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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25. 2021

‘도를 아십니까.’ 따라가 본 적 있나요?

네, 제가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선배님, 뭐해요?’

 ‘도서관. 후배님은?’

 ‘선배님, 나 심심해요.’

 ‘후배님, 이번 주 중간고사 기간이잖아. 심심하면 안 되지. 도서관 올래요?’

 ‘네, 싫어요.’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그와 문자를 하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왜 이 사람이 주는 것은 잔소리도 달콤할까. 생각하며 흐느적흐느적 걷고 있는데 그때 두 사람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인상이 참 선해 보이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나보다 더 선해 보였다.

나는 전부터 유독 저런 종류의 사람들이 많이 꼬였다. ‘도를 아십니까’, ‘다단계’ 뭐 이런… 내 이마에 ‘호구’라고 쓰여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말했다.


 “요즘 유난히 기력이 딸리고 그렇죠?”

 “네? 기력이요? 아뇨! 내가 딴 건 다 딸려도 그건 절대로 안 딸립니다.”


꽤 단호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내 대답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물의 기운이 있어요. 순하다는 말 많이 듣죠?”

  “네, 결단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이번에도 강한 나의 대답은 더 강한 그들의 가슴팍을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니들 그럴꺼면 왜 물어보는 거냐?


 “화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와우! 그들은 내 면전에서 자유자재로 탈룰라급 태세전환을 구사했고, 나는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화기가 많아질 거라고 말했지만 또 씹혔다. 아무래도 너희들은 도를 더 닦아야 할 것 같다. 라고 말하려던 찰나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 항상 그 망할 호기심이 문제였다. 누가 봐도 세상 쓸모없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저 사람들… 참으로 잉여로워 보이는 저 사람들… 그걸 자기들만 모르는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도대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그동안은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는 공포가 그 호기심을 눌렀는데, 멍청해 보이는 이 듀오팀의 허술함은 눌러놓았던 내 호기심에 의지를 불어넣었다. 나는 나의 율군에게 행선지를 통보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저 순전히 애인의 의무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선배님, 길가던 행인들이 나더러 선해 보인데요.’

 ‘허, 후배님? 그 사람들이랑 말 섞지 말아요.’

 

 왜 이 사람은 다급하면 존댓말이 나오는 걸까? 그를 안심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선배님. 이 사람들 겁나 허술해요. 나보다도 더 멍청해 보여요. 조금만 놀다 올게요.’

 ‘야! 김국주! 따라간다고? 미쳤어? 당장 빠져나와.’


헐, 미쳤냐니. 예쁜 입에서 그렇게 험한 말이...


 ‘선배님. 이 사람들 본부가 선배님 집 옆옆건물이에요. 여차하면 도망 나올게요. 걱정 마세요.’

 

그는 자신의 애인이 말로 해서는 안 들어 처먹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우친 바 있다. 얼마 후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문자가 왔다.


 ‘김국주. 들어가기 전에 건물 이름 문자로 보내고 들어가.’


 나는 그의 명령에 따라 건물 입구에서 이름과 호수만 답신으로 보낸 채 허술 듀오를 따라 들어갔다.


그 방의 생김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적어도 203호보다는 평범했던 것 같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고 온 허술 듀오는 영업을 위해 다시 나갔고,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앉았다. 아하, 아까 쟤들은 삐끼고 니가 진짜 실장이구나?


그런데 저 실장이라는 인간도 아까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조상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긴 떠들었는데, 요점도 핵심도 설득력도 없었다. 에이씨… 조금은 기대하고 왔는데… 넌 도대체 뭘로 그 자리에 앉아있는 거니? 내가 해도 너보단 잘하겠다. 좀 더 강하고 똘똘한 놈으로 데려오라고… 짜증이 밀려왔다.


 “아 그래서 도대체 결론이 뭐예요?”

 “그러니까..... 국주씨 조상님이 국주씨한테 화가 나셨다고요.”


허,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이거 패드립으로 간주해도 되는 건가? 내 조상님이 왜 나한테 화를 내?


자, 실장아! 니가 뇌가 있다면 생각이란 것을 한번 해보자. 내 증조할머니가 다섯 명의 아이를 뒀다쳐보자고. 그중 한 명이 우리 할머니지? 그럼 그 할머니가 또 다섯 명의 아이를 뒀어. 또 그중 한 명이 우리 엄마지? 울 엄마가 두 명의 아이를 뒀어요.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증조할머니까지만 가도 자손이 50명이 넘는다. 그 위는? 250명 정도..... 그 수가 형제수만큼 곱절로 늘어난다는 걸 너는 알고 있는지?


