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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pr 21. 2021

내 발목을 줄게. 넌 키스를 내놔.

나머지 발도 가져가.

이번 에피소드는 지난 화와 이어집니다.


나는 그렇게 쫓겨나듯 내 발로 나와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아.... 정말 18년 같은 하루였다. 그런데 막상 집에 오니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만 하루 만에 입원실에서 나온 걸(쫓겨난 걸) 그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아니, 꼭 말을 해야 할까?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모르지 않을까? 그냥 잠수를 탈까? 이런 대략 정신 나간 생각을 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댓발, 빡침이 스멀거리는 전화벨이 울렸다. 그걸 본 순간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그렇다. 그는 내 애인이었고, 내 발을 작살낸 장본인이었으며, 겨우 업어다가 가둬놓은 나는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뛰쳐나갔다. 그 사실을 어떻게 그가 모를 수가 있으며, 잠수? 당연히 불가능했다.


 “네, 선배님.”

 “…… 김국주, 난 병원인데 넌 어디야?”


잠시 정적…


 “선배님. 진정하고 들어 보세요.”

 “......”

 “저… 어젯밤에 퇴원했거든요.”

 “...... 도대체 왜?”

 “그건… 비밀이에요.”


그 이유까지는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불난 곳에 신나까지 뿌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너 이번엔 어디 가지 말고 집에서 딱 기다려.”


선배님도 참, 발등이 작살났는데 제가 어딜 갈 수 있겠습니까. 얌전히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5분 뒤, 쿵쾅쿵쾅 문을 쳐부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어? 벌써 온 건가? 차로 달려도 15분은 걸릴 텐데… 그리고 왜 초인종을 놔두고 문을 부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문을 열어주니 그가 아니라 왠 김회욱이 엎어지듯 쳐들어왔다.


 “야!! 김국주 괜찮아? 너 하반신 불구 됐다며?”


이건 또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나저나 이 자식은 왜 여기저기 도처에 깔려있는 기분이지? 분신술이라도 하나?


 “야… 넌 또 왜 왔냐? 그리고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냐? 아니, 도대체 왜 온 거야?”

 “어. 율형이 자기 올 때까지 니 수발들고 있으래.”


으흥? 니가 피카츄니? 가란다고 가고, 하란다고 하게? 그리고... 이 미친 신뢰도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김회욱이라도 쟤도 남자인데 내 수발을 들라고 저 인간을 보냈다는 것은… 그냥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근데 꾹. 다리는 왜 그런 거야? 너 또 칠칠치 못하게 넘어졌지?”

 “아냐.” (말 걸지 마)

 “그럼 누가 이런 거야? 어떤 씨발라먹을 새끼가 그런 거야?”


뭐? 씨발라먹을 새끼?? 저 자식이 지금 감히 누구한테 욕을 하는 거야?


 “야!! 너 그 더러운 입으로 우리 율군 욕하지 마!!”

 “그 씨발라… 어? 어어? 율형? 우리 율형?”

 “어. 그래. 니네 율형 아니고 내 율형.”


잠시 입을 달싹이며 아무 말도 못 하던 욱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너 언젠간 그리 될 줄 알았다. 그러게 적당히 좀 깝치지.”

 “야!! 닥쳐!! 너 나가! 나 피카츄 필요 없어!”

 “안돼. 형이 올 때까지는 나 여기 있어야 해.”


와. 내 한 몸도 피곤한데, 쟤까지 돌봐야 하나. 진짜 싫다. 아니, 근데 가만? 느낌이 싸했다. 이거 혹시... 말로만 듣던 삼각관계인가? 그래. 이런 건 고민해봤자 답 안 나온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야. 욱쓰.”

 “왜? 꾹. 맥주 갖다 줘?”

 “아니, 나 환자... 아니 됐다. 혹시 너....”

 “나 뭐?”

 “너 혹시… 내 율형 좋아하냐?”


순간 욱쓰의 얼굴이 꾸깃꾸깃 일그러지더니 곧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야… 꾹… 너… 뇌도 다친 거니? 그런 거야?”

 “뭐? 아냐… 아니면 됐어. 미리 말 하지만 그거(?) 내 거다. 건들면 디져. 오케이?”


그리고 어디서 뇌 지적이야? 너나 나나 도찐개찐… 그때 뒤에서 빡친듯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국주. 그게 뭔데? 뭐가 니거라는 건데?”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더니, 여전히 잘생긴 그가 문간에 서있었다. 와. 황홀… 어? 그런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선배님. 어떻게 들어왔어요?”

