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울 수 있습니다. 경고했습니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 끝의 남해가 보이는 시골 마을이다. 대충 남끝 마을이라고 부르겠다. 그 당시에는 이 남끝 마을에 한번 가려면 자가로는 다섯 시간, 대중교통으로는 버스, 지하철, 기차, 또 버스 등등… 다양한 종류의 탈것을 골고루 다 타야 했다. 그 스테이지 도달 난이도는 가히 상급이었다. (최상급은 다리가 없는 섬…)
나는 방학을 맞아 이 난이도 상급 마을에 가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영등포역 근처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기나긴 기차 여행을 하는 내내 십팔분에 한 번씩 기내 화장실을 들락거렸으며 그때마다 위아래로 무언가를 쏟아냈다. 처음엔 소화 기관 내의 햄버거를, 다음엔 위액과 위산을, 그다음엔 오장육부를, 마지막에는 내 영혼을… 그렇게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기차 2 호칸 화장실에 두고 껍데기만 하차했다. 그리고 엄마한테 연락했다.
“엄마, 나 지금 상태가 이상하니까 병원 좀 들렀다 집으로 갈게요.”
“거가 어딘디?”
“응. 00 터미널 앞.”
그리고 병원을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그곳에는 흔한 플라스틱 의자 대신 커다랗고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허… 어디는 노숙자가 누울까 봐 공원 벤치에 손잡이까지 달아놓는다던데… 여기는 정류장에 소파라니... 허허. 역시 내 고향이다. 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버스는커녕 그 흔한 택시도 지나가지를 않았다. 그 소파를 침대 삼아 까무룩 잠들때쯤 엄마의 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왔다.
“국주야, 너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무턱대고 버스를 기다리냐?”
네? 어디서 버스를 기다리긴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지요.
“너 쩌 의자가 왜 침대인 줄 아냐?”
왓더… 이거 진짜 침대였어? (아님, 소파임)
“어… 내 고향이 친절해서?
“아니, 버스가 하염없이 안 오니까!”
아하, 그렇구나. 이 소파… 진짜로 침대였구나. (아님 소파임) 그렇게 나는 엄마 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식중독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 식중독 때문에 비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몹시 안쓰러워하셨다. 그래서 병원을 다녀오자마자 삼겹살을 구워주셨다.
“잘 먹어서 안 낫는 병 없어. 어여 먹어.”
뭐… 매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삼겹살이지 않은가. 사실 지금 뭘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은 동물적인 감각으로다가 강하게 들었지만… 뭐 그냥 먹었다. 삼겹살이니까…
나는 결국 그날 저녁, 비에 젖은 낙엽마냥 바닥에 늘러붙어서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어졌고, 아빠는 그런 나를 차 뒷자리에 짐짝처럼 실어서 병원에 데려갔다. 그렇게 나의 식중독은 급성 장염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님께서 또…
“잘 먹어서 안 낫는 병 없어. 먹어.”
라고 위아래로 싸고 있는 산낙지가 된 딸에게 치킨을 배달시켜 주셨다. 그것도 두 마리나… 소중한 딸이 먹여놓는 족족 위아래로 쏟아내니 직접 뭘 해주시기도 귀찮으셨던 듯하다. 양도 상태 참작 없이 평소 먹던 양을 고대로 시켜주신 거 보니, 뭐 이쯤 되면 그냥 먹고 싸라는 뜻이었다.
콜레라 시대에는 콜레라에 걸리면 그냥 편히 누워서 싸라고 침대 중앙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리고 아래엔 콜레라 포트라는 양동이가 있었다고… 나는 딱 그 부분만 4D 가상현실 체험을 했다. 그렇다고 내 침대에 구멍을 뚫은 것은 아니었지만… 뭐… 그 뒤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난다 해도 여기다가 적을 수 없다. 그렇게 한 4일가량을 젖은 휴지처럼 침대에 붙어있었다. 더불어 사람이 위아래로 많이 싸대면,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콜레라 치사율… 치료받으면 1% 미만, 안 받으면 50%)
그렇게 나는 강해졌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을 방법이 없다. 그야말로 그냥 강해졌다. 그 뒤로는 무엇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양도 소화를 해냈다. 내 소화 기관이 나에게 적응… 아니, 항복했다.
그렇게 내가 사지에서 탈출해 현생에 적응할 무렵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국주야, 나 오늘 밤에 남끝 마을에 도착해.”
으흥? 이건 또 무슨 느닷없는 소리인가.
그가 대체 왜!! 남끝 마을에 도착한다는 것인지… 심지어 오늘 밤이라니… 오늘은 이미 막차가 끊겼건만… 하물며 이제 도착한다는 것은 이미 출발을 했다는 뜻인데…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오고 있는 거죠??
“선배님, 지금은 이리로 오는 기차도 버스도 없는데요. 도대체 무슨 수로 오시는 건지요?”
답이 없었다.
“선배님, 도착지가 어딘데요. 데리러 갈 테니까 어딘지만 말해주세요.”
또 씹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당시는 내비게이션 어플, 지도 어플은 물론이거니와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에겐 차도 없었다. 아무리 뇌즙을 짜내도 그가 무슨 수로 여길 오고 있다는 건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여기는 남끝 마을이다. 정류장에 침대를 둘 만큼 결코 쉬운 곳이 아니란 말이다. 불안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또 문자를 보냈다.
