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1kg면 1년이면 12kg.
“우와, 국주 회원님!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역시 우리 센터 에이스예요!!”
우리 스승님은 스윗하시다.
칭찬을 참 잘해주신다. 저 칭찬이 신입 한정이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때 녹음을 좀 시켜놓을 것을…
게다가 어이없게도 나는 당시에 저 말을 믿었다.
(진짜로 내가 잘하는 줄 알았다. 하하…)
하루는 관장님께서 체육관에 오셨다.
그때 나는 제일 짧은 바벨을 들고 데드를 해보겠다고 설치고 있었고, 그 모습이 관장님께 딱 포착되었다.
“회원님. 지금 빈 봉으로 뭐 하시는 거죠? 중량 조금만 올려볼까요?
정신 차려보니 내 봉에는 판이 끼워져 있었다.
어? 나더러 이거 들라는 건가? 그래서 일단 들었다. 아니, 들어보려고 노력은 했다. 그런데 봉을 잡고 들어 올리려는 순간 내 허리가 휘었고 그걸 보신 스승님께서 빛의 속도로 달려오셨다.
“국주 회원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허리 휘잖아요!!! 판 왜 끼웠어요?”
신입이었던 나는 저 우락부락하기만 한 관장님보다 매일매일 나를 육포 다지듯 다져주는 내 스승님이 더 윗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락부락 관장님을 정확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선생님이 이렇게 하래요.“
ㅇㅇ. 직원한테 사장을 일러바쳤다.
그 후에 스승님이 어찌 되었는지는 1년 후에나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울 스승님… 관장님한테 많이 혼났다고… 흑… 그렇게 알콩달콩 즐거운 나의 헬린이 시절이 흘러갔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 회원님, 우리 한 달 지났으니까 인바디 한번 재볼까요?”
거절했어야 했다. 아니, 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미루기라도 했어야 했다. 나의 결과물이 수치로 환산되는 순간, 달콤한 상상과 착각의 세계의 종말과 함께 신입 대접 또한 끝날 줄 알았다면… 그 시기를 최대한 늦췄어야 했다.
체지방률 31.7%.
지방 과多, 근육 전無, 전형적인 C형 인바디였다.
쉽게 말하면 뼈다귀에 붙어있는 거라고는 지방뿐이고, 내 복부의 오장육부를 보호하고 있는 것도 지방뿐이며, 내 몸에 근육이라고는 괄약근뿐이라는 의미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도 태어나서 한 달까지는 신생아 대접을 해주지 않는가. 나 역시 운동 시작한 지 이제 막 한 달 차였다. 그저 쇳덩이만 들고 설치면 고강도인 줄 알던 그런 시절이었다. 하여 나는 저 결과에 납득했다.
그런데 스승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국주 회원님! 중량을 너무 안 치셔서 그렇잖아요!!”
대충 저렇게 말씀하시고는 휙 하고 가버리시는 것이었다!!
“눼?? 중량이요??? 저… 스승님!! 잠깐만요!! 지금… 제 인바디 보고 삐지신 거 아니시죠??”
아… 그냥 가셨다. 면전에서 읽씹 당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중량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쇳덩이랑 같이 앉았다가 일어나면 고중량 스퀏!! 그걸 들었다 놨다 하면 고중량 데드! 그걸 또 누워서 들면 고중량 벤치!!! 그거 잡고 있으면 턱걸이!!!! 어쨌든 나는 늘 쇳덩이와 함께였다!! 그런 나한테 중량을 안 쳤다니… 억울했다.
“스승님… 언제는 저더러 에이스라면서요.”
사라져 가는 스승님의 뒷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아하. 이 인바디… 재미로 재는 게 아니었구나. 이거 매달 성과를 확인하는 성적표 같은 거였구나.
나 방금… 혼난 거였구나.
그렇게 회원들의 인바디 수치에 일희일비하시는 열정적인 스승님이셨기에, 나 역시 인바디를 잴 때마다 스승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마치 내 수학 성적 따위 나는 상관없는데, 우리 엄마한테는 무척 상관이 있을 듯하여 할 수 없이 엄마 눈치를 보게 되는 그런 거랄까.
그리고 또 한 달 후, 딱 1kg의 체중을 감량했다.
즉 한 달 동안 1kg를 뺀 셈이었다. 그걸 보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국주 회원님, 잘하고 계세요. 계속 이런 식으로 하세요.”
……? 살짝 헷갈렸다. 칭찬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날도 그 우락… 관장님께서 오셨다. 이번엔 나를 콕 찝어서 호출하셨다. 지난달에 좋지 못한 추억이 있었던지라 잔뜩 긴장하고 쭈뼛쭈뼛 갔다.
“회원님, 벤치 한번 해볼까요?”
