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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pr 08. 2021

그가 나랑 사귄 진짜 이유?

“야! 꾹! 니 남친이 니 다리 때문에 사귀는 거라며?”


학교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데 뒤에서 나를 아래 위로 훑던 민지선배가 툭 던진 말이었다. 당사자인 나에게 금시초문이었기에 개소리임이 분명했지만 그냥 흘려 넘길 수만은 없는 개소리였다.


 “누가 그래요? 울 선배님이 내 다리 때문에 나랑 사귄다고?”


뭐… 사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내가 미친 듯이 쫓아다녀서 할 수 없이 사귀어 주는 것보다야 뭐라도 다른 이유가 있는 편이 훨씬 좋았으니까… 그리고 저런 소문이 먹힐 만큼 내 다리는 충분히 예뻤다.


 “응. 꾹 너 몰랐어? 동아리에 소문이 쫙 났는데.”


어. 몰랐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 나랑 사귀는 이유가 내 다리 때문이에요?”


이 말을 들은 그가 한쪽 눈썹을 까딱 올리면서 말했다.


 “후배님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참신한 아이디어가 매일 샘솟는 거지? 이리 와봐. 머리 좀 조사해보게.”


 “네… 네? 내 머리요? 아니에요, 선배님. 내 머리에서 샘솟았다기보다는 민지 선배한테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머리를 쪼개시려거든 민지 선배의 머리를 쪼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니, 난 머리를 쪼갠다고는 안 했는데… 응? 동아리 홍민지? 그 친구는 나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왜 애한테 그런 소리를 한 거지?”


 애라니요? 너 나보다 꼴랑 두 살 많거든요?


 “네, 선배님. 소문이 났데요. 또 우리만 몰랐어요.”


순간 그의 얼굴에서 죄책감과 망설임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는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국주야, 혹시 그 소문… 그때 우리 그 민속촌에서… 그거 때문 아닐까?”


아,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꽃이 되고 싶고… 어? 민속촌?? 그렇구나!! 그거였구나!


당시 나는 굽이 10센티가 되는 킬힐을 신고 다녔다.

특히 그를 만날 때는 단화나 운동화는 선택 옵션에도 없었다. 20센티 이상 차이나는 그와의 키 차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가! 툭하면 나를 놀려댔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그가 고개를 휘휘 돌리며 나를 찾는 시늉을 한다. 그의 턱이 내 정수리보다도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국주가 어디 갔지? 안 보이네.”

 “선배님… 나 니 앞에 있는데요?”

 “응? 너무 작아서 못 봤어요.”


또는 203호에 앉아있으면 나를 발로 툭 건드리면서 하는 말…


  “미안해요. 너무 작아서 안 보였어요.”


또는 길가다가 참새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국주야, 참새 옆에 서봐. 누가 더 큰지 보게… 그냥 눈으로 봐선 잘 모르겠어.”


이쯤 되면 돈 주고 전문적으로 배우시는 것이 분명했다. 저런 멘트들이 전부 그의 예쁜 머리통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저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그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그 키를 내 키랑 맞춰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였기에!! 내가 그냥 높이 올라가는 쪽을 택했다.

물론 그가 그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순수하게 재미로 놀렸다. 하여 내가 키가 커졌다고 놀림이 멈춘 것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킬힐이 딱히 힘들지 않았기에 계속 신고 다녔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우리가 왜 민속촌에 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둘이 손잡고 아무데나 막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문제의 그것이 보였다. 쿵덕쿵덕 팔짝팔짝, 넘나도 재미나 보였던 전통 방식의 널뛰기장. 사실 힐을 벗고 올라갔다면 별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나는 그 킬힐을 그대로 신고 올라갔다. 딱히 내 발목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도 없이, 겁도 없이 널뛰기 위에 올라가서는 그에게 외쳤다. 그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우리 이거 해봐요!”


