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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pr 15. 2021

이리 와서 내 옆에 좀 누워봐요.

그리고 쫓겨났다.


이번 에피소드는 지난 화와 이어집니다.


입원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많은 것이 당황스러웠다. 일단 이 죄수복, 아니 입원복… 진정 미친겐가. 나더러 이 거적때기를 입으라고 준 것인가. 도대체 누가 이따위로 만든 것인지… 지금 나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시점이다. 그 앞에서 이런 거지 같은 거!! 절대로 못 입는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는 이따위 거지 같은 거적데기를 내 애인 앞에서 입을 수 없습니다! 환복을 거부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꽤 젊은 분이셨다.

의사 가운은 입었다기보다는 어깨에 살짝 걸친 상태였고, 셔츠는 맨 위 단추를 풀어헤쳤으며 그 안에는 두꺼운 금목걸이가 번쩍이고 있었다. 옷차림만 봐서는 의사 선생님보다 내가 더 단정했다. 자기는 자기 직장에서 저렇게 자유로우면서 나더러는 저 거지 같은 거를 입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젊은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를 몇 초간 노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럼, 애인분의 면회를 금지할까요?”

 “네, 제가 갈아입겠습니다.”


저런 포스의 의사 선생님이랑 싸워서 뭐하겠는가. 뭐든 포기는 빠른 편이 좋다. 안 되는 거에 기운 빼지 말고 다른 방법을 간구하는 편이 현명하다. 나는 일단 거적데기로 환복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발목엔 이미 반깁스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밖에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사온 그가 입원실에 들어왔다. 그러다 번데기처럼 이불에 돌돌 말려서 머리만 쏙 내밀고 있는 나를 보고 살짝 당황하는 듯했다.


 “국주야, 추워?”


 저 자식은 왜 자기가 불리할 때만 ‘국주야.’ 일까?


 “발목은 어때?”


그러더니 나를 돌돌 싸고 있는 번데기를 걷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돼!! 이것만은 막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병원복을 보여주기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미쳤어요? 왜 남의 다리를 뒤져요!! 이 변태!!


라고 아까까지 그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가킁가를 했던 인간이 외쳤다. 그는 이불을 걷던 손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한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한동안 입만 달싹이던 그가 겨우 말했다.


 “아니… 미안해. 그러려던 건 아닌데.”


하아… 나야말로 이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안 그래도 내 발목이 날아간 이후로 그의 예쁜 미소도, 반달 눈웃음도 못 봐서 속상한데, 저런 상처받은 눈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선배님. 미안해요. 말이 헛나왔어요. 변태는 나예요.”


아오… 미친년…

뇌나 주둥이나 쌍으로 난리구나. 무허가 단어들을 뱉어내는 이 입을 박아놓든, 오바로크를 치든 해야겠디… 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못들은 척 다시 이불을 덮어주면서 말했다.


 “여기 앉아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음 얘기해.”


What?? 필요한 거? Got it!!

이 기회를 놓치면 김국주는 천하의 등신이다. 오늘만은! 그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이다. 나는 이성과 정신과 양심을 잠깐 치워놓기로 했다. 아니 뭐… 원래 없었다.


 “선배님, 거기 앉지 말고 내 옆에 누우면 안 돼요?”


어. 이젠 나도 모르겠다.


 “어?? 어… 흠… 국주야. 그거 1인용 침대야.”


허!!!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 1인용에 누워있는데!!!

순간 오만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이 꼴을 보여주기 싫다는 이유로 이불에 돌돌 말려있는 답답함. 무뇌로운 말실수를 해버린 쪽팔림. 그 순간 떠오른 그의 표정. 그리고 동시에 발이 작살나버렸다는 두려움… 이래저래 이런저런 것들이 비비고 뭉쳐져서 대충 서러움이란 감정이 만들어졌고,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으며, 나는 곧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이 침대에 둘이 누우면 부서진데요? 어? 이런 것도 못 해줘요? 어? 내가 뭐 대단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닌데!! 어? 그냥 내 옆에 누워있기만 해 달라는 건데!! 어? 나 발 진짜 아픈데!! 나쁜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후배님이 아까 나더러 변태라고 해서… 그래서…”

 “니가 변태가 아니라 내가 변태라고!!!“

 “어… 그래. 알았어. 누을게... 누을 테니까 울지 마.”


아마 이날이 그가 말을 더듬은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그는 침대 끄트머리에 세상 불편하게 엉거주춤 누웠다. 그리고는 왼팔을 조심조심 들어서 내 돌돌 번데기 이불 위에 살포시 얹었다. 뭔가 어설펐지만 딴에는 안아준다고 그랬던 듯싶다. 에잇, 이럴 줄 알았으면 거적데기고 나발이고 이불속으로 들어가지 말걸… 그때 입원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순찰을… 아니, 회진을 돌러오셨다. 동시에 그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아! 선배님! 안 다쳤어요? 얼굴 괜찮아요?”


