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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Feb 19. 2021

급이 다르다!! K-또라이!

한국인 아닌 척했어야 했나…


뭔가 비효율적이고 재미난 일 없을까.

고민한 끝에 우리는 수영장이란 곳을 가보기로 했다. 여기는 수영장이 몹시 가성비가 떨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지척에 바다가 깔려있었고, 매일 갔으며, 갈 곳이 거기밖에 없었으니까… 술집은 10시에 닫았고, 술집 사장님들은 하늘에 떠있는 태양보다 더 일찍 퇴근했으며, 사람들은 그보다 더 일찍 집에 갔다. 아름다운 공원은 노을과 함께 폐쇄되었다.

벤쿠버는 나에게 너무나도 심심한 곳이었다.


당시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뭐… 지금도 할 줄 모르지만… 어쨌든 그래서 수영복부터 구입해야 했다. 결과물에 대한 변명을 미리 하자면, 당시엔 래시가드 같은 것이 없었다. 꽃무늬 비키니 아니면 꽃무늬 원피스였다. 다시 말해 나에게 선택권 따위 없었고 그래서 그냥 아무거나 샀다. 수영복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시뻘건 연꽃무늬일 필요는 있었나 싶다. 다른 대안이 있었을 텐데....


그렇게 나는 쨍한 연꽃무늬 원피스 수영복만 하나 달랑 들고 친구들과 수영장에 갔다. 밴쿠버 스케일에 비해 넘나도 작은 수영장이었다. 목욕통 같은 어린이 물놀이장 하나, 레일 몇 개 길게 뻗은 어른 수영장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고 사람도 적었다. 수영하는 사람보다 안전 요원 수가 더 많았다. 그 요원들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바다가 있으니 누가 거길 가겠는가.


물에 들어갔더니 수면이 내 턱 아래에 있었다.

수면은 낮았지만 내가 수영을 못 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걸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만일을 대비해 판도 손에 잡고 있었다. 하지만 초반 수면이 낮았기에 방심을 했고, 걸어가는 동안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코 안으로 물이 살짝 밀려들어오고 나서야 바닥이 내리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뿔싸. 이거 깊어지는 거였구나. 더 이상의 이족보행이 불가능해지자 나는 판을 잡고 발을 움직이며 오리처럼 나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발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동동거리며 수영장의 중앙까지 진출했다. 거기서 주위를 둘러보니 문득 작은 호기심이 하나 생겼다. ‘여긴 얼마나 깊을까.’ 그것을 알려면 물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 아주 잠깐만 아래로 내려가 보자. 잠깐이면 되겠지. 잠깐 들어갔다 나올 건데 뭐 큰일이야 생기겠어?’


하여 나는 판에서 손을 뗐다. 내 머리는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고 수면은 내 머리 위.... 보다도 더 위로 올라갔다. 예상보다 너무 많이 내려가서 살짝 당황했지만, 나는 왜인지 내 하체 힘을 믿었고,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발끝이 바닥에 닿자마자 있는 힘껏 바닥을 차서 몸을 위로 띄우고 발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 드디어 머리가, 눈이, 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 판만 다시 잡으면 된다. 그러면 되는데… 응? 내 판이 어디 갔지? 나는 고개를 휘휘 돌리며 도로 가라앉았다. 괜찮다. 당황하지 말자. 어쨌든 이런 식으로 호흡은 가능하니까… 나는 발이 땅에 닿길 기다렸다가 다시 힘껏 차서 위로 올라갔다. 머리가 두 번째로 수면 위에 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초가량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휘휘 돌렸다. 아! 판이 저만치서 보였다. 아하하하하. 너 거기 있었구나? 판의 위치만 파악하고 도로 가라앉았다. 이번엔 판이 있는 방향을 향해 땅을 박차고 올라갔다. 내 머리가 세 번째로 수면 위로 뜬 순간, 사방팔방에 있던 안전요원들이 굉장히 멋있는 자세로 일제히 물로 뛰어들었다. 아하! 맞다… 여기는 안전요원들이 많았지. 그런데 왜때문에 전원 입수하는 걸까. 다이빙하는 자세들을 보고 깨달았다. 아하! 늬들도 심심했구나. 그 사태를 보면서 내 몸은 다시 가라앉았다. 젠장.


나는 시뻘건 연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채로 사지를 붙잡힌 채 물 밖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요원들은 물 밖에서도 그 포박을 풀어주지 않았다. 세어보니 총 여섯 명이었다. 나 하나 끌고 나오려고 여섯 명이 뛰어든 것이다. 그 여섯 명의 요원들은 가슴 위에서 손짓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후하 후하 후하 후하.”


