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원데이 체험기
여자가 남자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무술, 주짓수!
이 얼마나 멋있는 슬로건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 주짓수 도장에 왔다!!! 우리 동네에 주짓수 도장이 생겼고, 오픈 기념으로 저 멋진 슬로건과 함께 원데이 클래스가 열렸기 때문이다.
타깃은 내 신랑이었다.
나는 그를 10년간 이겨본 적이 없다. 말싸움?? 보통은 남편이 아내를 말로 이길 수 없다던데…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으며 늘 차분하고 논리적인 그는, 항상 고텐션으로 펄펄 날뛰는 나랑 싸울 마음조차 없다. 더 열받는다. 그럼 육탄전은?!? 그와 나와의 체중 차는 두 배 이상이다. 그냥 승산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슬로건은 매혹적이었다.
제압은 불가하더라도 살짝 위협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적어도… 경계심(?)은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작은 소망이 내 속에서 움짝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디데이.
주짓수를 시작하기 전에 몸풀기로 가벼운 워밍업이 진행되었다. 스쿼트, 버피, 푸시업 등등… 중량 없는 워밍업이었고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수행했다. 한 4셋쯤 했을까… 주짓수 코치님께서 물어보셨다.
“괜찮으세요?”
와?!? 감동했다.
보통 코치님들은 내가 곡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어 다녀야 비로소…
“네, 국주 회원님은 괜찮으세요. 아직 힘 남았어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나?!? 아니, 애초에 내가 괜찮은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건만… 여기 코치님은 지금 맨몸 스퀏 좀 몇 개 했다고 나의 안부를 묻고 계신 것이다. 하… 이렇게 스윗할 수가?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 질문을 세 번쯤 들으니 조금 의아해졌다. 코치님께서는 내게 괜찮지 않을 일을 시키신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자꾸 저걸 물으시는 건지…. 그래서 세 번째 질문에서 나도 모르게 역질문을 해버렸다.
“어… 코치님은 제가 안 괜찮아 보이세요?”
그랬더니 코치님 말씀하시길…
“아뇨. 너무 멀쩡하셔서…”
어… 당연히 멀쩡하죠. 이런 생활체조 같은 걸 하면 안 멀쩡할 수가 없지요. 이토록 스윗한 코치님과 배려심 깊은 운동을 하며 깨달았다.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다 내 스승님 같진 않다는 사실을… 경험의 중요함이란…
어쨌든 그렇게 야들야들한 운동을 마치고 드디어 주짓수 수업이 시작되었다.
일단 무릎을 붙이고 양손으로 허벅지를 쓸면서 허리를 굽히며 세상 예의 바르게 인사한다. 그리고 얼굴(?)과 어깨와 손과 무릎을 공손하게 모으고 얌전히 코치님의 말씀을 듣는다. 탑, 가드, 조르기, 어쩌고… 뭐 대충 그런 것들.
그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수업이 시작된다.
원데이 클래스는 일회성 체험을 위한 수업이기 때문에 실전 위주로 진행된다. 하여 시작과 동시에 예와 덕은 끝나고 바로 개싸움으로 발전한다. 하다 보면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그런데 배워보니 이 주짓수라는 게 참으로 심오했다. 왜인지 이 거친 격투를 처음부터 누워서 시작을 한다. 상대를 때려눕혀야만 비로소 그 싸움이 끝나는 줄 알았던 나는 둘 중 한 명이 누워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이 주짓수가 다소 생소했다. 뭔가 신입이 알 수 없는 그런 심도 깊은 의미가 있는 듯했다.
심지어는 코치님이 누울 사람을 공평하게 지정해
주셨다. 그래서 나더러도 누우라고 해서 눕긴 누웠는데 도대체 나는 누워서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건지 참으로 고민스러웠다. 그래도 코치님이 시키는 대로 누워서 이것저것 누르고 조르고 꺾고를 당하긴 했는데… 이거 당하다 보니 이 짓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랑 하는 편이 낫겠구나 싶었다. 이건 뭐 머리채만 안 잡혔을 뿐이지 그냥 처맞는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하나!
