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워밍업.
“여보야, 개인 피티 받아볼래?”
내 운동팸은 스승님이 좋아서 울 체육관을 다니지만, 왜인지 운동할 땐 모두 스승님을 피해 다닌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전원 스승님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동할 땐 스승님이랑 눈도 마주치기 싫다.
박스 사이에 숨어 죽어가던 친구를 끌어낸 적도 있다. 화장실에서 숨죽이고 숨어있는 친구를 잡아다가 스승님께 갖다 바친 적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어두운 구석 사각지대에 웅크리고 앉아서 눈 가리고 숨어있다가 잡힌 적도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그런 나에게… 내 신랑이…
스승님과 일대일, 면대면으로 운동하길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여보야. 싫습니다. 요즘 유난히 조상님을 자주 뵙고 옵니다. 죽을 지경이에요. 기어이 그 강을 건너고 싶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안 합니다.”
그러자 신랑이 예상했다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여보야, 갠피 떠서(?) 근육 만들어오면 내가 옷장 싹 갈아줄게요. 새 옷으로…”
와… 이 인간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
내가 고작 그따위 물질에 마음이 휘둘리는 그런 사람으로밖에 안 보였던 것일까? 그리고 여보야… 갠피는 뜬다고 표현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현피도 아니고… 그래서 대답했다.
“네. 여보야.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생각해 보면 울 스승님이 피티 하다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열정이 무서워서 그렇지 본성은 착하고 다정하신 분일 것이다?!
뭐… 어쨌든 죽이진 않을 것이다. 까이꺼. 해보자.
하여 스승님께 상담을 요청드렸다.
“흡!!! 스승님!! 지금 당장 개인 피티 상담을 신청합니다!!!”
ㅇㅇ. 결투 신청 아니고 그냥 상담 요청이다.
“…… 네?? 왜… 아니, 저… 국주 회원님 개인 피티를 하시려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어쩐지 당황하신 듯 보였지만… 스승님께서는 너의 목적이 체지방 감량이냐, 근육 증량이냐, 체력 증진이냐를 물으셨다. 내 대답에 따라 지옥의 종류와 난이도 또한 달라질 것이다.
“상체를 근육으로 완벽하게 덮어주세요. 앞면은 갑빠로 덮어주시고요. 뒷면은 기립근부터 옆으로 쫙쫙 갈라지게 해 주세요. 팔뚝은 소매가 터질 것 같은 이두랑 삼두를 만들어주시고요. 어깨는 내 아이 한 명쯤은 거뜬히 얹을 수 있는 직각 어깨를 만들어주세요. 그냥 누가 감히 못 덤빌 그런 근육질을 만들어주세요.” (특히 울 신랑이… )
그냥 헐크를 만들어달라는 말을 참으로 정성스럽게도 하고 있었다. 스승님께서는 그런 나의 요청에 잠시 머뭇거리셨고, 나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스승님처럼 되고 싶어요. 그렇게 만들어주세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승님… 본인처럼 되고 싶다고 땡깡부리는 체격 작은 아줌마 회원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렇게 나는 내 입으로 지옥 중에서도 불지옥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마지막 보루까지 구축했다.
“스승님, 술… 은 아예 안 되나요? 제가 사실은 글을 맥주를 마시면서 쓰거든요. 술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글에서 술냄새가 납니다. 요즘은 막걸리…)
그러자 스승님께서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가끔은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저 말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몰랐다. 이 ‘가끔’의 기준이 사람에 따라 시베리아 벌판만큼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개인 피티라는 것을 시작했고, 바로 다음 날, 맥주 한잔을 허락받기 위해 스승님께 톡을 보냈다. 그랬더니 답이 오길…
“국주 회원님… 오늘 피티 이틀째인데 벌써부터 이러시면 제가 많이 속상할 것 같습니다.”
왓… 속상… 아니, 왜요!? 도대체 왜 속상하신 건데요??? 된다면서요??
하… 이미 깐 맥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속상하다는데 그래도 먹겠다고 우길 수도 없었다. 하여…
“스승님… 그럼 반잔만요.”
차라리 구차해지기를 선택했다.
“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나는 그렇게 초장부터 믿음과 신용을 잃었다.
그래도 우리 스승님께서는 식단에는 관대하신 편이었다. 피티를 하면서 결코 배가 고픈 적은 없었다.
