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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an 22. 2021

전남친 집에 갔다.

봐라, 과거 청산은 이렇게 하는 거다.

선배들이 강남으로 호출했다.

모르겠다. 홍대였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군중들에게 쓸려 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왜 아름다운 도시 인천을 두고 이런 곳으로 부른 건지. 투덜대며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더니, 그들이 번쩍거리는 조명 아래에서 형형색색 무지개색의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어라? 저런 거 먹는 인간들이 아닌데.


 “오~ 국주, 왔어?”


아하. 딱 보니 왜 불렀는지 알겠다. 강우 선배 옆에 고운 여성분이 계셨다. 이거 이거… 자랑하려고 불렀구먼? 와,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야, 김국, 뭐 마실래?”

 “참이슬.”

 “..... 야, 여기까지 와서 뭘 그런 걸 마셔? 여기 퍼플미드나잇 맛있는데 그거 마셔볼래?”

 “퍼... 뭔 나잇이요?”


그런 거라니. 그럼 니가 우리랑 후문에서 궤짝으로 마신 참이슬과 수없이 씹은 삼치들은 뭔데?

하, 그래. 알겠다.


 “네... 그 퍼 어쩌고 그거 주세요.”

 

이거 네이밍은 도대체 누가 하는 건지…

주문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곤 전혀 없는 이름의 칵테일을 번복해서 주문하다 보니 칵테일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그래서 맥주로 갈아탔는데… 이번에도 나에게 酒권은 없었다. 하… 대충 먹자 제발… 노란색, 더 노란색, 더더 노란색.... 맛은 다 똑같구만.

강우 선배는 그렇게 약 3시간을 염장을 지르고 나서야 우리를 풀어줬다. 아, 지친다. 집에 가자.

하고 나오는데 윤동 선배가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야, 김국… 너 후문 가지? 태워줄까?”


뭐? 윤동 선배 차도 있었어? 나야 고맙지. 하고 대답을 하려는데,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보도듣도 못한 차에 불이 들어왔다. 노란색 납작한 스포츠카였다.


 “헐. 윤동 선배, 저건 어디서 났어요?”

 “그건 알 거 없고. 타!”


알 거 없다니…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지하철보단 빠르겠지 싶어서 탔다. 뭐 별일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차 뚜껑이 스르르 열렸다. 이런…


 “선배!!! 뚜껑 닫아요!!!! 쪽팔려!!”

 “왜애애애? 이건 이런 맛에 타는 거야!”


혹시 군중에 쓸려 다니는 서울 한복판에서 스포츠카를 타 봤는가. 속도 계기판의 숫자는 300이 넘게 표시되어 있지만 절대 그 속도로 달릴 수 없다. 군중과 함께 해야 해서 차 속력 역시 그들의 도보 속도와 비슷했다. 나는 뚜껑 올린 스포츠카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으로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시선을 윙크로 답을 하는 최윤동을 보고 생각했다. 저 시키 옆에는 못 앉아있겠다. 나도 그냥 군중이 되자.


 “선배, 나 그냥 내려서 걸어가 루우 우우 어어 억!”


순간 차에 속력이 붙었다. 복잡한 길바닥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넓은 도로로 들어가자 그는 미친 듯이 속력을 내며 칼치기를 시작했다. 동시에 내 머리카락은 파도 속의 물미역처럼 살아 움직였고, 콧구멍으로는 독한 버스 매연이 강제 주입되었으며, 내 안면에는 벌레들이 날아와서 자살하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윤동선배!! 뚜껑 닫아요!!!!”


씹혔다.


  “윤동아!! 뚜껑 닫으라고!!!”


또 씹혔다.


 “최윤동!! 뚜껑 닫으라고 이 미친 새끼야!!”


또 씹혔다. 그래, 니 맘대로 해라. 어케든 집에만 가면 되겠지. 무사히만 도착해다오.


근데.... 불길한 신호가 왔다. 아까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것이다. 이런 낭패다.


 “윤동선배!!!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어!! 한 시간!!!”


젠장… 한 시간은 죽어도 못 버틴다.


 “어… 네… 그럼 밟아요!!!”


그러자 그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좋았어!!!! 즐길 준비됐어?”


그런 거 아니라고, 이 또라이야…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거리를 30분 만에 완주했다.

그는 나를 학교 후문에 떨구고 윙크를 하며 사라졌다.


 “야! 집까지 바래다준다며!!”


하, 이런… 학교는 닫혀있을 시간이었고 집까지는 도보로 또 30분. 너무 늦은 시간이라 상가들도 모두 닫혀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통학이라 근처에 친구 집도 없었다. 이대로는 집까지 절대 못 간다.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나에게 선택권은 딱 세 가지가 있었다.

일 년 전에 헤어진 전남친 집, 내 짝남 집 그리고 길거리… 결론이 나오기까지 0.1초도 안 걸렸다. 절대로 내 짝남에게 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반면에

과거야 버리면 그만 아니던가.


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생리적 욕구가 이성을 짓눌러서 벨을 누르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문을 열어준 전남친은 다행히 나 때문에 잠에서 깬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주 말똥말똥했다. 나는 토끼눈이 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얘기했다. 허리를 펼 수 없는 상태여서 자세가 그러했다.


 “야… 오랜만이야. 진짜 반가워. 반가운데... 나 화장실만 좀 쓸게. 미안해.”


그가 입을 달싹이며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의 어깨를 밀어버리고 집안으로 침입해서 화장실로 직진!! 그리고 모든 것을 해결했다!! 햐… 시원하다. 근데… 젠장…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그제서야 민망함이 쓰나미 밀려오듯 밀려왔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봤다.

혹시 도심 속에서 미친 듯이 달리는 뚜껑 열린 거 타 봤는가. 시속 150의 속도로 도심의 매연과 벌레를 정통으로 맞으며, 내 머리카락 역시 시속 150의 속도로 스타일링 된다. 즉, 얼굴에는 숯검댕이가 골고루 처발라져 있었으며 머리는 미친년 산발이 되어 있었다. 혹시나 싶어 얼굴을 쓱 문질러봤더니 숯검댕이가 쓱 밀려서 마치 일부로 칠한 듯한… 그러니까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되었다. 오케이. 안면 포기. 머리라도 어떻게 해보자 하고 화장실 구석에 있는 꼬챙이 빗을 들어 정수리 정중앙에서 꽂아 내렸다. 빗은 조금 움직이더니 멈췄고 종국에는 머리에 꽂혀서 빠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옷 벗고 본격적으로 씻을 수도 없었다. 어…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는 얼굴은 까맣게 도포하고, 정수리에는 빗을 꽂은 상태로 화장실에서 조신하게 나왔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그가 왜 안 자고 있었는지.

그는 지 친구들하고 지네 집에서 불토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충 세어보니 대략 6명.....


 “죄송합니다아.”


할 말은 이거밖에 없었다.

뭐… 어쨌든 내 친구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다음 월요일, 등교를 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뒤돌아보니 그저께 그 전남친....


 “야! 너 때문에 내 전여친 미친년이라고 소문났어. 어떻게 책임질래?”


미안합니다. 근데 뭐… 그리 새삼스럽게…


나는 그렇게 시원하게 과거를 내던져 버렸다.

봐라, 과거 청산은 이렇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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