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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Apr 03. 2021

알쓰와 알콜릭이 만나면?

참회록, 20년째 속죄 중

나는 酒량이 약하다.

즐길 뿐 많이 마시지는 못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20대에는 몰랐다. 무식하고 용감했으며 내가 술이 센 줄 알았다. 하여 酒제도 모르고 막 덤볐다가 흑역사를 많이도 만들었다. 酒저리 酒저리 적자면 그걸로 또 한 권이기에 대충 생략한다.


반면 내 율군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좋아하지도 않고…


술을 안 마시는 두 사람이 만나면? 당연히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럼 술을 많이 마시는 두 사람이 만나면? 크고 작은 일련의 아름다운 사건들이 줄줄이 터진다. 그분들의 경력은 빛나는 소재의 보물섬이지만 안타깝게도 본인들은 그것을 기억을 못 한다. 더불어 둘 사이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기억을 못 하니까…


그럼 둘 중에 한 명만 주야장천 퍼마시면?


 ‘평화로운 커플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사고가 터지는 커플은 저마다 다른 종류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 패러디.


 하루는 그가 물었다.


 “후배님은 왜 친구들이랑만 술을 마셔요?”

 “선배님, 그럼 제가 술을 친구랑 먹지요. 길가는 행인이랑 먹을 수는 없잖아요.”

 “나는?”


응? 너? 어… 왜지? 순간 사고가 멈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술메이트로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애당초 안중에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실뿐만 아니라, 술을 싫어하기까지 했으니까… 그와는 술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선배님, 술 못 마시잖아요.”

 “아니에요. 나도 맥주 한 캔 마실 수 있어요.”


ㅇㅇ. 그게 못 마시는 겁니다.

하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술을 안 먹는 사람이랑은 술 마시기 싫었다. 나만 취하고 나만 미친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술 말고 다른 걸 하자고 말을 하려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렇다. 그를 보려면 실제로 머리를 꺾고 올려다봐야 한다.) 티 없는 하얀 피부에 깎아지른 듯한 콧날, 그의 장난기 가득한 눈은 반달 모양을 하고 웃고 있었다. 하… 저거 진짜 반칙이다. 그의 얼굴만 보면 거절을 못 하겠다. 하아, 나도 모르겠다. 그래, 저 얼굴로 술을 마시자고 하는데 무슨 수로 거절하겠는가.


 “그래요. 오늘 한잔 해요.”


나는 결국 그날 밤 그와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맥주는 딱 한팩만 샀다. 그의 주량을 생각하면 이것도 많을 것 같았다. 그렇게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203호의 문을 열었는데… 방바닥에 치킨 두 마리, 과자 다섯 봉지, 육포, 컵라면 그리고 소주 다섯 병이 이미 까여있었다. 으흥?? 선배님? 제가 오해했네요?? 함께 술을 마시자는 게 아니라, 함께 죽자는 거였네요??


그리고 그곳에는 욱쓰가 앉아있었다.

아하, 이제서야 저 광경이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욱쓰를 보고 한쪽 눈썹을 까딱 올리면서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욱쓰가 말했다.


 “아, 형이 오늘 너랑 술 먹는다고 하길래 왔지.”

 “형이 오늘 나랑 술 먹는데 니가 왜 와?”

 “치킨 사 왔어.”


오케이, 통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치킨에게는 프리패스권이 있다. 그렇게 술 한 방울 못 마시는 율군, 주량은 약해도 주를 사랑하는 나, 그리고 알코올이 뇌를 정복한 욱쓰,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세명이 203호에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약 한 시간 후, 그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응? 선배님?? 이제 맥주 한 캔 마셨습니다? 아니, 혈중 알코올 농도라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의 피가 나보다 1.5배는 많을 텐데 왜때문에 이 방의 알코올은 혼자 다 흡입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찌 보면 우리는 탄수화물에게 감사해야 한다. 적어도 그 친구는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은가. 그에 비해 알코올은 이토록 사람을 차별한다. 그런데 내 율군은 왜 볼때기 중앙만 빨개지는 것인지… 저 볼을 한 번만 만져보고싶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후배님, 나 심장이 뛰고 손이 저려오는 거 같아요.”


하… 이거 뭐… 어이가 털려서 웃음도 안 나왔다.


 “선배님, 지금 맥주 한 캔도 안 마셨어요. 지금 술을 마셨다고 착각하고 계신 거라고요. 그냥 마시지 말아요.”


그런데 가만… 이거 이거 생각해보니 천지신명께서 주신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일단 욱쓰부터 내쫓기로 했다.


 “야! 김회욱. 너 이제 집에 가.”

 “왜?”


ㅇㅇ. 니가 순순히 나갈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나는 203호의 문을 열고 놈의 등을 발로 차서 몰아냈다. 덩치가 작은 그는 하릴없이 떠밀려나갔다. 그리고 나의 율군을 바라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선배님, 손 저려요? 손 주물러줄까요?”

 “네....”


그는 유언처럼 저 말만 남기고는 픽 쓰러졌다.

어? 벌써 기절한 거야? 뭐 그래… 어쨌든 너 이거 분명히 허락한 거다?? 난 내 두 손안에 담아도 넘치는 그의 커다란 손을 살며시 잡았다. 미리 말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내가 찐광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무릇 나에게 없는, 나에게 결핍된 것을 좋아하는 법…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의 손이 너무 좋았다. 하얗고 보드라운 그의 손등 위에 울룩불룩 튀어나온 핏줄이 좋았다. 두꺼운 손가락과 투박한 손목뼈가 좋았다. 한 대 맞으면 이 세상 하직할 것만 같은 이 단단한 주먹이 좋았...  응? 주먹? 선배님...... 주먹에 힘 풀어요. 니가 허락해준 거잖아요.


