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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Jul 13. 2023

엄마의 텃밭 정원을 꿈꾸다

비단 가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가지를 손으로 잡으면 폭신한 보드라움이 느껴진다.

가지구이를 하려고 봉지에서 가지를 꺼내는데 문득  목화솜이 듬뿍 들어간 비단 이불이 생각났다.

목화솜을 넣은 비단 이불은 장롱 가장 낮은 자리에 가지런히 개켜있다가 작은 아버지나 고모가 오시면 밖으로 나와 제 역할을 했다.

손님이 가고 나면 비단 이불은 한나절 햇빛 나들이를 했다가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가지를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문득 비단 이불을 만지는 촉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랏빛 탱탱한 가지가 싱싱한 가지다.  다른 채소에 비해 싱싱한 가지를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지는 겉모습 자체로 속의 싱싱함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여름날, 엄마는 밭일을 하다 들어와  반찬 준비를 할 때면 나에게 자주 심부름을 시켰는데 그중 한 가지가 가지를 따오는 일이다.  가지는 부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오이처럼 가시도 없어 딸 때 따기 쉬웠다.

  엄마는 부엌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뒤꼍에 나란히 가지를 심었다.

  내가 열 살 무렵부터 살았던 집은 집을 중심으로 사방이 텃밭 정원으로 가꿔져 있었다.   

  앞마당 담장 바로 안쪽 수돗가엔 포도나무를 심어 넝쿨을 만들었으며 과실수 아래 반그늘 진 곳엔 더덕을 심었다. 뒷마당 장독대는 단을 높인 화단 모서리에 있었고,  장독대와 담장 사이엔 도라지를 심었다. 그런 약초들은 가끔 밥상에도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엄마는 텃밭 약초 정원을 두었던 것이다. 뒷마당은 언제든 채소를 준비해 요리할 수 있도록 가지, 부추, 파 등을 심었다. 그중 가장 풍성한 먹거리를 안긴 건  단연 가지였을 것이다.  

  한여름 밥상에 가장 자주 올라온 음식은 가지나물과 오이냉국이었는데 나는 새콤하고 시원한 오이냉국은 잘 먹었지만 씹으면 뭉그러지는 가지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어른이 된 어느 날 엄마의 가지나물 방식을 떠올려 들기름과 들깨로 버무린 가지나물을 만들어 먹어보니 그렇게도 맛있었다. 가지 음식이 맛있어지자 가지의 느낌마저도 좋다.

  가지나무 한 그루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열리는 것을 감안할 때 가지는 매일 따도 그다음 날 다른 나무에서 하루 전과 비슷한 크기의 가지를 새로 딸 수 있었다. 그러니 채소를 직접 길러서 먹는다는 것은 작은 행복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거기에 건강한 먹거리를 통한 건강은 덤으로 얻을 테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귀촌을 하고 옥상텃밭을 가꾸고 그런 것일 테다.


    바쁜 농사일에 짬을 내 음식을 하느라 늘 바빴던 엄마는 궁여지책으로 부엌 가까이 채소들을 심었을 것이리라.  엄마가 특히 가지를 부엌 가까이 심은 건  가지 요리를 좋아도 했지만 꽃이라면 무슨 꽃이든 좋아했기에 가지꽃마저 좋아했을지 모른다.

  40년 전 여름 뒤꼍은  다 먹지 못한 토마토가 뜨거운 햇살을 못 이겨 마침내 터져 새콤달콤한 물이 흐르고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그려진 오동통한 가지가 땅에 닿도록 빼곡히 열리는 계절로 기억다.

 몸이 기억한 것들은 기록하지 않아도 체화되어 살며 고단할 때 힘이 되어주는 것들이 있다. 그중 음식이 그렇다.  어린 날 먹었던 맛과 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져 그것을 찾게 한다.


  가지를 반으로 자른 후 세로로 세 갈래로 자르면 여섯 조각이 된다. 그런 다음 프라이팬에 가지를 얹고 수분이 사라질 즈음 들기름을 두른다. 뒤집어 한 번 더 구우면 금세 가지구이가 완성된다. 그런 다음 바질가루를 살짝 뿌려 먹거나 들깨가루를 뿌린 올리브유에 듬뿍 찍어 먹는다. 오늘은 갓 구운 가지에 체더치즈 한 장을 여섯 등분해서 얹어 먹었다. 우유와 함께 먹으니 훨씬 든든했다.


  시골의 여름빛은 유난히 다채롭다.

꽃과 열매로부터 얻은 아련한 추억의 향과 여름빛은 나를 매일 꿈꾸게 한다.

나는 요즘 밤마다 눈을 감으면 이미 텃밭에서 풀을 뽑고 가지를 수확하는 내 자신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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