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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12. 2021

싸다구는 그렇게 날리는 거 아니야.

흔한 남녀의 흔한 로맨스

율군, 그는 꽤 인기가 있었다.


뭐… 내 눈이 해태 눈이 아닌 이상, 내 눈에 잘 생겨 보였다면 그 누군가의 눈에도 잘생겨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쯤 이미 우리 모임 사람들은 그와 나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였으며, 내 옆자리는 늘 그의 자리로 남겨주었다. 그는 늘 지각을 했고 언제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내 옆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아성에 누가 감히 그에게 다가올 생각도 못 했을 것 같긴 하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그날의 선정 도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였다. 나는 그의 옆에서 그의 체취를 느끼며 주인공의 정신병적 기질을 이해하는… 하… 그냥 새삼 그가 나를 받아준 것이 너무 신기하다. 어쨌든 나는 그날도 책 보다 그에게 빠져있었다.


그리고 일은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ㅇㅇ. 언제나 일은 화장실에서 벌어진다. 손을 씻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야! 김국주!”


누가 나를 이렇게 친근하고 호전적으로 부를까?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역시 누군지 모르겠다.


 “누구세요?”

 “넌 남자한테 빠져서 모임 멤버도 모르냐?”

 

뭐? 너 우리 멤버야? 근데 왜 나는 너를 처음 뵙지?


 “처음 뵙겠습니다??”

 “허… 나 2주 전에 들어왔는데?”

 “그렇군요. 그럼 볼일 보고 나오세요.”


누가 봐도 나한테 시비터는 거였지만 나는 분명히 그냥 나가려고 했다. 그랬는데….


 “야!! 나 율군이랑 같은 과… 이혜경… xx학번이니까 내가 니 선배겠네?”

 

 그녀가 갑자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그렇군요? 선배? 몰라뵈서 죄송하고…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뭘까요?”

 “너 선배한테 말이 짧다?”

 

와우, 우리 모임에  또라이가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 모임은 책을 읽는 독서 모임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왜 또라이 컬렉션이 되어가는 것인지 의아했다.


  “됐고… 김국주 너, 율군한테서 떨어져. 그거 내가 먼저 찜했어. 내 거야.”


그거라니?

우리 율군… 거기서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있는 거야?


 “하? 그거?? 선배야… 율군 선배가 공공재냐?”

“…… 어… 어쨌든 난 분명 경고했다.”

 “선배야… 너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율군 선배는 나 안 좋아하는데?”

 

 그 말은 들은 또라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진짜? 믿어도 돼? 진짜?”


뭐지? 얘 살짝 모자란가?

그런데 대놓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또라이를 보니 은근 열받았다. 그래서 안 해도 될 첨언을 해버렸다.


 “야… 근데… 여기서 우리끼리 니꺼니 내꺼니 하는 거 의미 없어. 왜냐하면 너도 희망은 없어 보이거든. 그걸 아니까 너도 지금 나한테 와서 이 지랄하는거 아냐? 율군 선배한테 말이나 한번 걸어보셨나? 모지란 년.”


순간 ‘타닥’ 턱에 두 차례 충격이 들어왔다. 손등으로 오른쪽 턱, 손바닥으로 왼쪽 턱. 따귀가 날아온 것이다.


오케이! 목격자 3명…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짓은 정당방위다. 이건 분명히 니가 시작한 거야. 오늘부로 니 눈깔에 전투력 측정기를 달아주마. 넌 오늘 걸어서 못 나간다.


 “혜경아… 너… 따귀 때릴 줄 모르지?”


 그녀는 순간 흠칫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혜경아… 너 왜 싸다구를 귓방망이라고 하는 줄 알아? 예부터 우리 지혜로운 선조들은 이름을 이유 없이 짓는 게 아니란 말이지.”


허세가 팔할, 아가리 파이터 김국주… 최대한 다정하게 얘기했건만… 패기로왔던 그 모습은 어딜 가고 그녀는 예상외로 겁을 먹어버렸다.


 “괜찮아. 혜경아… 왜 도망가… 일루 와봐. 내가 제대로 가르쳐줄게. 손바닥 위치가 틀렸잖아. 그렇게 때리면 안 아파… 나 봐… 안 아프잖아. 모가지를 돌릴 각오로 후려쳐야지. 안 그래? 일루 와… 내가 너 오늘 코수술시켜줄게.”


그렇게 혜경이는 튀었다.


 “혜경아!! 친구야! 너 어디 가니!! 우리 대화 중이잖아!”


따라가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다가 밖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만두었다. 또라이 하나 잡자고 내가 또라이가 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선배님, 인기 좋네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도 씩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와… 은혜롭다… 그래… 나 턱 맞을 만하다. 그런데 왜 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정상이 아닌 걸까?


 “선배님, 그런데 왜 선배님 좋다는 사람들은 다 또라이일까요? 뭐… 그런 종류의 마력이 있나?”


그 말을 들은 그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후배님보다 더 미친 사람도 있습니까?”


천사같은 미소를 지으며 저런 말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왜 저때 저 얼굴에서 진짜 똘끼를 발견하지 못 했던 것일까… (제대로 홀려있었음.)


흔한 남녀의 흔한 로맨스 그리고 흔한 클리쉐,

삼각관계… 어쨌든 내 율군은 인기가 좋았다.

그 후로도 몇 명이 더 있었지만, 최강 혜경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좋은 인연 만나서 잘 살고 있기를…


그런데 이것도 삼각관계라고 할 수 있나…


*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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