그때 욱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야! 꾹! 내가 김밥 사 왔다! 찬양해라!”


와… 저 새끼가 진짜… 나랑 전생에 당파 싸움이라도 한 건가. 왜 사사건건 방해하는 거지?


 “너 또 왜 왔냐?”

 “나 완전 김밥 맛집에서 김밥 사 왔어.”


이미 제정신이 아닌 그 놈은 바닥에 김밥을 풀어헤치면서,


 “야, 꾹. 너 소개팅할래? 내가 하나 물색해놨는데... 아! 지금 연락해볼까? 역시 나 밖에 없지?”


이러면서 폰을 드는 것이었다.

나는 놈의 손에서 폰을 뺏어서 집어던졌다.


 “뭔 개소리야. 지금 새벽 두 시야. 어따가 전화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나 이 형이랑 사귀잖아.”

 “아, 맞다. 너 이 형이랑 사귀지. 자꾸 까먹네.”


어떻게 하면!!! 그걸 까먹냐고!! 나랑 허구한   방에서 마주치면서!!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가 있냐고!!! 졌지만 이미 놈의 눈과 귀와 입과 가 알코올에 푹 담궈져 대화 불능 상태였다.


우리는 그날 신호등 같은 관계였다.

절대 동시에 불이 들어올 수 없고 따로따로 놀 수밖에 없지만, 한 공간에 붙어있으며 밤새도록 깜빡깜빡 거리는…. 그런 관계였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의미 없이 계속 함께 술을 마셨다. 30분 후, 드디어 완벽하게 정신이 나간 놈이 말했다.


  “꾹.... 너 소개팅할래? 내가 하나 물색해놨는데... 고맙다는 말은 집어치워.”


이 새끼 또 시작이다…


 “고만 닥쳐라. 너 그냥 니네 집에 가.”

 “....... 맞다. 너 이 형이랑 사귀지.....”


그때 놈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킬 것을…


 “야, 꾹....”

 “닥치라고.”

 “아니... 김밥 먹을래?”


그래!! 김밥이 있었다. 그것도 완전 맛집 김밥!

놈이 사 온 김밥은 맛있었다. 한참 먹고 있자니 문득 우리끼리만 먹는 것이 미안해졌다. 나는 좋은 것은 전부 나의 율군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고 있는 그의 귀에다 대고 바람과 함께 속삭였다.


 “선배님, 김밥 먹을래요?”


그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그냥 귓바퀴에 울리는 내 목소리와 거친 숨결에 놀라서 일어난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가 김밥이 먹고 싶어서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김밥을 줬다. 스스로 안 먹길래 내가 직접 입에 넣어줬다. 스스로 안 씹길래 내 손으로 그의 볼을 조물조물해서 씹게 했다. 그리고 입안에 음식물이 들어있는 상태로 누우면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기에 등을 탕탕 쳐서 모조리 삼키게 했다. 그리고 다시 눕혔다. 그에게 맛있는 김밥을 먹이고 나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ㅇㅇ.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잘했어. 꾹. 맛있는 건 나눠먹는 거야.”


더 제정신이 아닌 욱에게 칭찬도 들었다.

그렇게 나와 놈은 의미 없는 술잔을 몇 번 더 기울이다가 아무 소득 없는 귀가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왠지 검은 기운이 뿜뿜하는 전화였지만 최대한 활기차게 받았다. 아침까지 변기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네, 선배님. 좋은 아침이에요.”

 “뭐? 좋은 아침? 하아… 후배님… 나 어제 취해서 뭐 했어?”


취하다니요? 너는 어제 맥주 한 캔 마시고 바로 잤는데요?


 “아니요. 선배님은 어제 편안하게 주무셨는데요. 굳이 취한 사람을 꼽자면 저랑 김회욱이었죠.”

 “그럼, 후배님이 취해서 나 때렸어요?”


허, 이건 또 무슨 신박한 모함인가!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몹시 억울해졌다. 내가!! 쓰다듬어도 아까운 그 얼굴을 도대체 왜 때립니까? 뭐가 어떻게 되면 그런 오해를 받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내가 애당초 사람을 왜 팹니까?


 “선배님. 도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선배님을 왜 때립니까? 아니, 선배님한테 내 이미지가 어떻길래 그래요?? 나 섭섭한데요?”


 3초간 정적이 흐르고,


 “그럼 왜 내 아구창이 작살이 나있는 거지?”


어? 뭔 아구창? 아… 어…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어젯밤의 추억… 나는 그에게 김밥을 주고, 그걸 이빨이 아닌 볼로 씹게 했다. 그것도 내 손으로 주물러서… 생각해보니 그의 볼 안쪽이 왕창 헐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 그걸 삼키게 한다며 등도 수차례 세게 쳤던 거 같다. 나는 다시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일단, 죄송합니다. 하지만 믿어주세요. 절대로 제가 선배님 싸다구를 날린 건 아닙니다.”

 “...... 그래, 우리, 만나서 얘기할까?”

“네, 선배님.”


속죄는 만나서 하도록 할게요.

이쯤 되면 참회록, 20년째 속죄 중임.


그 후로 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동시에 나는 술 때문에 살찐다는 말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왜때문인지 20년째 술 안 먹는 그만 살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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