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방
나의 이 호기심이란 놈은 늘 양심을 이겨왔다.
203호… 나에게 금지된 공간.
그는 왜 그토록 이 공간을 나에게 허락해주지 않는 것일까. 푸른 수염처럼 시체를 숨겨놓은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왜… 순수한 호기심…
그때 그는 도서관에 있었다.
또 이런저런 지루한 책들을 한 아름 빌리고 있었을 것이다.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그가 러셀과 데이트를 하는 동안 나는 그의 자취방이 있는 건물에 잠입했다. 순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득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잠입했건만, 정문을 통과할 때도, 통로를 걸을 때도, 아무도 막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각오한 거에 비해 너무나도 쉽게 203호 앞에 서버렸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저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부터가 진짜라는 사실을… 문은 열려있었고, 나는 그렇게 금지된 그곳, 푸른 수염의 작은 방에 들어갔다.
방바닥부터 보였다.
금단의 장소, 그의 방…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바닥 무늬가 도트… 즉 점무늬였다?! 방바닥에는 쌀알 만한 점들이 불규칙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그 혼돈의 카오스 같은 점들을 보고 있자니 팔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와씨. 이게 뭐야? 방바닥 무늬 한번 살벌하네. 건물주 취향 진짜…”
라고 투덜대며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발이 방바닥에 닿자 점무늬들이 포로로롱 움직였다?!? 포로로롱? 무늬가 움직였다?! 입부터 틀어막았다. 지금 비명이 터져 나오면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지금 불법 침입을 한 상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해라. 그리고 생각해라, 김국주. 움직이는 방바닥 무늬… 저건 절대로 정상이 아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도망 다니는 점무늬를 포획했다. 그것의 정체는… 김가루였다. 젠장.
그래, 김가루는 무서운 것이 아니니까… 얘들도 한 때는 음식이었지 않은가. 그러니 더러운 것도 아니다. 방바닥에 김가루… 흩뿌려져 있을 수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건 그냥… 불법 침입한 내 잘못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진짜로 긴장이 되었다
그가 금지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절대로 평범한 곳이 아니다. 그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했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보았다. 방의 첫 번째 구석에는 생수 페트병이 잔뜩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페트병의 윗부분을 날린 것들이 여러 개가 포개져서 쌓여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페트병 아랫부분만을 일부로 모아놓은 걸로 보였다. 그래, 그것도 그럴 수 있다. 페트병 대가리만 잘라서 아랫부분만 모아놓을 수 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그가 손수 만든(?) 밥그릇들이었다. 생수를 다 마시고 나서 페트병의 윗부분은 날려버리고 그 아랫부분은 밥그릇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잘린 부분에는 날카로운 칼자국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슬슬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203호… 그곳은 엘리스의 토끼굴이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두 번째 구석을 보았다. 거기엔 기타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는 음악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를 맡고 있었기에 저 장비는 있어 마땅한 것들이었다.
고개를 돌려 세 번째 구석을 보았다. 책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책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연속으로 두 번이나 제법 평범한 물건들이 발견되자 살짝 안심이 되면서도 실망스러웠다.
마지막 구석을 보았다. 그곳에는 빨래 더미가 쌓여있었다. 빨래를 하려고 쌓은 건지, 하고 나서 쌓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합리적인 의문 하나. 그럼 도대체 잠은 어디서 자는 걸까. 설마 저 김가루 위에서 자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나의 그가 그럴 리 없다고 믿었지만 일단 물티슈를 꺼내서 방바닥의 김가루를 전부 닦아냈다. 건물주님,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해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첫 번째 구석에 있던 살벌한 흉기들, 페트병들을 모조리 갖다 버렸다. 그리고 4번째 구석에 있는 저 빨래 더미… 세탁을 한 후의 것인지, 하기 전의 것인지는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것들은 세탁을 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나는 빨래 더미 위에서 빨래를 한 아름 들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거까지 손대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어? 어어?? 그런데… 들어낸 빨래 더미 속에서 사람의 손이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입을 틀어막고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막았다. 나의 시선은 그 손에 고정되었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저게 뭐지? 왜 대학생 자취방 빨래 더미 속에서 사람 손이 나오지? 시체인가?”
이거였나.
그가 나에게 이 방을 금지한 진짜 이유. 진정 그는 푸른 수염이었던 것일까. 순간 직감했다. 지금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 상황이 바뀌었다. 아까는 내가 가택 불법 침입으로 신고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내 애인을 살인과 시체 유기로 신고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기타 옆에 있던 드럼채를 집어 들어, 살얼음판을 걷듯 빨래 더미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드럼채로 빨래 더미를 살짝 걷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사람 얼굴이 나왔다. 쿠당탕. 나는 결국 뒤로 나자빠졌다. 그 와중에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목구멍은 간신히 막고 있었다.