아줌마들에겐 절대적인 불문율이 있다. 육탄전을 할 때, 따귀를 때릴지언정 절대로 서로의 머리끄댕이를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무조건적인 금기사항이며, 상대의 머리를 잡는 순간!! 룰이 존재하는 스포츠는 끝난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그렇게 4,5가지의 몹시 유용하고 몹시 거침없는 기술을 배웠고, 의기양양하게 귀가했다. 집에 가니 내 타겟, 내 신랑이 나를 반가워해 줬다.
“여보야… 왜 벌써 왔어? 더 놀다(?) 오지.”
도대체 너는 왜 나만 보면 자꾸 밖에 나가서 더 놀다 오라고 하는 건지… 그나저나 여보야! 넌 이제 큰일 났어! 나 무려 주짓수를 배워왔다고!! 너를 제압할 수 있는 무술이래!!!
나는 선전포고도 없이 아까 처맞으면서 배운 거침없는 기술을 다짜고짜 시전 했다. 일단 누워서!! 주짓수는 일단 누워야 하니까!?! 상대의 옷깃을 잡고… 잡고… 어? 옷깃을 잡아야 하는데… (키 차이 설레는 22센티) 아… 안 잡힌다!! 내 팔이 너무 짧다!!! 할 수 없이 아쉬운 대로 대충 발로 허리라도 잡고… 하… 발도 안 닿는다! 아니, 애초에 놈이 당겨지지도 않는다. (체중 차이 설레는(?) 50Kg) 낑낑대며 버둥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가 그냥 할 수 없이 스스로 엎어져줬다.
“우리 국주… 하고 싶은 게 뭐야? 오빠가 하게 해 줄게. 여보야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왓… 그렇게 적선하듯이 엎어지지 말라고!!!
에라, 모르겠다. 일단 십자조르기를 시전 해봤다. 그런데… 십자… 하… 그걸 하기엔 적의 목이 너무 두꺼웠다!! 아니, 무엇보다 내가 깔려있는 입장이라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움직이기는커녕 명치가 막혀서 숨 쉬기도 힘들었다! 마치 경차 밑에 깔려있는 느낌이었다. 여보야… 너 너무 맘 놓고 엎어져 있는 거 아니에요? 내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고 있으니 그가 물었다.
“여보야, 숨이 안 쉬어져? 여보야가 위로 갈래?”
아냐. 그런 거 아냐. 이런 상황에서 그런 멘트 치지 마. 나는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타가 왔다.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있자니, 그가 비로소 내 애초의 목적을 궁금해했다.
“여보야, 그런데… 여보야가 원하는 게 뭐였어? 뭘 하고 싶었던 거야?”
나도 이젠 모르겠다.
“네에. 여보야를 위협해서 화나게 만드는 거요.”
“…… 왜지?”
“여보야는 화를 안 내니까요. 여보야가 화내면 어떨지 궁금했어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여보야… 어떻게 이런 걸로 화가 나요? 나는 지금 오히려 웃음을 참고 있어요.”
어… 그래… 그렇겠지… 걍 웃어도 돼…
“그래… 내가 화를 냈다고 치자. 그럼 그 후는 어찌하려고? 우리 국주가 오늘만 살 것도 아니고…”
허허, 내가 그 뒷감당을 왜 합니까? 나는 너 화나게 만드는 거, 딱 거기까지만 목표인데. 그 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만?
내가 워낙 오늘만 사는 인간이라.
체급 차 극복 대실패…
QnA Time
Q. 그래서 지금은 체급 차 극복했습니까?
A. 아뇨. 그럴리가요. 그 후로도 이것저것 해봤는데… 그 어마무시한 넘사벽의 체급 차는 극복은커녕 1도 좁혀지지 않더라고요.
Q. 그래도 그 짓을 계속할 생각입니까?
A. 네. 계속 덤빌 생각입니다.
동시에 저는 그가 지금처럼 태산 같은 모습으로 계속 강인하고 건강하게 버텨주길 바랍니다. 행여라도 그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날이 온다면 그땐 정말 많이 슬퍼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