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력 퀸들의 집합소.
매우 자신 있었다.
나 이제 무려 턱걸이가 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찾아갔다. 전국의 근력퀸들이 모인다는 그곳, 폴댄스! 가로로 누워있는 봉이나, 세로로 세워진 봉이나 매달리는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ㅇㅇ. 나는 당시 매우 무식하고 용감했다.
수업 첫날.
봉 위에서 팅커벨처럼 날아다니는 근력퀸들을 슬쩍 구경했다. 왠지 대놓고 보면 안 될 것 같은 포스였다.
그런데 뭔가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자신의 체중을 팔 하나로 버티면서 깃털처럼 날고 있는 퀸들의 팔이 모두… 매끈하게 날씬한 것이 아닌가?!
‘어?? 이두 없이 저게 가능하다고?!?“
궁금했다. 그래서 신랑에게 물어봤다. 그니까 그걸 왜 그에게 물어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여보야… 폴댄스를 갔는데 사람들이… 어… 팔뚝이 없어요. 그니까… 이두도 삼두도 심지어는 전완근도 안 보여요. 보통 한 팔로 매달려서 날아다니려면 이두가 얼굴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근육이 없어도 그게 가능해요?“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어… 보통 여보야같은 근육몬들은… 무용을 한다고 깝치지 않아요. 너 같은 그런(?) 근육은 없는 게 당연하지요.”
롸?! 나 무용한다고 깝치는 근육 몬스터야??
이거 칭찬인지 욕인지 조금 헷갈렸기에 그냥 넘어갔다. 나 같은 그런 근육이 도대체 어떤 근육인지도 궁금했지만 답을 들어봤자 좋을 게 없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것도 넘어갔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그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폴댄스를 시작했다.
첫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님, 4일 차가 되면 폴에 올라갈 거예요.”
하… 4일을 어떻게 기다리나?!
왜 4일이나 기다려야 하나…. 나도 저 퀸들처럼 폴 위에서 날고 싶다… 라고만 생각했다. 폴에 올라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폴에서 날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하는지… 아니, 무슨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때의 나는 몰랐으니까… 저 팅커벨들 때문에 나도 왠지 폴 위에선 중력이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드디어 4일 차, 폴에 올라가긴 했다.
세로로 세워진 폴을 두 손 모아 잡고 당기는 것은 턱걸이와는 전혀 다른 범주에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폴은 발목과 발등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불행인 것은 나는 그런 것들을 단련시킨 적이 없다는 것! 그중 또 다행인 것은 내가 그나마 상체 힘은 좋다는 것이었다. 팔힘이 없을수록 발목과 발등, 그리고 허벅지가 희생되는 것이 이 세계 국룰이었다.
온 힘을 끌어모아 두 번 정도 기어 올라가서야 비로소 매달릴 수 있었다. 정말 그냥 매달릴 수만 있었다. 이건 무슨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코알라랑 다를 바 없었다. 폴을 잡고 있는 두 손은 바들바들 떨렸으며, 폴을 끼고 있는 두 허벅지는 주리를 틀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사지로 폴을 끌어안은 채 사활을 걸고 매달렸다.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주님? 발끝 포인!! 포인은 무용의 꽃이에요.”
으흥? 쌤?? 꽃이란 자고로 따사롭고 편안하며 행복할 때만 얻을 수 있는 풍요의 결과물이 아니던가요?!? 이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불가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라면 해야지 어쩌겠는가… 나는 코알라 자세 그대로 발끝만 파들파들 간신히 폈다. 선생님께서 이걸 원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선생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 그럼 엔젤 자세합니다. 폴에서 손 떼세요.”
눼?!? 선생님…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선생님… 이 손을 떼라고요?”
“네, 어깨 앞으로 빼시고 손 떼세요.”
롸?! 뭘 빼라고요??! 이거 막 그렇게… 빼고 그래도 되는 건가요?? 아니, 빼면 도로 넣을 수는 있는 겁니까? 아니면 광배 뽑는 거랑 비슷한 건가요?
아니, 그보다 저는 죽어도…
“못 떼요!! 이 손은 못 뗍니다!! 선생님!!!”
“국주님? 손을 떼셔야 엔젤을 하시죠.”
“소용없어요!! 절대로 못 떼요!! 엔젤 안 해요!!“
그보다 이거 자세 이름이 왜 엔젤인건가요. 혹시 죽으면 만나는 게 엔젤이라 그런 건가요. 나는 그렇게 폴을 끌어안은 채 선생님과 의미 없는 실랑이를 하다가 질질 끌려내려왔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이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어… 국주님? 수업 아직 안 끝났어요.”
“아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는 이제부터 구경만 하겠습니다.”
“국주님, 지금 폴 딱 한번 타셨잖아요.”
그런가요. 그것도 탔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선생님? 제가 나이도 많고요. 체력도 딸려서 이 이상은 무리입니다.”
하… 진정 구차했다.
이 악물고 턱걸이를 할 때도 나이 핑계는 댄 적이 없으며, 영혼을 갈아서 유산소를 할 때도 체력이 딸린다는 말은 안 해봤다. 그런 내가 30분 만에 포기 선언을 하고 귀가를 구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그냥 순순히 보내줄리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폴을 닦는 척하거나, 폴에 매달려서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귀가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고, 드디어 폴이 돌았다?!
그니까 폴이 돌았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폴은 도는 폴과 고정되어 있는 폴이 있는데… 아니, 두 가지 종류가 있다기보다는 폴을 묶으면 고정되고 풀면 돈다. 늘 고정 폴 위에서만 울부짖던 내가 드디어 도는 폴 위에서 울부짖게 된 것이다.