분명히 저것은 시체였다.
살 썩는 냄새, 썩어가는 몰골… 저게 산사람 일리 없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본인 방 빨래 더미에 유기한 것이다. 나는 도대체 지금까지 어떤 인간을 좋아했던 걸까.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며 눈을 꾹 감고 드럼채로 빨래 더미를 슬슬 치웠다. 현장 훼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다 실수로 시체를 콕 찌르고 말았다. 그때 시체가 꿈틀 움직였다?!? 시체가 움직였다?!? 화들짝 놀라서 들고 있던 드럼 채를 시체한테 냅다 던졌다. 드럼채는 시체의 정수리에 ‘딱’ 소리를 내며 부딪쳐서 나가떨어졌다. 그때 시체가 부활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 씨바…”
나는 어느새 양손에 기타를 들고 있었다. 저게 시체건 좀비건 다가오면 그걸로 냅다 후려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시체가 말했다.
“어? 김국? 너 김국주냐?”
ㅆ… 시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아… 내가 아는 놈이었다.
“어? 김회욱? … 욱쓰… 너 여기서 뭐하냐?”
“꾹,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냐?”
“나야 가택 침입이 아니라 내 남친 집에 놀러 왔지?”
“뭐? 남친? 너 남친 생겼냐?”
“어… 그러니까 욱쓰, 너 빨리 꺼져.”
“그래… 근데 꾹… 여긴 내 방인데?”
퍽이나 그렇겠다. 니가 니방에 제대로 찾아 들어간 적이 있긴 있는 거냐?
“욱쓰 너는 몇 호인데?”
“나?...... 나 204호지?”
“그리고 여기는 203 호고… 멍충아…”
“아, 그래? 미안.”
그는 전혀 안 미안한 얼굴로 방을 나가려다가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야! 꾹!! 대박!! 너 그럼 이 방 형이랑 사귀어?”
“어… 왜? “
“아니, 그 형은 멀끔하게 생겨서 왜 너랑 사귄데?”
“닥치고 꺼져.”
놈을 내쫓고 나니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었다.
여길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망할 호기심 때문에 생각보다 더 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느낌이었다. 그가 살인마가 아니란 것은 몹시 다행이었지만, 그게 이 장소가 정상이란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사귀자마자 혼날까 봐 무서웠다. 그냥 튈까 잠시 고민했지만 목격자가 있었다. 김회욱의 입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 이럴 땐 다이렉트 이실직고가 최선이다. 체포당하는 것보단 자수 쪽이 처벌도 약한 법이니까.
‘선배님, 저… 203호에 들어왔어요. 죄송해요. 너무 와보고 싶었어요.’
한오백년 같은 시간이 지난 후, 답신이 왔다.
‘후배님?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미안해요.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방금 제가 시체 하나를 치웠어요.
20분 뒤, 그가 만사 초탈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픽 웃더니 말했다.
“왜 무릎을 꿇고 있어요. 편히 앉아있어요. 나 화 안 내요.”
와, 목소리 세상 스윗. 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의 시선은 방의 한 구석에 멈췄다.
“근데 여기 있던 내 친구는 어따 버렸어요?”
“친구라뇨? 저는 이 방에서 선배님의 친구는 못 봤습니다. 다만 선배님 친구 말고 내 친구가 저 빨래 더미 속에서 좀비처럼 기어 나왔지요. 그나마도 제가 버린 것은 아니고, 지가 지 발로 나갔습니다. 제가 드럼채로 때렸거든요.”
나는 당황해서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후배님 친구요? 아, 그 204호? 그 친구가 또....”
“응? 그 친구가 또 라니요? 아, 그 친구가 자주 그러는 모양이군요. 그 새끼가 선배님을 귀찮게 하는 거면 제가 그 새끼의 척추를 똑 부러뜨려서 버르장머리를 싹 뜯어고쳐놓겠습니다.”
“아니요. 괜찮.... 제발 그러지 말아요.”
“네, 선배님.”
“그런데 저기 있던 것들 정말 못 봤어요?”
그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은 첫 번째 구석이었다.
“혹시..... 선배님의 친구란, 대가리 잘린 살벌한 페트병들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네? 네… 내 식기 세트요”
그때 깨달았다. 나의 그 역시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쓰레기… 아니 선배님 친구들은 제가 아까 재활용 통에 싹 다 갖다 버렸습니다.”
나는 이실직고하면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도 주저앉아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식기 세트가 사라졌으니 밥 먹으러 나갈까요?”
“네! 선배님. 사랑합니다. 근데, 나가기 전에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될까요?”
잠깐 멈칫하던 그가 대답했다.
“……. 우리… 치킨 먹을까요?”
췟. 씹혔다. ……. 이거 갈길이 멀겠구만…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