ㅇㅇ. 저걸 따라 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저 근육질의 여섯 명과 저 짓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제정신이었다. 하지만 그 여섯 명의 요원들은 내가 함께할 때까지 후하 후하 거리며 들숨과 날숨을 내쉬는 것을 포기할 기세가 아니었다. 그 근육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함께 해야겠구나. 어쩌겠는가. 해야지. ‘후하 후하.’ 내가 조인하자 만족하신 여섯 분의 요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질문을 했다.


 “Are you Ok?”


ㅇㅇ. 당신들만 좀 진정해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간만에 신난 여섯 명의 요원들은 구명조끼를 주며 나를 목욕탕 같은 어린이 수영장으로 안내했다. 너는 앞으로 여기서만 놀고 어른 수영장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명령도 했다. 심지어는 내 전용 요원까지 한 명 생겼다. 제일 신난 그분은 시종일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고, 끊임없이 말을 거셨다. 그래서 여기 바구니에 앉아서 너랑 노가리나 깔 거면 구명조끼는 벗어도 되지 않느냐 물었더니 “놉” 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을 몰랐다. 아, 맞다! 내 친구들! 친구들을 찾아보았다. 친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수면 위로 눈만 빼꼼히 내밀고 이 사태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 눈들은 행여나 내가 지들한테 말이라도 걸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ㅇㅇ. 친구들은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혼자 온 척해줬다. 혼자 와서 물에 빠지고 구출당한 후 구명조끼 입고 어린이 수영통에 앉아서 근육질 요원이랑 노가리 까는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세 시간가량을 바구니 통에 앉아있다가 귀가했다.


그리고 며칠 후, 망할 놈의 수영장 물 때문이었을까.

눈에 다래끼가 났다. 이럴 땐 항생제였나, 소염제였나? 아무튼 뭔지는 몰라도 살 줄 몰라서 못 샀다. 그래서 그냥 뒀다. 하지만 적당히 붓다 가라앉을 줄 알았던 다래끼는 나날이 펌핑되었고 급기야는 내 눈의 반절을 덮을 지경이 되었다.

근데 뭐… 눈이 그렇다고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그날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또 술을 마셔댔다. 혹시 알코올이 눈을 소독을 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변비가 있었다. 피자, 햄버거, 감튀만 먹어대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누가 그랬더라. 변비 환자의 기본자세는 신호가 왔을 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이라고. 뭐, 때는 그렇다 쳐도 장소는 어차피 우리 집이었기에 작은 신호라도 놓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신호를 받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괄목할만한 성과가 없었다. 이거 적당히 해선 안 되겠구나 싶어서 작정을 하고 온 힘을 쥐어짜 냈다. 그러자 그 압력이 정수리까지 치솟아 안면을 압박하면서 얼굴에서 뭔가 뽝! 터지는 느낌과 함께 ‘울컥’ 하고 뭔가 올라왔다. 어? 울컥? 뭐지? 왜 기다리던 신호가 얼굴에서 오는 거지? 그리고 한쪽 눈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그래도 일단 할 일을 끝내야 했다. 하여 다시 힘을 줬다. 또 울컥! 시야가 한층 더 흐려졌다. 눈을 부빗부빗해보려다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눈을 비비는 것은 몹시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던 일이나 마무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또 울컥!.... 그렇게 힘을 줄 때마다 울컥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나는 성공했고 그 성취감에 도취되어 일단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아! 여기서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 화장실엔 거울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얼굴을 확인하지 못 한 채로 나왔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우어우어어어어어억.”

 “뺘아아아아아악.”


일제히 내 얼굴을 보고 비명 지르면서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봐, 친구들. 그거 실례야. 사람 얼굴을 보고 그렇게….


 “흐어어어어어어억.”


한 친구가 내 앞에 갖다 준 거울을 본 순간 나도 그들과 똑같이 했다. 거울 속의 내가… 얼굴의 반절을 피칠갑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단 진정하고 눈꺼풀을 뒤집어서 안구를 살펴보았다. 아하! 이거 그 다래끼가 터진 것이었다. 내가 작정하고 힘을 줄 때 이 놈이 터졌고, 그 뒤로 또 압력을 가할 때마다 피고름을 울컥울컥 쏟아냈던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느꼈던 ‘울컥’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손 한번 안 대고 복부 압력만으로 다래끼를 짜냈다. 나이스. 김국주.

이제 내게 남은 일은 국적도 다양한 그 친구들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말했다.


“친구들? 너무 걱정 마. 이거 그냥 똥 싸다가 다래끼가 터진 거야.”


그렇게 수영장 구출 사건과,  다래끼 폭발 사건 이후 나의 평판은 하늘을 치솟았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고국에서 불리던 그 별명이 이곳 타국에서도 붙었고, Korean girl은 급이 다르다는 말까지 들었다.


나는 그렇게 국가의 위신을 높였다.

미안합니다. 한국 사람 아닌 척했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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