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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Oct 13. 2022

청혼받았다. 물침대 위에서…

어렸을 적에 아버지 등에 기대어 작은 오토바이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토바이는 나에게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과선배가 오토바이를 몰고 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태워달라고 졸랐고, 결국 그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서 월미도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뭐… 다녀왔다고 해봤자 땅에 발 디딘 적 없이 쭉 오토바이 위에만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고… 자기 여친이 다른 남자 등 뒤에 앉아서 어딘가를 다녀왔다고 하면 싫은 것이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런 쪽으로는 한참 무뎠다. 내가 쫓아다녔기에 나만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 심지어는 그가 질투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며칠 후… 그가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무겁고 투박하고 낡은… 저게 앞으로 전진은 가능한 것일까 싶은 그런 고철 덩어리를 끌고 왔다. 그런데 더 곤란한 점은…  그 고철 덩어리 뒷좌석에 등받침과 개방석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거기가 그 고철의 vip 석이었다.


 “선…배님? 그 고ㅊ… 오토바이 어디서 났어요?”

 “중고로 샀어.”


중고가 아니라 어디서 쓰레기를 주워온 것 같다.

어떤 양아치 새끼가 저 사람한테 저딴 고철을 오토바이라고 속여서 판 건지. 그리고…


 “그… 개방석은 왜… 도대체…”

 “너 엉덩이 아플까 봐…”

 

아… 역시 그 vip석은 내 자리였다. 젠장…


 “어… 근데 왜 개방석이에요. 사람 방석이 아니고?”

 “아? 이거 개방석이었어? 제일 푹신해 보이길래 샀는데.”

 

당연히 푹신하겠죠. 개들한테는 그게 침대니까…


 “선배님… 그… 혹시… 그거 이륜자동차 면허… 그러니까 오토바이 면허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어!! 땄지!”

 “왓?? 언제요???”

 “그저께 합격했어. 한번 떨어졌었어.”


와… 이 사람… 생각보다 무섭다.

내가 그 월미도에서 내리기라도 했다면 월미도 바이킹이라도 뜯어올 기세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고철… 아니, 오토바이를 갖게 되었다. 이름도 지어줬다. 뾰닐 3세라고… 뾰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왜 1세가 아니고 3세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봐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검색해 봐도 안 나왔다. 우리는 그 고물 뾰닐과 함께 동으로는 동해가, 서로는 서해가, 남으로는 남해가 그리고 북으로는 민통선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내비게이션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는 인쇄해서, 때론 그가 직접 그려서 들고 다녔다.


그리고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뾰닐은 튼튼하고 건강했으며 힘이 셌다. 게다가 기초대사량까지 낮았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였다.)


더불어 우리의 데이트도 훨씬 다채로워졌다.

온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서울 거리를 우리만 달릴 수 있다는 쾌감, 벚꽃 내리는 봄에 꽃잎을 맞으며 달리는 행복감, 한여름 밤에 시원한 바다 바람맞으며 달리는 그 청량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것은 단연코 그의 등판이었다. 뾰닐을 탈 때마다 양손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가슴은 태평양처럼 드넓은 그의 등짝에 밀착시켰으며, 내 볼은 두툼하고 커다란 그의 어깨에 살짝 얹었다. 그러고는 그의 목덜미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그의 시더우드 쿨스킨 향을 킁가킁가 거리면 뭐… 벚꽃이고 여름 바람이고 나발이고 그냥 싹 다 배경음악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내 헬멧이 안면 오픈형이었다.)


그리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에게 전화가 왔다.


 “국주, 어디야?”

 “네, 선배님. 저는 000에서 친구들이랑 맥ㅈ …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국주야, 지금 막차 끊겼어.”


왓… x 됐다.

막차가 끊긴 것은 상관없었다. 다만 그거 때문에 그가 여기로 올까 봐 그것이 문제였다.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무서운 게 아니었다. 그냥 지금은 친구들에게 그를 보여주기가 살짝 거시기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안주 대신 각자의 남친을 주구장창 씹었으니까…


 “괜찮아요. 한정거장이니까 천천히 걸어가면 돼요. 저 완전 멀쩡해요. 절대로 오지 말아요.”


라는 말은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고, 잠시 후에 그가 뾰닐과 함께 나타났다. 손에는 밧줄을 들고?!?


 “선배님… 왜 왔… 아니, 그 손에 든 건 뭐예요?”

 “어… 이거? 철물점에서 산 밧줄?”

 “…… 왜요?”

 “너 술 먹었잖아.” (어떻게 알았지?)


근데 나 술 먹은 거랑 저 밧줄이랑은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어… 그러니까 왜요? 나 술 먹었는데 왜 밧줄을…”


어떤 물건을 봤을 때는 그래도 그것이 이해 가능한 범주에 있어야 그 용도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근데 이건 뭐 도저히… 그때 그에게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안전벨트.”


뭐? 뭔 벨트? 잠깐만요!!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밧줄로 내 몸통을 동동 싸메기 시작했다. 싸면서 자기가 군대에서 밧줄을 많이 묶어봤으며, 이걸 참 잘 다루니 걱정 말라는 말까지 중얼거린 것 같다. 그러더니 자신의 작업물을 통째로 개방석 위에 올려놓고는 자신도 앞자리에 앉은 후에 남은 밧줄로 자신의 허리도 동동 싸는 것이었다?!?

  

 “국주야, 팔로 내 허리 안아.”