 “그 많은 우리 조상님들이 저승에서 그렇게 할 일이 없으시답니까? 나 같은 거 한테 역정을 내시게. 도대체 왜요?”


잠시 말이 없던 실장이 내 말을 튕겨버리고 계속 지 할 말만 이어나갔다. 으흥? 할 말 없을 땐 날려버리는 게 늬들 종특이구나?


 “우리 국주씨가 조상님의 화를 풀어줘야 해요.”


미친… 내가 왜 니네 국주씨야?

그런데… 저 멍청한 실장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유도 없이 작정하고 화내는 양반의 화를 내가 무슨 수로 풀어줍니까?”


순간 자기 말이 먹힌다고 판단한 실정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얼른 자신의 목적을 불어버렸다.


 “국주씨가 제사를 지내시면 되어요.”


와… 이런 선량한 새끼들…

늬들은 사기 치지 말아라. 이거 늬들 적성 아니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를 너무 빨리 들어버리는 통에 김이 확 새 버렸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사기에 소질이 없는 사기꾼이 느닷없이 물을 두 잔 가져왔다.


 “물을 떠놓고 제사를 지내면 그냥 물이 육각수로 변해서 맛도 달라져요. 이게 제사 전 물이고. 이건 제사 지낸 후의 물이에요. 한번 마셔보세요.”


와, 그냥 집에 갔으면 큰일 날뻔했다.

이 재미있는 소리를 못 들을 뻔했으니… 이건 뭐 제사 지내면 치킨이 튀김옷을 벗고 승천한다고 우기는 거랑 뭐가 다른가. 저 재능 없는 불쌍한 사기꾼은 육각수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내가 ‘작은 정성(40만 원)과 함께 마음을 다해 빌면 조상님들이 친히 오셔서 내 컵 속의 물분자 구조를 육각형으로 바꿔주신다.’ 는 헛소리를 믿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래, 뭔가 기대하고 따라온 내가 미친년이지.’


 라고 생각하는데 문이 열리고 아까 그 두 명의 허술 듀오가 들어왔다. 그리고 뒤에는 캡모자를 눌러쓴 훈남이 따라 들어왔다. 와우, 늬들 생각보다 영업 잘하네? 또 어떤 모질이를 끌고 들어온....

 어? 어어? 율군? 선배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캡모자 아래로 나를 슬쩍 본 그는 눈으로 나에게 쌍욕을 하고 있었다. 와우, 우리 선배님 욕 잘하네.


 “하아, 그래요. 육각수는 생각 좀 해볼게요. 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를 데리고 여기서 튀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가 여길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러자 사기꾼이 내 어깨를 누르면서 말했다.


 “잠깐만요. 우리 아직 얘기 안 끝났잖아요.”


그래, 니가 순순히 보내줄 리는 없지.

그런데 내 어깨를 누르는 그의 악력을 보아하니 마음만 순수한 게 아니라 근력도 순수해 보였다. 다시 말해 사기꾼이 나한테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누르거나 말거나 그냥 일어나려는데 그때 율군이 사기꾼의 손목을 잡아떼면서 말했다.


 “제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저랑 먼저 얘기하죠.”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서 손을 뗀 사기꾼이 있는 힘껏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마실 거 드릴게요.”


저 순수한 새끼 또 육각수 가지러 가나보다. 방에 둘만 남자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김국주. 너 미쳤어?”

 “선배님… 여긴 왜 왔어요? 내가 알아서 나갈 수 있는데. 나를 그렇게 못 믿어요?”

 “..... 하아...... 뭐? 믿어? 너를? 내가 지나가는 개새끼를 믿지. 너 빨리 지금 나가.”


 왓? 개새끼? 저거 나한테 한말 아니지? 지나가는 개새끼한테 한 말이지?


 “...... 그럼 선배님은 어떡하려고요?”

 “난 내가 알아서...”


 대화 도중에 사기꾼이 물을 두 잔 들고 들어왔다. 역시 그중 한잔은 육각수였다. 와, 너도 참으로 대쪽 같구나. 그러자 율군이 양 컵의 물을 연거푸 마시더니 말했다.


 “정말… 맛이 다르네요.”


 뭐?..... 진짜? 깜짝 놀라서 쳐다봤더니 그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 그래서 니가 캡모자를 쓰고 왔구나. 그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저기요... 제가 바빠서 그런데 저 먼저 상담하면 안 될까요? 그쪽은 나중에 하시죠?”


