목적지였다. 그렇게 정수리부터 땀으로 젖어서 물미역을 머리에 얹는 꼴을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 꼴을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 어… 운동하시는 분 같은데… 허리는 어쩌다 다치셨습니까? 그러게 운동 좀 한다고 자만하면 그 순간 다치는 겁니다.”


 와우, 칭찬과 욕을 동시에 들은 느낌이었다.


 “네. 근데 운동하다 다친 건 절대로 아닙니다.”


사실이니까…


 “그럼 뭐 하다가 다치신 거예요?”

 

“네… 지인한테 책을 받았는데 제가 게을러서 그걸 몇 달 동안 현관에 방치했지요. 그런데 어제 글쎄 남편과 아들놈들이 나만 빼고 지들끼리 여행을 갔지 뭡니까. 샘 같으면 기쁘겠어요? 안 기쁘겠어요? 기쁘죠? 저도 그래서 기뻐 날뛰며 그걸 옮긴다고 깝치다가 허리가 작살나버렸죠. 상반신이 안 움직여서 현관에 거의 한 시간 동안 누워있었어요. 근데 그랬다간 4일 후에 울 신랑이 현관에서 아사한 내 시체를 치우게 될 거 같더라고요. 아뇨. 선생님. 저는 4일 굶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 스트레칭을 배워서… 네, 제 운동 스승님이요… 암튼 그래서 겨우 움직이게 만든 후에 여길 온 겁니다. 아유. 여긴 도대체 어떻게 왔는지는 저도 모르죠. 제가 정신을 잠깐 잃은 사이에 제 무의식이 운전했나 봐요. 네. 그래서 지금 제 머리가 물미역 상태예요. 아뇨. 머리 감은 거 아니고 땀이에요. 에헤이!! 허리 못 숙인다니까요.”


그런데 굶어 죽는 상상을 했더니 배가 고파왔다.


 “그런데요, 선생님. 저 어제 자정부터 쫄쫄 굶었는데 이 믹스 커피 마셔도 되나요?”

 “네, 드세요. 그런데 쫄쫄 굶으셨다기에는 지금 겨우 오전 아홉 시 반인데요? 원래 보통 자정 이후에는 안 드시지 않나요? 특히 운동하시는 분은 식단을…”


어허! 모르시는 말씀! 운동하시는 분일 수록 잘 먹어야 한다.


 “선생님! 배 고프면 근손실 옵니다.”


어우… 물미역을 하고 헬창스러운 말을 내뱉어버렸다. 진찰을 마치고 앉아있으려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쿠키와 커피를 주셨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시며 말씀하셨다.


 “저… 그런데요. 그… 엉덩이 볼륨 만들려면 무슨 운동을 해야 하나요? 제 엉덩이가 너무 납작해서요.”


 아… 눼… 엉덩이 말씀이시군요.

 네?? 엉덩이요?  아니, 선생님, 엉덩이는 저도 납작한데요? 하… 쿠키 이거 강습료였어?


 “그래요. 일단 엉덩이는 무조건 땅데드인데, 여긴 바벨이 없으니… 아… 땅데드요?? 그 바벨을 땅에서부터 들어 올리는 건데… 네?? 바벨이요?? 역기처럼 생긴… 아니, 도대체 아는 게 뭐예요? 아니에요. 구박하는 거 아닙니다. 그럼요. 맨몸으로도 할 수 있죠. 자, 다리를 이렇게 올리고 무릎은 직각으로… 네?? 힘들다고요?? 아!! 힘들어야 근육이 생기죠!! 아니, 허리는 운동하다가 다친 거 아니라니까요!!! 나한테 트레이닝 안 받는다고요?? 아니, 니가 물어봤잖아요!! 빨리 하세요!! 어허!! 거기서 무릎 돌아가면 안 된다고!! 좀 더 앉아봐요!! 그렇지!! 잘하네!!”


나는 그렇게 다채롭고 다양한 럿지 자세를 선보여줬고, 그곳은 병원 대기실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시던 옆자리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다.


