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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Feb 26. 2021

우리 이제 그만 하자.

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끝이 났다.

 “선배님, 어디예요?”


귀국하자마자 그에게 연락했다.


 “도서관이요.”

 “왜요?”

 “왜라니요. 저 아직 학생입니다만.”

 “...... 네, 그럼 지금 선배님 집으로 오세요.”

 “지금요?”

 “네, 지금요.”

 “인천이에요?”

 “네, 인천이고, 선배님 자취방 앞이에요.”

 “네에... 네? 왜요? 왜 후배님이 내 방 앞에 있어요?”


왜긴, 니가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건 내 사정이고 너한테는 그 이유가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여기까지 15분 거리지요. 가방 싸는 시간 5분 드릴게요. 20분 내로 안 오면 선배님 방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릴 거예요.”


이런 협박이 통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시촌엔 고시원이 있고 대학가엔 벌집이 있다. 벌집에는 복도를 사이에 둔 작은 방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공용으로 쓰는 화장실과 목욕탕이 한 층에 하나씩 있다. 여기까진 고시원과 같다. 하지만 고시원엔 책상과 침대 같지도 않은 침대라도 있지만, 벌집엔 아무것도 없다. 정말 빈 공간만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 문을 잠그지 않고 다닌다. 일단 훔쳐갈 것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똑같이 생긴 방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기 때문에 술 취한 자유로운 영혼들이 자신들의 방문을 제대로 찾을 확률은 50%도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이라고 추측되는 곳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진짜 방주인 역시 먼저 와서 자고 있는 놈이 친구 놈인지 옆방 놈인지 옆옆방 놈인지 구분할 능력이 없었다. 설사 운이 좋아 진짜 자신의 방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문이 잠겨있으면 못 들어간다. 열쇠를 찾아 문을 따고 들어갈 정신 따위 그들에겐 없었다. 아니, 애당초 열쇠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지금은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을 잠글 수가 없다. 그래서 벌집은 남녀 구획이 확실하게 되어있고, 웬만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같은 벌집에 들어간다.


이게 뭔 뜻인고 하면, 율군의 방문 역시 열려있을 것이고 내가 거길 들어간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란 의미였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 성별이 지들과 다르다는 것이겠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마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벌집 앞에서 기다린 지 15분쯤 지났으려나, 건물 구석에서 커다란 산적 같은 놈이 급습하듯 훅 다가왔다.


 “여기서 뭐해요?”


굵고 장엄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두 발짝 만에 건물 벽에 등이 닿았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었다. 그러나 산적놈은 계속 다가왔다. 가로등마저 깜빡여서 놈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젠장… 내 나이 23살에 삥도 뜯겨보는구나. 그런데 그 산적이 말했다.


 “누나, 아니, 선배… 여기서 뭐해요? 남자 자취방 앞에서.”


뭐? 누나? 예상치 못한 호칭에 순간 경계심이 풀렸고 놈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한 발 앞으로 나가려는 찰나, 놈과 내 사이에 커다란 등이 하나 끼어들었다.


 “뭡니까?”


아!! 내 사랑 율군이었다.

그는 나를 등지고 나와 산적 사이에 섰다. 뛰어왔는지 태평양처럼 넓은 등은 땀에 젖어있었고 그것이 또 그렇게 은혜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그의 등에 코를 박고 킁가킁가… 하려는데 그가 손을 뒤로 빼서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놈에게 박은 채로 속삭였다.


 “후배님, 내 방에 가있어요.”

 

하… 목소리도 세상 스윗… 응? 뭐? 니 방에 가있으라고? 거기가 어딘데요?


 “나 선배님 방 모르는데요.”

 “아까는 안다면서요.”

 “…… 당연히 거짓말이죠.”

 “아… 진짜… 하… 203호.”


아싸, 방 번호 알아냈다! 기뻐서 폴짝폴짝 뛰어가려는데 산적이 말했다.


 “어디 가요, 누나!! 거기 남자 자취방이에요.”


아니, 근데 저 새끼가…


 “야! 너 누군데 나한테 누나래?”

 “나 몰라요?? 같은 과인데.”


그 말을 듣고 긴장이 풀린 그의 어깨가 한숨과 함께 한풀 내려갔다. 하아… 나는 기계공학과다. 남녀 성비가 40:1이고, 니들은 나를 알아도 나는 니들을 모른다. 특히나 학번이 다르다면 더더욱 모른다. 그 수많은 남동생들을 어떻게 하나하나 다 기억하겠는가. 그래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저 순박한 산적 녀석이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뇌즙을 짜내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 하나를 던졌다.


 “아!! 맞다. 장훈아!!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저 민준인데요.”


아, 그렇구나.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를 처음 뵙는 거 같다. 모르겠다. 일단은 그냥 튀자.


 “그래… 그렇구나… 그럼 우린 개강하면 보자.”


나는 율군의 손목을 잡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손바닥 안에서 느껴지는 두꺼운 그의 손목뼈를 느끼며 행복해하고 있는데 그가 물었다.


