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입던 옷들을 못 입게 되었다.
바지는 커서 못 입는다. 허리가 3인치가 줄었다. 티셔츠는 작아서 못 입는다. 이두와 삼두 때문에 팔뚝이 터지려고 하고 겨드랑이가 끼여서 못 입는다. 재킷은 어깨가 안 들어가서 못 입는다. 원피스는 그냥 안 어울려서 못 입는다. 대략적으로 나는 이제 뭘 입어야 할지 난감한 모양새가 되었다.
차라리 운동할 때는 아무 문제없었다. 그냥 스포츠 브라탑 입고 상탈 하면 되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분께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솔직히… 본인 상탈 하면 좀 위압적인 거 아시죠?”
어… 상탈도 곤란하덴다.
그래서 다음 날 이 근육들을 좀 가려보고자 헐렁한 반팔 티를 입어봤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고 울 체육관 회원님한테 물었다.
“저 반팔 입으니까 좀 여리여리 해 보이지 않아요?”
그랬더니 울 남자 회원님 말씀하시기를…
“네? 여… 여리여리요?? 이두는 부풀어 있고, 전완근에는 핏줄이 튀어나와 있는데요?”
요새 니가 나랑 많이 친해졌구나.
그래, 인정한다. 내가 단어 선정을 잘못했다. 여리여리란 단어는 맞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가… 생사의 선을 함께 넘나들며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수고했다며 주먹치기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는 사실을….
하루는 다른 체육관에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피차 운동 말곤 관심이 없는 터라 운동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야… 꾹! 너도 이제는 고중량 해야지?”
으흥?? 고중량? 그럼 내가 지금까지 목숨 걸고 들었던 그것은 도대체 뭐지??
“어… 그런데… 고중량이 어느 정도인데?”
“10개 이상 못 하면 그게 고중량이지.”
“그래서 너는 그게 어느 정도냐고.”
“나? 나는 스퀏 100kg, 데드는 140kg.”
허… 진심으로 충격받았다.
물론 스퀏과 데드는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유리하다. 하지만 나와 그 친구의 체중 차는 고작 5kg! 그런데도 중량 차이는 엄청났다. 내가 그동안 태백산맥을 들 듯이 목숨 걸고 들었던 중량은 그 친구에게 워밍업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냥 비 맞은 고양이마냥 기가 팍 죽어버렸다.
그래서 내 전우들에게 하소연했다.
“회원님들… 역시 구력 차는 안 되나 봐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내 친구랑 저랑 체중 차가 5kg 밖에 안 나는데 중량 차이가 엄청나네요. 3년 구력은 못 따라가나 봐.”
그러자 내 전우 중 한 명이 말했다.
“5kg 체중 차는 엄청 큰 거예요. 그리고 고중량 안 해도 괜찮아요. 중량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근지구력은 아무도 회원님 못 따라갈걸?”
ㅇㅇ. 진심으로 위로받았다.
축 쳐진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듯했다. 그래!! 나 이제 운동 경력 겨우 1년 넘어가는데… 이 정도면 잘하는 거다. 욕심내지 말자. 역시 내 전우가 최고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날 하체 운동을 하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45kg 중량으로 백스퀏을 하는데 그가 내 뒤로 오더니 말했다.
“우리 중량 10kg만 더 늘려봅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봉엔 판이 더 끼워졌고 나는 어느새 그걸 어깨에 얹고 있었다. 어어? 55kg? 내 체중을 7kg나 초과한 중량이었다. 나 이거 안 될 텐데.
“저 이거 안 해봤는데요.”
“걱정마요. 안 들어지면 내가 뒤에서 들어줄 테니까 세 개만 해봅시다. 풀스퀏으로.”
왓?! 풀스퀏?!! 야!!! 아깐 고중량 안 해도 괜찮다며!! 최선을 다 하는 게 중요하다며!!!! 내가 그날 세 개를 했는지, 풀스퀏으로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냥 정신 차려 보니 그에게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아!! 아깐 고중량 안 해도 괜찮다면서요!!!”
“나도 국주님이 딴 데 가서 밀리는 건 싫어서…“
그는 그렇게 웃으며 사라졌고, 그 후로도 내가 데드를 할 때나 스퀏을 할 때 내 중량을 체크하고 갔다.