 그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애인분은 허리로 떨어진 거 같은데 왜 얼굴 걱정을 합니까?”


아차차.


 “저 사람은… 얼굴이 제일 중요해서요.”

 “네. 더 살아보면 허리가 제일 중요해집니다.”


이땐 몰랐다. 의사 선생님께서 얼마나 보석 같은 교훈을 날려주신 건지… 선생님,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입원실에서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애인분은 저녁에는 퇴실하시고요.”


아니, 그런 짓이라니요? 내가 뭘 했는데요?

하, 참… 시작이나 해보고 저런 소리를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신 의사샘께서는 차트를 대충 뒤적이시다가 나가셨다. 아니, 도대체 왜 오신 겁니까? 의사샘이 나가시자 그가 의자에 고쳐 앉으며 말했다.


 “괜찮아. 더 있다 갈게.”


나는 오열한 것 때문에 살짝 민망해졌기도 하고, 이제 그만 번데기에서 나오고 싶기도 해서 그를 쫓아냈다. 포스 쩌는 의사샘이 나가라고 하기도 했고.


나의 입원실은 2인실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들어오신 룸메이트(?)는 도대체 여기는 왜 오신 건지 의아할 정도로 굉장히 멀쩡해 보이셨다. 그분은 늘 소리 내어 육성으로 책을 읽으셨는데, 그 덕분에 나는 누워서 눈을 감고 강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뭐…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다만 문제는 책에서 궁금한 것이 나오면 나에게 질문하셨다는 것이다. 그 질문이란, ‘깔깔깔. 이거 너무 재미있지?’ 같은 easy mode부터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래?’ 같은 hard mode까지 다양했다. 나는 책의 전반부를 듣지(?) 않았으니 당연히 책에 나오는 그 여자가 왜 그러는지 몰랐다. 그리고 니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질문이 길게 이어지진 않았고 그분은 금방 잠이 드셨다. 그리고 코를 고셨다. 와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저렇게 편하게 주무실 수 있는지… 입원실을 처음 겪어본 입장에서는 그저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입원실 바깥은 늘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당연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상주를 하며 환자들을 돌봐야 하니까… 그리고 그분들은 아주 자주 입원실에 들어오신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힘차게 여시면서… 저럴 거면 차라리 그냥 문을 열어놓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드르륵 거리며 들어오시면 링거 상태를 확인하신다. 불을 환하게 켜시고. 링거 상태를 확인하시면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요즘은 불을 안 켜시고 핸드폰 빛으로 보시더라고요.)


 “깨셨어요?”


어. 그대가 깨우셨잖아요. 이 와중에도 한 번을 안 깨고 코를 골며 주무시는 나의 룸메이트가 한없이 부러웠다. 그렇게 분주하고 퀭한 밤이 지나가고 이제 막 시퍼런 새벽이 오나 싶었는데 아침밥도 같이 왔다. 응? 와… 부지런하시기도 하시지… 그래도 뭐 시간이 이르다고 입맛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입맛은 있었는데 밥이 드럽게 맛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이니까 다 먹긴 했는데… 그걸 보신 내 룸메이트께서 식당 직원 분이 오시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 아가씨가 밥을 아주 잘 먹어. 한 그릇씩 더 줘. 여기 밥 드럽게 맛없는데 엄청 많이 먹어.”


허. 아니요. 괜찮습니다. 드럽게 맛없는 병원밥까지 두 그릇씩 먹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만드신 당사자 앞에서 드럽게 맛없다고 하시는 건 좀....

하지만 왠지 신나 보이셨던 식당 직원분은 결국 그날 저녁에 밥을 두 그릇을 두고 가셨고 어쨌든 나는 그걸 다 먹었다. 그리고… 밤 9시가 되자 또 배가 고파졌다. 하… 연비가 무슨 외제차 수준…


배도 고프고, 내 예쁜 애인도 보고 싶고, 그래서 잠깐 외출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일단 거지 같은 거적데기는 갈아입고, 목발을 챙겨서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수위 아저씨? 경비 아저씨? 누군지 몰라도 아무튼 입원동 정문을 지키시는 아저씨한테 딱 걸렸다.


 “어디 가세요?”

 “저 잠깐 나갔다 오려고요.”

 “네, 안 돼요.”


 그때는 정말로 입원실에서 마음대로 나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입원실을 호텔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출입을 막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왜죠?”

 “나가시려거든 퇴원하세요.”


사실 대화 내용이 잘 생각이 나진 않는다. 아무튼 막으려는 자와 탈출하려는 자의 옥신각신이 있었고, 나가려면 완전히 나가라는 말을 듣고 짐을 싸서 나와버렸다. 진짜 나가라는 말이 아니었을 텐데도 굳이 짐을 싸서 나온 걸 보면 나도 열이 받았던 듯싶다. 따지고 보면 그분은 그분의 일을 한 것일 뿐인데......


 그렇게 나는 입원한 지 1박 2일 만에 내 발로 나오긴 했지만 쫓겨났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또 다음화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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