와우!! 응당 설레어야 할 말인데…

인파가 북적이는 번화가 한복판에서 밧줄에 묶인 채 저 명령에 따르자니 뭔가… 매우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손목만 포박하던데… 나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몸통 전체가 밧줄로 묶인 채 오픈된 고철덩어리에 실려가야 하는 것일까. 하물며 얼굴이라도 가려주던가… (아까도 말했지만 망할 헬멧도 오픈형임) 내가 얼굴이 벌게져서 머뭇거리자 그는 내 손을 억지로 끌어다가 본인의 복부 위에 척척 포개고는 그것을 다시 밧줄로 묶는 것이었다?!


 “됐다!!! 가즈아!!”


야!!! 씨바… 잠깐!!! 되긴 뭐가 된건데에엑!!!!

나는 그렇게 밧줄로 사지가 묶인 채 뾰닐 뒷좌석에 실려서 친구들의 눈물겨운 배웅을 받았다. 그때 친구들은 나를 몹시 이해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웃지 마 이것들아… 이건 마치 목 아래 부분을 통째로 땅에 묻힌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목 위가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목 위를 남겨둔 것은 순전히 호흡만을 위한 것이었다. 내 앞판이 그의 뒷판에 강하게 부착이 되어있는 탓에 모가지가 한쪽 방향으로 과도하게 꺾여서 고정이 되어 있었고, 나는 그 상태로 나란히 지나가는 자동차 안의 승객들과 눈을 마주하고 달려야 했다. 그 당시에 유튜브라는 것이 있었다면 난 그때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까비…


그렇게 그는 나를 포박한 채로 어깨에 메고 올라가서는 내 자취방에다가 풀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람이 생각지도 못 한 일을 겪으면 흥분과 분노로 인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하여 뇌가 각성하고 근육이 펌핑되며… 아무튼 나는 방금까지 나랑 나란히 달리던 운전자와 눈싸움을 해야만 했던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포박이 풀리자마자 집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뾰닐에 도로 올라타려는 그를 불러 세웠다.


 “야!! 율군!!! 이 미친 새끼야!!“


헬멧을 쓰려던 그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서서히 돌아봤다. 근데 막상 욕을 섞어서 불러 세우긴 했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참 고민이 되어서 그렇게 한 10초간 멈춰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선배님은 왜 맨날 나를 곱게 집에 들여보내 줘요?”


라고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싸고 말았다.

하… 저건 아드레날린이 내지른 말이다. 절대로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눈썹만 까딱이던 그가 입도 달싹이더니 드디어 말을 했다.

 

 “내가… 곱게… 들여보냈던가? 밧줄로… 묶어서… 들여보낸 거 아닌가?”


너무 맞는 말이라 할말이 없어서 그 상태로 10초간을 더 노려봤다. 그러자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국주야… 밧줄 도로 가져와.”

 

아?? 형님!! 내가 잘못했어요!! 왜 또 밧줄을 찾으십니까!?!

 

 “선배님… 저 이제 술 다 깼어요. 밧줄 필요 없어요. 자력으로 잘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옆 차 운전자랑 눈 마주쳤을 때 이미 술은 깼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밤, 드디어 우리 집도, 203호도 아닌 곳으로 갔다. 전등이란 전등은 다 찾아서 켜도 어둡고, 뭐든 두 개씩 있으며, 침대가 과하게 울렁거리고 가끔 화장실 벽이 유리로 되어있는 그곳.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밧줄과 함께 내 옷들이 속옷까지 매우 깔끔하게 개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막상 지 옷들은 화장실 앞 발걸레로 쓰고 있었다. 아니, 선배님.. 이건 도대체 왜 개는 겁니까? 그 위에 밧줄은 왜 말아두는 건가요? 그리고 왜 니 옷으로 발을 닦습니까? 그날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꼭 하룻밤을 보내봐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달콤한 시간이 흘러 가을이 오자 그는 뾰닐 3세를 도로 팔아버렸다. 와… 저걸 또 사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리고 그다음 해 봄에 뾰닐 4세를 데려왔다. 그렇게 뾰닐 5세를 데려올 무렵 그가 물었다. 아마도 내가 먼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선배님, 오늘도 잘 생겼어요.”

 “…… 국주야… 그거 말고는 이유 없어?”

 “무슨 이유요?”

 “나랑 사귀는 이유는 없는 거야?”


아니, 잘 생겼다는 거 말고 다른 이유가 또 필요한가요? 라고 말하면 상처받을 거 같은 눈이었다. 그래서 뇌즙을 짜내 고심하고 고심해서…


 “멋있어요… 특히 선배님 기타 칠 때…”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결혼식 때 기타 쳐 줄게.”


네… 그러세요… 그거야 니 마음… 네????


 “누구 결혼식 때요?”

 “우리 결혼식…”


나는 그렇게 그에게 청혼을 받아버렸다.

불을 아무리 켜도 어둡고, 뭐든 두 개씩 있는 방 물침대 위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안 입고 반지만 낀 채 결혼을 약속했다.


여보야, 프로포즈는 옷 입었을 때 했어도 됐잖아요.


Behind Story

그가 그러더군요.

브런치에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왜냐고 물었더니… 제가 잘 생겼다고 거짓말을 많이 해놔서 부끄럽다나요.


그런데요. 제 눈에는 지금도 잘 생겼습니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요?

굳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잘 생겨 보여야 하나요?

안 그래? 여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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