 “들어오라고 문이 아주 활짝 열려있던데?”

 

허… 김회욱 이 허술한 새끼가…


 “야! 욱쓰. 넌 문도 안 닫고 들어오냐?”

 “미안… 맘이 급해서......”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저런 놈을 보내면 어떡해요?”

 “어? 누가 누굴 보내? 김회욱? 너 어디 갔냐고 묻길래 그냥 말해준 건데. 그러게. 김회욱 넌 왜 왔냐?”


허…. 욱쓰 이 자식, 귀에 자체 통역기라도 달렸나.


 “야… 욱쓰. 너 왜 니 멋대로 해석하고 난리야?”


머뭇머뭇하던 욱쓰가 그를 향해 말했다.


 “아니. 형… 김국주가 아무리 개차반처럼 굴기로서니, 애 다리를 부러뜨리면 어떡합니까.”


왓… 개차반? 너 진짜 개차반을 못 본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나의 그가 풀이 죽어서 어깨가 축  내려갔다.


 “… 일부로 그런 거 아니야.”

 “일부로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실수를 해야 발목이 부러집니까. 하… 아니다… 어쨌든 형 왔으니까 난 갑니다. 야. 꾹. 또 올게.”


어. 오지 마. 다시는 오지 마. 203호에도 오지 마.

욱이 나가자 그가 말했다.


 “자. 국주야.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해볼까?”

 “..... 뭐를요?”

 “입원실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냐고.”

 

 그래. 올 것이 왔구나. 거짓말을 해봤자 통하지도 않을 것이고, 사실 마땅한 변명거리도 없었다. 경비 아저씨랑 싸워서 나온 거지만 애초에 내가 처음 나갈 마음을 먹었던 그 원초적인 이유…


 “선배님이 보고 싶어서요.”


이게 진실이었다. 나는 어제저녁, 율군이 보고 싶어서 몰래 나가려고 했던 거고, 그러다 경비 아저씨한테 걸린 거고, 그래서 싸우게 된 거고, 그래서 나오게 된 거다. 그러니까 일단 시작은 저거였다. 그 말을 들은 그가 피식 웃었다.


 “내가 병원에서 다 들었는데?”

 

허… 근데 왜 물어보십니까?

 

 “그치만 선배님이 보고 싶어서 나온 건 맞아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아무 말이 없던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방바닥에 시선을 박고 조곤조곤 말했다.


 “...... 미안해. 다치게 해서.”

 

 나는 반년을 넘게 그를 쫓아다녔다. 아니, 캐나다에 유배 갔던 시절까지 생각하면 짝사랑만 거의 2년이었다. 결국 지금은 사귀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가 나를 받아준 이유는 모른다. 없던 애정이 갑자기 생긴 것인지, 아니면 한 번은 사귀어줘야 내가 그만둘 것이라 생각해서 사귀어 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지은 죄도 많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는 늘 그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애정이랑은 상관없는 이유긴 하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절대로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배님… 말로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살짝 눈을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아. 깜짝이야. 나는 왜 저 얼굴만 보면 기가 죽는 것인가. 아니다. 쫄지 말자.


 “소원 들어주세요.”

 “… 소원? 무슨… 후배님, 뭘 원하는데요?”


하. 우리 선배님. 긴장하셨네. 후배님 소리 나오는 거 보니.


 “키스.”

 “……?”

 “뽀뽀 말고 키스. 찐하게.”


그의 뇌에 잠시 렉이 걸렸다.

그는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뭔가 버벅버벅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로딩 중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귀가 발갛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그때는 군에서 갓 제대한 애기였으니  순진할 때였다. 하여 다시 한번 명확하게 못을 박았다.


 “세상에서 제일 찐하게.”


한참 머뭇대던 그가 작은 심호흡을 했다. 그러더니 주춤주춤 어색하게 다가왔다... 가 실패했다. 그의 캡모자의 챙이 내 이마를 콕 찍은 것이다. 그는 한 손으로는 캡모자를 벗어던져버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두 손을 붙잡았다.


 ‘응? 왜 내 두 손을 포박하는 겁니까? 선배님. 내가 해달라고 한 거잖아요. 반항 안 할 테니까 이 포박 풀어요. 이 사람 취향 참 희한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 순간 깨달았다. 아, 이 사람... 내가 반항할까 봐 포박한 게 아니구나. 이런 짓 저런 짓을 못 하게 하려고 포박한 거였구나.


그럼, 나머지 발등은 언제 부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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