내 고함을 들은 그가 나를 보고 잠시 머뭇하더니,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가 뛰기 시작했다.


 “잠깐! 스톱! 선배님 지금 뭐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는 그렇게 날아올라 널뛰기 위로 착륙했다.

동시에 내가 서있던 널뛰기 판이 튕겨져 올라갔고 그 추진력으로 나도 솟아올랐다. 아니, 발사되었다. 그렇게 상공을 비행하다가 추진력이 떨어지는 순간 잠시 파란 하늘이 보이는 듯했고 곧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낙하 괘도를 타는 동안 온갖 추억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대체 사거리가 얼마나 되길래 낙하하는데 이리도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인가. 아니면 이것이 주마등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덩이로 착지했다면 안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두 발로 착지했고 ‘우지끈’ 살벌한 구두 굽부터 박살 났으며, 다시 ‘우지끈’ 나의 발목이 작살났다.


골절은 근육 파열, 인대 손상 이딴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통증의 강도는 물론 부어오르는 속도부터 달랐다. 방금까지 분명 푸른 하늘을 보았건만, 착지하고부터 눈앞이 컴컴해졌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눈이 안 보였다. 몇 초 후, 커튼이 걷히듯 중앙에서부터 시야가 트였고,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웬 코끼리 발이었다. 아니, 코끼리 발 같은 내 발이었다. 단 몇 초 사이에 발이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내 앞에서 다급하게 뭐라고 외치고 있는 내 사랑, 내 원흉 그였다. 뒤늦게 귀가 트였고 비로소 그가 하는 말이 들렸다.


 “김국주! 업혀! 병원 가자!”


 아, 업히라는 말을 하고 있었구나. 그렇구나.

 으흥? 업히라고? 진짜? 와우!!


혹시 좋아하는 사람 등에 업혀보셨는지.

서로서로 지들끼리 업어주는 것. 내가 좋아하는 로코 웹툰에 자주 나오는 단골 장면이다. 그런데 웹툰에서는 아름답게만 묘사해놓는다. 내가 지금부터 현실을 이야기해주겠다. 일단 등에 업히면 내 앞판을 그의 은혜로운 등판에 세밀하게 밀착시킨다. 그냥 보는 것과 살을 맞대고 있는 것은 그 느낌이 차원이 다르다. 백날 먹방 본다고 배불러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내 볼은 그의 두툼한 어깨뼈에 얹는다. 절대로 턱을 얹으면 안 된다. 무조건 볼을 얹어야 한다. 그래야 어깨뼈를 디테일하게 느낄 수 있다. 코의 방향은 그의 목을 향해 박는다. 반대로 돌리면 절대로 안 된다. 그건 그냥 머저리 같은 짓이다.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킁가킁가를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찐광기를 들키면 시작도 안 했는데 모든 게 끝장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차피 킁가킁가를 안 해도 코만 제대로 얹고 있으면 그의 쿨스킨 향, 샴푸 향 원하는 건 다 맡을 수 있다. 그럼 팔은? 어깨를 둘러 앞판에 살포시 둔다. 손은? 이런저런 짓을 하고 싶어도 절대로 참는다. 못 참겠다면 다소곳이 맞잡고 있는 것을 추천한다. 셀프 포박을 하란 뜻이다. 입은? 오늘만 살 거 아니면 이거야말로 절대로 자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숨결조차 제어하라.

그렇다. 웹툰의 아름다운 장면이고 나발이고 현실이 천만 배 더, 그야말로 숨막히게 좋다. 나머지 발목은 언제 부러뜨리면 좋을까.


나는 그렇게 영혼을 빼앗긴 채 황홀하게 업혀서 병원을 갔다. 도착해보니 내 영혼은 물론, 내 발목까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엑스레이 찍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해 보니 결론은 발등뼈 골절. 뼛조각이 아예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민속촌에 놀러 갔다가 급 발등 골절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이번 에피소드는 다음 화와 이어집니다.


*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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