 “새댁… 근디… 허리 다 나았셔?”

 “아니, 어르신. 어케 허리가 하루 만에 낫는데요?”

 “근디 새댁… 아까는 발발 겨서 오더니 지금은 훨훨 날아다닝께. 괜찮은 성싶어서…”


옴마?? 어르신도 참… 제가 원제 훨훨… 날았…

어? 어어?? 그러고 보니 나 럿지를 하고 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방전을 받을 때 ‘2주간 고강도 운동 금지’ 처분이 떨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고강도란, 사람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의미가 아니던가. 그래서 물었다.


 “고강도요? 고강도가 어느 정도인데요?”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나에게 허락된 운동이란… 그냥 생활체조였다.


ㅇㅇ. 운동하지 말란 뜻이었다.  

그래, 어차피 운동 못 하는 거! 그래서 헤어펌(3일 씻기 금지), 눈썹 반영구(4-7일 운동 금지), 아이라인(일주일 운동 금지) 등등을 받으러 다녔다.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승님께 톡을 보냈다.


 “스승님, 저 2주간 운동 무리하지 말라는데요.”


몇 분 뒤… 스승님의 답변….


 “국주 회원님? 내일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와우, 스승님?! 저… 울버린입니까?


 “국주 회원님은 일반인과는 다른 회복력을 가지셨잖아요.”


아하! 그렇구나!?!

나… 스승님께… 일반인 취급을 못 받고 있구나.

그렇다고 겸사겸사 내 손으로 운동 금지 이유를 몇 개 더 만들었다는 말은 죽어도 못 했다. 이 이상 내 이미지를 털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늦었겠지만…


그리고 이틀 후… 스승님께 톡을 받았다.


 “국주 회원님, 괜찮으세요?”


하, 이렇게 스윗할 수가!?!

내가 스승님을 몰랐다면 저 문장을 한 치의 의심 없이 그냥 평범한 안부 톡으로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저건… ‘고작 그딴 일로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냐. 그만하면 됐으니 냉큼 운동하러 튀어와라.’ 라는 뜻이었다. 지금까진 휴식이었지만 더 이상은 태만이란 뜻이었다. 스승님 인내심은 여기 까지란 뜻이었다.  


선택권 따위 없었다.

그날 나는 바로 체육관으로 튀어갔고, 아무 무리 없이 운동을 치러냈다?!? 응?? 나 분명 아픈 거 같은데 왜 이것들이 가능한 거지??? 심지어 운동을 하고 나니 날뛰던 허리 근육들이 진정되었다!!

그러자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 회원님… 생각보다 엄살이 있으시네요.”


와… 엄살이요??

엄살 있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었지만,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네, 진짜 부상이 아니고 엄살이었기에 다행입니다.


내 사진 아님. 친구 사진임. 그냥 난 이 사진이 젤 좋음

울 운동인들 절대 다치지 말고 운동하세요.

QnA Time

Q. 운동하다가 다친 적은 없습니까?

A. 어느 운동이건 부상의 위험은 있습니다. 하여 운동 배울 땐 혼자 하기보다 전문가에게 정확하게 배우는 것을 추천합니다. 안 다치는 사람이 결국에는 가장 잘하게 됩니다. 진짜로… 다치면 능력치 훅 떨어져요.
Q. 그러는 너는 허리 다쳤는데 왜 운동을 합니까?

A. 바로 다음날 정형외과를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습니다. 그랬더니 뼈나 인대는 괜찮고 근육만 좀 많이 파열됐다고 하더라고요.

ㅇㅇ. 그냥 근육 파열이면 안 다친 거죠.
그냥 좀 센 근육통…

물론 이 사실을 스승님도 알고 계셨고, 그래서 이틀 만에 운동 오라고 하신 겁니다.  
울 스승님 그리 나쁜 사람 아닙니다. ㅋㅋㅋ
Q. 허… 진짜 부상이랑 근육통도 구분 못 합니까?? 엄살 심하네…

A. 아!! 진짜 아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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