다만…
“스승님,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오늘 저녁은 닭가슴살 안 먹어도 되죠?”
“아뇨. 시간이랑 상관없습니다. 닭가슴살 드시고 주무세요.”
왓… 곧 자정입니다만…
“스승님, 이거 먹어도 되나요?”
“네, 닭가슴살 드시고 드세요.”
으흥?!? 먹고 또 먹으라고요?!?
“스승님, 제가 지금 외출 중이라… 닭가슴살 못 먹을 거 같은데요.”
“편의점에 닭가슴살 팝니다. 사서 드세요.”
으르흥?!? 그런 식으로 동네방네 헬밍아웃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스승님, 저 라면 먹어도 되나요?”
“네, 닭가슴살이랑 드세요.”
“…… 눼? 라면을요??”
“네, 닭가슴살을 반찬삼아 드시면 됩니다.”
왓더!!! ₩&&@₩& 젠장할 닭가슴살!!!!!
내가 살다 살다… 닭이랑 사이가 나빠지게 될 줄은 몰랐다!!!!! 뭐든 적당해야 애정 관계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나의 닭을 향한 애정 곡선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안 되겠다. 이 짓을 더 했다가는 영원히 닭이랑도 너랑도 결별하게 될 거 같았다. 정줄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가서 커다란 케이크를 사 왔다. 그리고 크게 4등분을 한 후, 스승님께 톡을 쳤다.
“스승님, 저 당이 너무 딸려서… 운동 가기 전에 케이크 딱 한 조각만 먹어도 되나요?”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니었다. 커다란 조각도 한 조각은 한 조각이니까. 곧 스승님께 답이 왔다.
“네. 케이크 드세요. 운동으로 다 털어내면 됩니다.”
아싸!!!! 오예!!! 허락받았다!!!
라고 좋아했건만. 햇병아리였던 나는 ‘운동으로 케이크를 털어내자.’ 는 진짜 의미를 알지 못했고, 그날 네 발로 바닥을 기면서 운동했다.
“스승님… 다시는 케이크 안 먹겠습니다.”
백문이 불여일벌.
백번의 잔소리보다 한 번의 지옥행이 더 효과적이다. 나는 그 후… 그 어떤 일탈의 가능성도 뇌에서 지워버렸다. 상명하복.
그러던 어느 날 스승님께 이런 선톡을 받았다.
“국주 회원님, 오늘은 든든히 드시고 오세요.”
하?!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한 것인지 곱씹고 곱씹었다. 딱히 떠오르는 비행은 없었다. 뭔진 몰라도 일단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볼까도 생각해 봤다. 아… 도대체 왜때문에 저런 무시무시한 선방을 날리시는 것인지. 이날… 내 하반신은 해체되었고, 다시 정상 기능을 하기까지 약 삼일이 걸렸다.
나는 그 뒤로도 저런 선방을 심심찮게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스승님의 완급 조절 방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석 달 후, 나는 40 평생 가장 예쁜 결과물을 얻었다.
드디어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 했고, 정말 장하며, 이게 최선이다! 그 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 라며 마무리가 될 줄 알았다.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 회원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ㅇㅇ. 오르막은 아직 시작도 안 되었으며, 나는 이제 겨우 업힐 입구에 와있었던 것이다.
운동은 늘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지금까지는 워밍업.
QnA Time
Q. 다이어트할 때 식단 vs 운동 어떤 게 더 중요한가요?
A. 그건 마치 성적을 잘 받으려면 수학 vs 영어 중에 어떤 게 더 중요하냐는 질문과 같아요.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좀 더 비중을 두는 방향 역시 다르겠지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성적을 잘 받으려면,
어차피 둘! 다! 해야 합니다!
Q. 식단 하면 배고파서 운동은 어떻게 해요?
A. 제대로 된 식단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잘 먹는 것입니다. 절대로 굶으면 안 돼요.
양질의 식사를 시간을 맞춰서 ‘잘’ 먹는 것, 그것이 식단입니다. 따라서 식단은 운동하는 데 전혀 문제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운동과 잘 어우러져서 가야만 해요.
Q. 그러는 너는 왜 스승님이랑 싸우는데요?
A. 술을 못 먹게 하니까… 가 아니라!! 내가 언제 스승님이랑 싸웠습니까????? 그냥 허락을 구한 거죠… 이 양반 큰일 날 소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