 “후배님, 어디 가요?”

 “203호요.”

 “허? 절대 안 돼요!!”

 “아까는 거기 가있으라면서요.”

 “아! 아까는 상황이… 아무튼 안돼요.”


와… 이렇게 말을 뒤집나? 안 되겠다. 구걸이라도 해보자. 나는 최대한 비 맞은 강아지의 눈을 하고 말했다.


 “선배님.... 저.... 캐나다에서 방금 와서 자취방이 없어요. 갈 곳이 없는데.”


사실이었다. 진짜로 없었다. 친구들은 다 통학이었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그가 말했다.


 “그럼 걸을래요?”


그래요. 그럽시다. 뭘 하는지가 중하겠습니까. 그대와 함께하는데.


그는 앞장서서 구비구비 길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골목을 여러 개 통과하더니 급기야는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 그 시간에 등산로를 오르는 미친 인간들은 우리뿐이었고, 길을 비추는 가로등마저 수명을 다해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뭐지? 아무리 내가 귀찮기로서니… 혹시....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티 안 나게 물어볼까?


 “선배님, 혹시… 나 파묻으러 가요?”


그는 우뚝 멈춰서 돌아보았다. 아차차, 티 안 나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그게요… 오밤중에 산으로 올라가니까. 내가 지은 죄도 많고…”

 “후배님이 이 밤 중에 찾아온 거잖아요.”


딱히 등산하려고 온건 아닌데....


 “하아.... 수봉 공원 가는 길이에요.”

 “왜요?”

 “후배님, 잘 곳 없다면서요.”

 “와우?! 우리 그럼 오늘… 산에서 자요?”

 “…… 안 자요. 밤샐 겁니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의 공원은 밤에 폐쇄를 하지 않는 것인가!! 여기가 밴쿠버였으면 공원이고 술집이고 싹 다 닫아서 적막뿐인 이 공간에 갈 곳이라곤 니네 집 밖에 없었을 텐데!!! 갑자기 화가 났다. 내가 씩씩대자 그가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자주 가는 곳이라 길은 안 잃어버립니다.”


아니, 그러니까 이런 데를 왜 자주 가는 거냐고요?! 그나저나 저 말투 좀… 내가 자기 상사도 아닌데.


 “그런데요. 선배님, 나한테 존댓말 안 하면 안 돼요?”


씹혔다. 그래, 그냥 등산이나 하자. 조금만 더 가면 된다던 그곳은 구불구불 코너를 서너 번 더 지나 그의 은혜로운 등짝을 스매싱하기 바로 직전에 나타났다.


그리고 내 사랑이 사랑하는 그곳, 곧 나도 사랑하게 될 그 장소, 수봉 공원 정상이 자태를 드러냈다.

눈으로는 인간이 만든 도시 전체가 불빛으로 화변해 들어왔고, 코로는 풀내음과 함께 귀로는 자연의 소리가 들렸다. 뭘까 이 감각의 불균형은…

그때 그가 말했다.


 “여기 대충 앉아요. 일출 볼 거예요.”


아 그렇구나… 일출 볼 거구나… 뭐??? 일출을 본다고?? 내가 잘못 들었나??


 “선배님? 지금 새벽 한 시인데요?”

 “그러게요. 그러네요.”

 

해는 적어도 다섯 시간은 지나야 뜰 것 같았지만 뭐… 상관없었다. 그래, 너는 일출을 보렴. 난 니 얼굴을 보고 있을 테니까. 일 년 동안 보고 싶었는데 다섯 시간을 못 보고 있겠는가.


짝사랑도 오래 하면 익숙해진다.

그에게 다른 애인이 생긴다는 상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때는 이 짓도 그만둬야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산 정상에서 그는 도시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한참 말이 없던 그가 말했다.


 “후배님, 이제 그만해요.”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딱히 그의 허락을 받고 쫓아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직접적인 통보는 처음이었다.

절대로 울면 안 된다. 시작할 때 이 정도 각오는 하지 않았는가.


 “후배님이 무엇을 상상하고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뭘 상상하고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잘 생겨서 쫓아다니는 거지만… 지금은 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사귀어 보면 별거 없을 거예요. 석 달이면 환상이  깨질 거예요.”


그딴 거 없다. 내 눈앞에 있는 너는 절대로 환상이 아니다.


 “그래도 괜찮으면… 우리 사귀어봐요. 그러니까 나 쫓아다니는 거 이제는 그만해요.”


어? 어어??

아… 울면 안 되는데…

아니, 이건 울어도 되려나…

그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 포근한 팔로…

대답해야지… 국주야.

이제 너를 받아주겠다잖아.

어서 뭐라도 말해야지…


 “선배님......”

 “네에.”

 “그럼 우리 이제 203호로 갈까요?”

 “…… 꿈도 꾸지 마요.”

(췟)


내 짝사랑은 그날 끝이 났다.

여보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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