“야! 율군!! 이 멍충아!!! 남끝 마을은 니가 사는 그런 곳이랑 달라!!! 혼자 못 온다고!! 얼른 전화받아!”
저렇게 말하면 열받아서라도 전화를 받겠지 라고 생각했건만 또 씹혔다. 하여 이번엔 욕을 좀 버무려서 좀 더 강한 문자를 몇 번 더 보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놈에게서 전화가 왔다.
“국주야, 아무리 화가 나도 오빠한테 쌍욕을 하면 안 되지.”
“...... 그래서 선배님 어딘데요?”
“여기?? 남끝 마을 도서관이라고 쓰여있네.”
어? 도서관? 거긴 정류장 근처가 아닌데? 거긴 도대체 어떻게 간 거지? 호기심과 의구심을 품에 안고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그런데... 도서관 앞이라던 내 애인은 온데간데없고, 저만치서 때구정물인지 땀구정물인지가 줄줄 흐르는 웬 그지 같은 노숙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국주야… 나 왔어.”
와… 씨바… 누구세요?!?
“...... 국주야. 너 왜 그렇게 살이 빠졌어?”
어. 그거야 내가 그제까지 콜레라 4D 가상 체험을 해서 그런 거고… 그러는 너는 왜 그렇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된 건데요?
“선배님, 어… 여기까지… 헤엄쳐서 왔습니까?
“아니, 자전거 타고 왔어.”
허, 허허허 허..... 뭐? 자전거? 버스를 타고 와도 하드코어인 이 길을?
“아하… 자전거요…. 어디서부터요?”
“인천?”
“왓… 언제 부터요?”
“응. 5일 전.”
그러니까 저 말은 내가 햄버거를 잘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서 질질 싸다가, 삼겹살을 잘못 먹고 급성 장염으로 산낙지가 됐는데, 치킨을 잘못 먹고 콜레라 4d 체험을 하고 나서 무적이 돼버린… 그 사이에 그는 주야장천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와우, 내가 지금까지 누구한테 또라이라는 소리를 들은 거지?
“도대체 왜요?”
“국주 보러…”
선배님, 잘 들어요.
저 ‘왜’라는 단어에는 왜 왔냐라는 의미뿐 아니라, 왜 연락도 없이 왔냐, 왜 대중교통을 안 탔냐, 왜 자전거로 왔냐, 도대체 왜!! 5일씩이나 걸려서 왔냐!!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제일 대답하기 쉬운 질문부터 했다.
“그럼 자전거는 어딨어요?”
“오다 펑크 나서 고치려고 세워뒀는데 누가 훔쳐갔어.”
“와… 쎄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왔어요?”
“바로 앞에서 도둑맞은 거라 그냥 걸어왔어.”
와우, 이런 난해한 새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궁금해해야 하는지, 아니, 내가 감히 궁금해해도 되는지… 니가 말하는 그 바로 앞이 어딘지… 나는 이날 깨달았다. 사람에게 뭐든 질문을 하려면 기본적인 상식이 통한다는 전제가 바탕으로 깔려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놈은 진짜였다.
“선배님, 앞으로 나한테 또라이라고 하지 말아요.”
“왜?”
왜? 지금 왜냐고 물었니??
“진짜에게 가짜가 진짜 대접받고 싶지 않아요.”
“누가 그래? 우리 국주가 가짜라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그 어떤 집단이든 또라이는 반드시 한 명 이상 존재하며, 우리 둘 중에는 당연코 당신입니다.
내가 감히 넘볼 수 없음.
“국주야, 근데 왜 이렇게 살이 빠진 거야? 무슨 일 있었어?”
“아오… 씨바… 가까이 오지 말아요. 일단 우리 모텔 가요.”
와, 내가 모텔 가자는 말을 이렇게 욕을 섞어서 쓰레기 던지듯 던지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제일 시급한 문제는 놈을 씻기는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당장 하고 싶는 일도, 꿈도 희망도 절대로 없었다. 그런데 놈이 머뭇거렸다. 아니, 저 자식이 이 와중에도 그걸 망설이니?????
“선배님. 맹세코 제가 딴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고요. 어우… 지금 선배님이 지금 너무… 너무 더러워서 그래요. 제발 좀 씻고 나와요.”
잠시 머뭇하던 그가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씻고 나올게. 집에 가서 기다려.”
뭐? 나더러 집에 가라고? 5일을 자전거를 타고 이런 거지 꼴로 와놓고는 나더러 집에 가있으라고?
“선배님... 저 아무 짓도 안 할게요. (지금은요.)”
“......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거지.”
“그럼 나도 같이 가도 돼요?”
“어. 안돼.”
허. 그런데... 아까는 너무 더러워서 몰랐는데 5일을 자전거를 탔다더니, 그의 등이 멋있어졌다. 나는 그 등에 시선을 박고 졸졸 따라가며 말했다.
“선배님, 여기 모텔이 어딘지 나만 아는데? 여기는 모텔 많지 않은데??”
“...... 목욕탕 갈 겁니다. 후배님. 따라오지 마세요.”
췟. 목욕탕 위치도 나만 아는데…
그렇게 그 해 여름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강해졌다.
우리중에 누가 더 또라이인지는, 20년째 정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