자고로 운동의 매력은 하나하나 해냈다는 쾌감에 있건만!!! 폴은 그 각각의 허들이 너무 높았다. 폴이 돌기 시작하자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었던 다리가 전혀 쓸모를 하지 못했다. 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팔힘으로 버텼다. (ㅇㅇ. 그러면 안 됨.) 우아하고 아름다워야 할 폴을 하면서 이두와 전완근을 위협적으로 부풀렸다. 심지어 폴이 멈출 때마다 어디선가 선생님이 나타나셔서는 도로 힘차게 돌려주셨다. 정말 몹시 신나는 경험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 팅커벨들은 어째서 이런 극악의 상황 속에서도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폴 위에서도 저토록 편안할 수 있는지?!
그래서 물어봤다.
“저기요… 안 힘들어요? 이거 나만 힘들어요?”
그러자 팅커벨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네, 저도 힘들어요. 참는 거지.”
아하, 참는 거였구나. 이게 참아지는 거였구나.
아… 세상은 넓고 나는 한없이 작고 미약하구나… 그러자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국주님… 팔힘은 진짜 세신데요. 근데 발을 거셔야 해요. 언제까지 팔로만 할 수는 없어요.”
안다!! 알고 있다!!! 그나마도 없었으면 진즉에 모가지부터 바사삭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부터 발을 걸려고 노력을 한 덕분인지 내 발등과 허벅지가 넝마가 되기 시작했다. 온몸에 보라색 피멍이 들었고, 그걸 본 친구들이 물었다.
“야… 꾹… 너 어디서 맞고 다니냐?”
“얘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애냐?”
“……. 그럼 이 온몸에 멍은 뭔데?”
“너 혹시 무슨 조직에 들어간 거 아냐?”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풀어야 했다.
“아… 나 요즘 폴댄스 배워서…”
“거기 선생님이 너 때리냐?”
하…. 아니라고 이것들아. 늬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번엔 작은 아들이 물었다.
“엄마! 운동 선생님이 엄마 때려?”
와… 저 놈이 물어볼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거다.
“아니야. 엄마 폴댄스 해서 그런 거야.”
그랬더니 폴댄스 선생님 카톡 프사를 본 큰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렇게 예쁜 사람이 그랬을 리 없어. 엄마네 운동 선생님이 그런 거지? 솔직히 말해봐. 신고하게.“
이런 일관적인 자식 같으니…
우리 스승님 억울하겠다.
그렇게 오해와 혼란 속에서 또 두 달이 지났다.
나는 그날도 폴 잡고 울다가, 바닥에 앉아서 웃다가 난간 잡고 창문을 바라보며, 어깨가 안 뽑힌다는 둥, 팔이 안 올라간다는 둥, 허리에 담이 왔다는 둥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 체력이 어떻다는 둥, 오늘은 그냥 집에 가야겠다는 둥… 이딴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울 힘짱 국주님? 도대체 옷은 언제 사실 거예요?”
그렇다. 폴 시작한 지 넉 달… 그동안 나는 주구장창 울 체육관에서 운동하던 옷을 고대로 입고 왔던 것이다. 심지어는 이미 운동 한 그대로 땀에 쩔어서…
그날 선생님께서는 어디서 살 수 있는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와… 넉 달간 얼마나 저 말을 하고 싶으셨을까. 그런데 내가 울 체육관 운동복을 고대로 입고 간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냥 옷 갈아입기 귀찮아서다.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하시는데 폴복을 안 살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폴 시작한 지 넉 달만에 떠밀려서 폴복을 구입했다.
폴복을 입으니 영상이 예쁘게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신랑에게 자랑을 했다. 내 영상을 본 그가 말했다.
“울 여보야. 못 하는데 어쨌든… 날씬하니까 못 해도 이쁘다.”
어… 칭찬과 욕을 동시에 들었다.
나의 폴댄스보다 턱걸이를 더 좋아하는 그는 내 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이거 참 화를 내야 하는가. 웃어야 하는가. 아니면 화를 냈다가 웃으면 되는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웃기로 했다.
“여보야. 고마워요. 이런 삶을 살게 해 줘서.”
왜냐하면 내 신랑은 내 물주… 아니, 은인이니까.
“내가 날씬한 것도, 폴에 매달려서 울부짖을 수 있는 것도… 전부 여보야 덕분입니다.”
그리고 나는 6개월 만에 gg 선언을 했다.
ㅇㅇ. 인정한다. 내가 까불었다. 세상은 넓고 나는 작고 미약하며, 모든 게 힘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고 불구하고 내가 폴댄스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때는 진심으로 겸손한 마음만 가득 안고 갈 것이다.
안녕하세요. 나는 운동을 잘 모릅니다.
폴 위에서 날아다니는 팅커벨들 존경합니다.
이렇게 인사부터 박으면서.
Q. 폴 안 미끄러지나요?
A. 네, 그래서 폴복이 노출이 많아요.
맨살이 제일 안 미끄러지거든요. 그리고 폴 하는 날은 로션을 바르면 안 돼요. 수업 시작 전에는 안 미끄러지는 뭔가를 잔뜩 뿌리고 바르고 한답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Q. 또 할 거예요?
A. 고민 중. ^-^
힘들지만 꽤나 매력 있는 운동이거든요.
Q. 아니, 턱걸이도 잘한다면서 폴에 매달리는 게 그리 힘듭니까?
A. 네, 힘듭니다. 힘들고 아픕니다….
안 믿기면 니가 한번 매달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