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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Jun 28. 2021

해외에서 8천원짜리를 20만원에 샀다!?!

 여행은 늘 설레는 법이다.

 게다가 그것이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구름 위를 걷듯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날을 기다렸다. 목적지는 대만,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이었다. 설레는 건 설레는 거고 계획을 짜고 준비하는 것은 귀찮았으니까. (Before Corona)


 드디어 여행 당일, 대만에 도착한 시간은 어두운 밤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뭔 야시장에 방목되었다. 짧은 시간 내로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야 말겠다는 가이드님의 의지였다. 시장을 배회하는 목적도 이유도 없었지만,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다른 풍경에 매료되었고 충분히 즐거웠다. 그렇게 까르르 거리며 돌아다니는데 길바닥 한 구석에 화려하게 번쩍이며 돌아가는 팽이가 보였다. 가게가 아니고 길바닥에 좌판을 깔고 판매하는 곳이었다. 당시 아이들이 한창 팽이에 빠져있었기에 그 팽이를 그냥 지나칠 방법은 없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한 개에 대만돈으로 50달러, 한국돈으로는 약 2천 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래 뭐 2천원쯤이야… 우리는 쿨하게 조카 것까지 총 4개를 구입했다. 그리고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사달이 난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가이드비를 챙기려고 지갑을 뒤지는데 미국 달러가 모조리 다 사라진 것이었다. 분명 50달러짜리로 총 4장이 있었는데...  한국돈으로 약 20만 원. 그냥 포기하기엔 큰돈이었다. 온 가족의 가방도 다 뒤졌고, 버스도 뒤졌으며 들른 가게에도 모두 전화를 해보았다. 못 찾았다. 그 의심이 팽이에 닿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보야, 혹시... 팽이 구매할 때 대만 달러 대신 미국 달러로 냈어요?”


 팽이를 구매할 당시, 늦은 저녁시간의 길바닥이었다. 우린 대만 달러와 미국 달러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사방은 어두웠다. 팽이 4개를 구매한 금액, 원래 가격은 대만돈으로 50달러짜리 4장. 사라진 돈은 미국 돈으로 50달러짜리 4장.

우리는 이천원짜리 팽이를, 한 개에 오만원씩 주고 총 4개나 샀던 것이다. 합 20만원. 젠장.


 돈을 되찾을 수 있는 확률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떠나면 그만인 해외여행자들이 아닌가. 설사 거기가 버젓한 가게였다고 하더라도 잡아떼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기는 이동이 자유로운 길바닥의 좌판이었다. 그 좌판이 그때 그 위치에 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돈은 못 찾을 것이다. 속은 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돈 20만원 때문에 남은 여행을 망치지 말자. 실수를 해서 가장 속이 상해 있을 신랑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자.


 “여보야, 괜찮아요. 그 깟 20만원… 잊어버려요.”


 그랬더니 사건의 원흉인 신랑은 정말로 잊은 듯했다. 허허, 그런데 막상 내가 잊을 수가 없었다.

내 돈 20만원!! 맥주를 사면 80캔이고, 소주를 사면 156 병일 텐데!!! 저 망할 놈의 팽이가 돌아갈 때마다 맥주캔이 내 눈앞에서 팽글팽글 돌았고, 벽에 부딪칠 때마다 소주병이 내 가슴에 와서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아오, 저게 얼마짜리 팽이인데.

사실 팽이는 그저 2천원짜리일 뿐이었다.


 다음 날, 가이드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극존칭을 붙이겠다. 가이드님께서는 우리가 없을 때 다른 관광객님들께 여쭤보셨다고 했다. 당일 숙소를 가는 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그 시장에 다시 들러도 되겠느냐고. 다시 말해 일정을 모두 마치고 버스 전체가 시장에 들러서 팽이 좌판이 있던 곳을 가보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모든 분들께서 흔쾌히 동의를 해주셨다고 했다.

가이드님께도 함께 여행한 관광객분들께도 너무나도 감사했다. 하지만 돈을 찾을 확률도 없었고, 너무 큰 민폐였기에 우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도 돈은 못 찾아요. 괜찮으니 그냥 숙소로 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버스는 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가이드님과 그 팽이 좌판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하아… 그 좌판이 있을 리가 없잖아. 다른 분들께 민폐만 끼치고… 이건 시간 낭비, 정신 낭비야.’


그렇게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발을 질질 끌며 그 장소로 향했는데… 어? 그 좌판이 있었다! 물론 있다고 해도 돈을 돌려받는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자리를 옮겼을 것이라 예상했다.


‘도대체 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지?’


반가운 마음보다는 의아했다. 질질 끌던 발은 더 무거워졌다. 좌판이 없었다면 그냥 포기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있는 이상 어느 정도 실랑이가 예약되어 버린 상황이 아닌가. 아… 외국까지 와서 티키타카하기 하기 싫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발 한 발 결전의 장소로 다가갔다. 그리고 드디어 가이드님께서 팽이 판매자님께 말을 거셨다. 대만 말이 몇 번 오고 가고, 우리는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가이드님께서 모자를 획 벗으시면서 팽이 판매자님께 90도로 인사하셨다. 그리고 우리도 얼결에 덩달아 인사했다. 우리는 그날… 실랑이 한번 없이, 그 돈을 전부 돌려받았다.


 이야기인즉슨, 팽이 판매자님께서도 받은 돈이 대만돈이 아니라 미국 돈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발견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올 거라 예상하고 이틀을 그 자리에서 기다리셨다고…

 판매자님께서 주신 봉투 안에는 손도 안 댄 미국 돈 50달러짜리 4장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대만에서

 

 우리가 이 날 받은 것은 50달러짜리 4장이 아니었다. 우리는 타국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4 가지의 소중한 선의를 선물로 받았다.

고객님들께 어려운 부탁을 해주신 가이드님의 첫번째 선의. 말도 안 되는 부탁에도 흔쾌히 동의해주신 관관객님들의 두번째 선의. 그리고… 돌려주지 않을 수 있었던 큰돈을 기꺼이 돌려주신 판매자님의 세 번째 선의.


다음날, 가이드님께 여쭤봤다.


“가이드님, 혹시 우리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거 알고 시장으로 다시 가신 거예요?”


“네… 여기 사람들은 선해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머나먼 타국에서 받은 네번째 선의. 타인을 믿어주는 가장 순수하면서 가장 어려운 마음.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도통아, 대만 여행 재미있었어?”


그러자 도통이의 대답.


“응, 그리고 거봐… 사람들은 원래 착하다니까.”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귀중한 경험이 또 있을까.

물론 이 아이들도 살아가다 보면, 세상이 불신으로 차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구장창 배울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날의 이 소중한 경험들을 떠올려주지 않을까.


완벽한 타인들에게 받은 더 완벽한 선의들.

너희들에게 두고두고 꺼내 쓸 수 있는 치료약이 되기를…




그때 그 팽이입니다. 망가지고 깨져도 못 버려요.


비록 3박 4일의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대만을 생각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행복해집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저 팽이 사러 또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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