그러더니 15kg짜리 빈 봉을 렉에 걸어주셨다.
그런데 데드도 못 하는 내가 벤치라고 잘 할리가… 뭔 태백산맥을 들어 올리는 듯한 고함을 내지르며 빈 봉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 우와! 성공했다!! 라고 기뻐하려는데 관장님 말씀하시길…
“아니, 제일 가벼운 거 드시면서 디게 힘들어하시네요.”
또 억울했다. 그래도 나 이젠 2개월 차인데!!! 내가 바벨들의 무게를 모를까!!! 그래서 따졌다.
“아니에요!! 이거보다 11kg짜리가 더 가벼워요!!”
그랬더니 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건 렉 위에 안 올라갑니다. 너무 짧아서.”
그 후로 지금까지도 관장님만 오시면 이 악물고 평소보다 중량 더 올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왠지 이 효과를 노리신 거 같기도…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또 1kg를 감량했다.
그렇게 매달 꿋꿋하게 딱 1kg씩만 감량했다. 학교에서 받은 성적표는 찢어발길 수나 있었지. 이건 뭐… 눈앞에서 시험을 치르는 격이니… 저 사람 면전에서 인바디 용지를 갈기갈기 찢을 수도 없고… 하…
하루는 복근 운동을 하는데 스승님께서 내 옆에 오셔서 쭈그려 앉으셨다. 그러더니 누워있는 내 얼굴 위에서 갑자기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국주 회원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운동이 %*>££>&@ 중량을… $£•*^>£¥£$ 열심히 하셔야 ₩&₩&₩&& 유산소도 )&₩&₩&&.”
그때 나는 윗몸일으키기를 한다고 누워있었다.
저러다 금방 가시겠지 생각하고 계속 누워있었다. 그런데… 잔소리가 좀처럼 끝나질 않았다?!? 뭐라 하시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그저… 이걸 계속 누워서 들어도 되는 건지…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무릎 끓고 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 고민만 계속되었다.
영겁과 같은 세월이 흐른 후, 스승님께서는 잔소리를 마치시고 만족하신 듯 유유히 떠나셨다. 나는 그제서야 일어나서 비로소 무릎을 꿇을 수 있었다.
그 뒤로 스승님에게서 인바디 이야기만 나오면 필사적으로 도망 다녔다.
“국주 회원님!!! 인바디 재셔야죠!!!”
스승님!! 내일요!! 내일 잴게요!!!
월요일은 너무하잖아요! 수요일에 잴게요!!
아, 어차피 한 달에 1kg인데 뭐 하러 재요!!
그냥 1kg 회원이라고 불러주세요!!!!
구차했다. 엄마가 성적표를 내놓으라고 할 때도 저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더 시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저 운동처돌이… 아니, 스승님은 내 인바디를 절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 그냥 재자.
그게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하겠구나. 하여 결국 6월 30일, 6월을 하루 남기고 인바디를 쟀다.
와우!!! 모든 수치가 표준으로 진입했다.
근육량은 유지하고 체지방만 감량하여 다섯 달 만에 채중은 5kg, 체지방률은 무려 10%를 감량했다!!?!
이걸 보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 회원님, 운동은 힘든데, 몸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때, 인바디로 위안을 삼는 겁니다.”
눼??? 뭘로 위안을 삼는다고요??!
언제부터 성적표가 학생의 위안이 되었었나요? 그건 모범생들이나 가능한 거 아닌가요??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런 내 표정을 슬쩍 보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 회원님… 진짜 잘하셨어요. 우리 이거 액자에 걸어놓을까요?”
그날 나… 스승님한테 찐으로 칭찬받았다.
그렇게 나는 이제 막 달걀에서 부화한 병아리 헬린이가 되었고, 응원과 격려 속에서 즐거운 운동의 세계에 입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땐 몰랐다.
지금까지가 고속도로 주행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업힐 산행이라는 사실을…
달걀이 닭이 되는 것은 쉽다.
닭이 봉황이 되는 것이 힘들지…
QnA Time
Q. 보기엔 살이 빠지는 거 같은데 체중이 안 줄어요.
A. 체중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마세요.
동일한 키와 체중이라도 체지방률이 다르면 쉐이프는 우동 면발과 국수 면발 수준으로 달라집니다. 실제로 같은 무게의 체지방과 근육의 부피 차이는 1.5배라고 해요.
Q. 그럼 인바디 수치는요?
A. …… 그건 신경 써야죠.
인바디 수치의 정확도고 나발이고… 그냥 내 근육량과 체지방률이 소수점까지 표시된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집착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인바디에 나오는 체지방률이랑 눈바디랑 일치하더이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Q. 그러는 너는 왜 인바디 안 재려고 도망 다니는데?
A. …… 너라면 매달 엄마한테 자신 있게 따박따박 성적표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