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
“꾹! 너 율군 선배랑 친해지려면 게임 잘해야 해.”
유진이 말했다. ㅇㅇ.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디아블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당시 시중에 나온 게임들은 화질도 나빴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게임들이 있었으니,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리니지가 바로 그들이었다. 물론 이들은 지금도 게임계의 상위 랭커들이지만, 당시에는 그 바닥을 모두 싹 쓸 만큼 그 위세가 당당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디아블로가 새로 출시되는 날이면 컴퓨터 판매량과 퇴사율이 급증했을 정도였다. 게임의 세계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일단 스타크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못해도 너무 못해서였다. 컴퓨터한테 1:1로 졌다. 도저히 인간과 대결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때려잡고, 부수기만 하면 되는 디아블로를 선택했다. 그것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몰랐다.
우리는 집 앞 pc방부터 정복하기로 했다.
율군이 자주 가는 곳은 갈 수 없었다. 그가 근처에 있으면 게임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수련이 필요했다.
pc방의 첫인상은 담배굴이었다.
당시엔 술집, pc방, 당구장 등등이 금연이 아니었다. 문을 열자마자 화마 같은 뜨거운 담배 연기가 내 얼굴을 덮쳤다. 자리마다 놓여있던 위풍당당한 재떨이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형체를 아련하게 지우고 있는 담배 연기, 양손에 각각 담배와 마우스를 잡은 현란한 손들, 따각따각 마우스 소리, 가끔 육성으로 나오는 험한 욕들, 간헐적으로 풍기는 라면 냄새… 이것이 20년 전의 흔한 pc방 풍경이었다.
“여기 너무 좋은데?”
그러자 그녀가 나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야.”
그렇게 나는 그날 다이블로의 세계에 입덕 했다.
그야말로 신세계… 시야에 가득 찬 작은 모니터는 내 세계의 전부가 되었다. 일단 그 안으로 진입하면 모니터 뒤의 세계가 존재함을 인지하지 못했고, 현실의 시간은 완벽하게 멈추었다. 나는 겪어보지 못 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금단의 구역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 것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한 날은 비가 추적추적 왔다.
나의 마법사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헐벗은 상태로 해골들을 때려 부수고 다녔다. 땅굴이란 땅굴은 다 기어들어가 보고 상자란 상자는 다 열어가며 온 npc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유진이 말했다.
“어느 세월에 디아 잡을래?”
허… 디아블로는 엄연히 시물레이션 게임이다.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플레이를 해야 한다. 오로지 렙업에만 혈안이 되어 스토리를 모조리 생략하며 때려 부수기만 하는 무식한 게임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고작 디아 하나 잡겠다고 이걸 하는 것이 아니다.
(ㅇㅇ. 디아블로는 그냥 디아 잡는 게임임.)
그리고 디아 경력 반년차, 나 역시 스토리고 나발이고 세계관 최강 화염방사기 소서리스, 피 빠는 바바리안 위주로 게임을 했고, 모든 캐릭터의 최적 스킬 트리를 파악했으며, 전설템이 나오는 장소와 시간대를 꿰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모든 음료가 포션이었고, 길바닥의 맨홀 뚜껑은 웨이포인트였으며, 내가 죽으면 우리 집에서 헐벗은 상태로 되살아 날 것만 같았다. ㅇㅇ. 중독에는 약도 없었다.
불행히도 당시에는 밤샘 정액권이라는 것이 있었다.
밤샘 정액원이란, 일정 금액으로 pc방에서 밤을 새울 수 있게 해주는 악마의 시스템으로써 그 금액마저 상당히 저렴했다. 하여 우리는 낮에는 학교를 가고 밤에는 pc방으로 출근을 하는 정신 나간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석 달 후 pc방의 직원이 우리를 vip 손님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지정석 따윈 없던 시절 지정석을 줬고, 그러면 안 되었을 텐데 가끔 맥주에 라면도 그냥 줬다. 그리고 다시 석 달 후 문득…
“야, 찐, 나 쪽팔려.”
“뭐가?”
“우리 이제 다른 pc방 가쟈.”
“왜?”
“알바가 보기에 우리가 맨날 겜만 하는 줄 알 꺼 아냐.”
“맨날 겜만 하는 거 맞잖아. 맥주 준다고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야, 우리 이미지 생각도 해야지.”
“니가 언제부터... 하... 그래 딴 데 가자.”
우리는 곧 새로운 pc방을 개척했다.
고향 pc방과 병행하면 될 일이었다. 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카운터를 봤는데…왓더… 우리가 늘 보던 그 직원이 그곳에도! 있었다.
니가 왜 거기서… 도대체 어떻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않나? 혹시 쌍둥이? 그는 몹시 혼란스러워하는 우리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오늘부터 여기로 옮겼어요.”
아, 그렇구나. 젠장. 나도 얼떨결에 변명을 했다.
“우리도 오늘부로 여기로 옮겼어요.”
우리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물었다.
“왜요? 나야 여기가 돈을 더 많이 줘서 옮겼는데 그쪽은 왜 옮기셨냐고요.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아... 느닷없이 서운해하는 그에게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졸지에 맥주랑 라면을 주구장창 얻어먹고 배신한 배신자가 되었다. 아니면 낮엔 여기 오고 밤엔 저기 가는 미친 인간들이 되었거나…
진퇴양난, 빼박캔트… 이럴땐 솔직한게 최선이다.
“그냥 쪽팔려서요.”
“아... 그렇구나. 하긴 그렇겠구나.”
ㅇㅇ. 그리고 빠른 납득 완료. 다행이었다?!
그는 새 pc방 사장님께 저분들은 매일 오시는 손님들이니 잘해드려야 한다고 언질을 넣었고, 우리는 처음 방문한 그곳에서도 vip 대접을 받았다. 하… 고마워라…
그리고 몇 달 후 그 세계의 현금 격이었던 조던 반지의 복사가 가능하게 되면서 우리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임이든 인생이든 치트키가 생기면 재미가 없어지게 마련이니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디아블로가 출시되면 일단 지르고 본다. 그리고 본인의 캐릭터에 서로의 실명을 넣어서 스윗하게 키운다.
여보야, 부두술사에 내 이름 넣는 건 너무하잖아요.
이 글 이해하시는 독자님들, 최소 나랑 같은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