선배님…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요. 사기꾼 놈이 머릿속에서 주판을 튕겼다. 그러더니 놈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호구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럴까요? 그럼 국주씨는 나중에 오실래요? 전화번호라도 남기고 가세요.”


 그 말을 들은 율군이 분을 누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바쁘다고요.”

 “아... 네… 그럼 우리 국주씨는 나중에 꼭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아니, 저 미친 새끼가… 내가 왜 니네 국주씨냐고.

라고 말하려는데, 이를 갈고 있는 율군의 얼굴을 보고 그냥 얌전히 나왔다. 나는 그렇게 그 멍청이 소굴에서 쉽게 나올 수 있었지만,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 했다. 그래서 203호로 갔다. 힘없이 203호 문을 열자 널브러져 있던 욱쓰가 시비를 걸었다.


 “오… 꾹! 오랜만? 같이 밥 먹으실?”


하아… 또 너냐? 이젠 놀랍지도 않다. 너 204호 월세는 왜 내는 거냐.


 “닥쳐. 나 우울해. 그리고 넌 여태 밥도 안 먹었냐?”

 “…… 꾹. 뭔 일 있어?”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욱쓰에게 모두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가 별일 아니라는 듯 받아쳤다.


 “아, 그 옆 건물 븅신들? 야야, 걱정 마. 그 새끼들 조온나 멍청해. 형 금방 올 거야.”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갔었으니까?”


너도 참....... 인생 가지가지하는구나.


 “넌 왜 갔었는데?”

 “삐끼 누나들이 이뻐서.”

 “야.... 삐끼라고 하는 거 아니야. 멍청아.”

 “그럼 뭐라고 해?”

 “어… 음… 아냐… 삐끼 맞는 거 같애…”


잠시 정적…


 “야… 욱쓰… 근데 거기 실장 놈은 어떤 놈이야?”

 “어? 실장? 아… 상담? 그냥 븅신이지.”


다행이다. 그냥 븅신이라서…

그리고 약 30분 후, 그가 돌아왔다.


 “거봐, 내가 형 금방 온뎄지?”

 “김회욱. 넌 니 방으로 가.”

 “네. 형님.”


 그가 무사히 온 거 봤으니까 나도 죽기 전에 얼른 튀어야겠다.


 “네, 선배님. 저도 가보겠습니다.”

 “김국주, 넌 남아.”


젠장…


 “네, 선배님.”


나는 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근데 나 요즘 왜 이리 무릎을 자주 꿇는 거지? 그는 한숨을 쉬더니 캡모자를 벗어서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내 앞에 털썩 앉았다.


 “김국주. 너 한 번만 더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죽는다.”

 “네, 선배님. 그런데 말입니다. 선배님이 보시기에 제가 다소 작고 약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거길 빠져나올만한 힘은 있답니다.”

 “하아… 넌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이 없어? 어? 니가 쥐똥만 한 것도 알고 있으면서! 그 사람들이 멍청했기에 망정이지... $£<¥¥<$~*|%|*]$~!,!,¥,¥|¥”


 네? 저는 제가 작다고 했지 쥐똥만 하다고는 안 했습니다만? 그 뒤로 대략 십여 분가량의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뭐..... 안 들렸고, 그의 하얀 피부만 눈에 들어왔다. 와, 무슨 남자가 저렇게 피부가 좋아. 한 번만 만져보고 싶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손을 뻗어서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차차, 지금 이럴 상황이 아닌데… 또 행동이 먼저 나갔다. 내 손이 그의 볼에 닿자 그의 잔소리가 뚝 멈췄다. 이 놈의 손모가지를 내가 스스로 비틀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최대한 공손하게 고쳐 앉았다. 아! 그런데 선배님은 거기서 어떻게 나왔지? 문득 궁금해져서 슬며시 고개를 들어 물어보았다.


 “선배님... 그런데 거기서 어떻게 나왔어요?”


5초간 머뭇거리던 그가 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 제사 지냈지.”


뭐… 뭐? 내가 잘못 들었나?

그 멍청한 소굴을 못 빠져나와서 그 븅신들이랑 육각수 잔치를 했단 말이야? 저 김회욱도 빠져나온 거기를?? 어이가 없어서 목구멍에 말이 걸렸다. 하지만 어쨌거나 원인 제공을 한 입장으로써 한동안은 그에게 충성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는.

이번 화는 거의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20년간 사기 집단은 진화했고, 더 이상 저런 멍청한 놈들은 없습니다.

즉, 독자님들은 절대로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 거짓말을 한 이유는 내가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하려고 그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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