와… 정말… 스승님보다도 더 지독한 전우가 생겨버렸다. 이런 운동 처돌이들…
그런데 하체 운동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유산소보다 힘들진 않다. 나는 근손실을 핑계로 와드에 있는 버핏을 슬쩍슬쩍 뺐고 그걸 전우에게 들켰다.
“국주님?? 버핏을 자꾸 빼네요?”
이런 젠장… 이럴 때 변명하면 안 된다. 솔직한 게 최선이다. 특히 ‘유산소를 하면 근손실이 와서요.’ 라는 개소리를 하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그날은 집에 다 갔다고 보면 된다.
“…… 네… 힘들어서요.”
“아하? 그렇군요. 지금부터 당장 하세요.”
어.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나는 그날 얄짤없이 버핏을 다 채웠고, 저 인간이 이젠 전우인지 적인지 살짝 헷갈렸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본타임보다 일찍 만나서 미리 운동을 하는 상덕후 집단으로 진화했다.
그날은 평소보다도 일찍 도착한 날이었다.
나름 뿌듯해하며 체육관 문을 열었는데 상덕… 아니, 전우들이 먼저 와서 턱걸이 파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와… 저러는데 일반인들이 덕후들을 무슨 수로 이길까. 나한테 징글징글하다고 하는 사람들 심정이 딱 이랬겠구나. 라고 공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탈의실로 들어가려 했다.
그랬더니 한 전우가 나를 붙잡았다.
“국주님?? 컨디션 괜찮아요?”
하… 감동했다. 울 체육관에 내 컨디션을 걱정해 주는 전우도 있구나. 싶었다.
“네. 괜찮아요.”
“그럼 와서 턱걸이 한판 해요.”
아하! 그는 내 컨디션이 궁금한 게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턱걸이부터 냅다 갈기자고 하기 민망하니 그냥 예의상 물어본 것이었다. 좋다. 다 좋은데… 가방은 좀 내려놓고 합시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그 예의상이라도 물어봐줄 때가 좋았다는 것을…
하루는 개인 피티를 끝내고 스트레칭을 한다는 핑계로 구석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전우가 나에게 슬 다가오더니 말했다.
“거 다 쉬었으면 고만 나와서 턱걸이나 하시죠?”
“저… 아직 조상님 뵙는 중입니다.”
“갠피때 하체 하셨잖아요. 턱걸이랑은 상관없죠.”
어… 그나마 물어봐 줄 때가 좋았다.
더 변명할 꺼리가 없어진 나는 할 수 없이 턱걸이를 시작했고 그 모습을 멀찌감치서 보신 스승님께서,
“와… 울 회원님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안 지치시나 봐요..“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전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대단하죠. ‘목표도 없이’ 저렇게까지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지요.”
(그러는 지도 목표 같은 거 없음)
그렇다. 우리는 목표도 없었고, 딱히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 덕분에 중량을 더 했고, 서로 덕분에 턱걸이를 더 했으며, 서로 덕분에 유산소를 더 뛰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 덕분에 오늘도 운동을 한다.
내 전우들, 벗들 고맙습니다.
QnA Time
Q. 스퀏, 데드리프트의 중량은 체중이랑 어느 정도 상관이 있나요? 턱걸이는요?
A. 네, 체중과 체형도 영향을 미칩니다.
중량은 당연히 체중이 더 나갈수록 유리하고, 저 같은 하체 약체들은 아무래도 스퀏, 데드는 더 힘들겠죵?
턱걸이는 무게중심이 위에 있는 남성이 여성보다 유리하고, 성별이 같을 경우는 체중이 가벼울수록 유리합니다. 턱걸이는 내 체중이 곧 중량이니까요.
Q. 그럼 중량은 어느 정도가 좋은가요?
A. 중량보다 중요한 건 뭐다??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그냥 ‘와… 이건 진짜 못 들겠는데?’ 싶은 걸 들면 된데요…
Q. 고중량&저반복 vs 저중량&고반복
뭐가 더 힘들어요?
A. 둘! 다!
뭐 하나라도 덜 힘들다면 그냥 그게 모자라지 않았나 생각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