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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Jul 23. 2023

네가 진짜 아픈 곳은 어디니?

아이들이 모두 진짜 아파서 갔을까?

보건교사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어느 보건교사의 글을 읽었는데 3년 만에 열린 체육대회에서 600여 명 학생 중 150명 가까운 학생에게 외상 등의 이유로 처치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체육대회를 한 다른 학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그와 비슷했다고 한다. 줄다리기 한 판 끝날 때마다 손바닥 아프다고 왕창 몰려왔단다. 하나하나를 대해야 했으니 그 고됨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사실 아이들이 진짜 그렇게 다쳤을 리 만무하다. 아이들은 외상의 경중을 떠나 왜 그렇게 보건교사에게 몰려갔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이들이 작은 자극에도 견디는 힘이 약해진 걸까, 아이들이 견디는 힘은 환경에 따라 어떤 주변 인물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심리 상태 등 항상 이유가 다르다고 본다. 그런데 왜 담임교사들은 너도나도 아프다고 한꺼번에 몰려가는 아이들을 적정선에서 제지해 주지 못했을까.

여기엔 여러 심리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은 내 친구가 아프다고 하면 나도 아픈 것 같고, 또 친구를 데려간 아이도 있을 테고, 그냥 애들이 뭐 하나 아픈 구실을 대고 따라간 아이도 있을 테고, 그야말로 흔히 말하는 관종 아이도 있을 테고, 현상황이 지루해서 환기 차 갔는데 어디든 아픈 데를 말해야 하니 '근육통'쯤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반에 진짜 다친 것이 아닌 것으로 서너 명이 가면 20 학급이면 80명이 되는 것이다. 보건교사 혼자 많은 아이들을 처치하는데 버거운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아이들을 보내는 데는 아이가 아프다는데 가지 못하게 했을 때 만에 하나라도 받을 민원의 소지를 굳이 남기지 않으려는 이유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모든 결과는 하나의 이유로 작용하지 않는다. 일부 학부모의 교사 불신과 이기심은 정작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한 학급에서 함께 움직이는 속에서 그때그때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개별성이 인정되는 것이지, 어떤 환경에서든 내 아이는 원하는 보살핌을 받아한다는 착각을 버리지 않으면 의도치 않아도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학교의 경우 체육대회나 운동회 때는, 보건교사의 보조인력을 지정하거나 활동 시작에 앞서 정말 아픈 경우에 처치를 받으라, 혹시라도 꾀병으로 가는 경우 크게 다친 친구들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지도해 주는 것이 좋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견디는 힘도 약해졌지만 무엇보다 방어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업무적 환경이 되어간다. 작은 실수도 용납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일과 책임의 종착지가 교사이다 보니 그렇다. 그러니, 본인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든 책임을 분산시키기거나 문제가 될 소지를 없애려는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보건교사는 자신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처치(치료 개념이 아닌)의 필요가 없어 보여도 기본 문진을 해서 보내야 한다. 상습적으로 꾀병을 자주 부리는 아이일지라도 그냥 보낼 수가 없다. 만약 그 아이에게 '너는 평소에도 꾀병으로 자주 왔으니, 오늘은 바쁘니 그냥 가!'라고 했을 때 그 뒷감당은 오롯이 보건교사의 몫이다.

체육대회(또는 운동회)라는 특수한 활동에서는 모든 아이들을 가볍게 처치해 보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신체적 활동을 했다는 원인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150명의 아이들을 혼자 감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전에 무엇이 필요할까, 관리자는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몰랐을까, 1년에 한두 번이니 그럴수도 있지 그런 생각이었을까. 사고는 시간과 날짜를 가리지 않는다. 일년에 한번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아쉬움이 든다.

  

  위와 같이 600명이 넘는 학교의 담임선생님은 안전지도는 당연히 할 테지만, 한 반에서 한꺼번에 아이들이 아프다고 몰려가는 것 같으면 보건교사가 1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다른 반 아이들도 몰려갈 거란 걸 짐작해서 아픈 이유를 물어 경중을 따져 기다렸다 가거나 분산해서 가도록 조절해 주어야 한다. 이것 또한 확장된 안전교육이 일환이라 생각한다.

  과격한 신체활동 후에 근육통과 관절통 등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한 시간 정도 지켜보다 그래도 아프면 보건 선생님한테 가봐라. 살짝 까짐, 단순 근육통 등으로 모두 몰려가면 정작 크게 다친 친구를 놓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사전에 인지시켜줘야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안전의 확보는 어느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각 개인의 배려와 양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보건교사를 찾는 이유는 꾀병, 경증, 중증 등 다양하게 있다. 사실 꾀병이 제일 많을 텐데 꾀병이 너무 많이 오면 꾀병과 경증을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경증과 중증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즉, 한꺼번에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들면 골절이나 염좌를 잘 구분해 낼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작 응급처치를 효과적으로 받아야 할 중증도 학생을 보는데 늦어지거나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학생 수가 많은 학교는 언제나 한 학급은 같지만 보건교사에게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수가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응급처치를 제때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보건교사 1인이 아픈 아이를 놓쳤다고 그것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많은 학생을 1인이 감당하도록 방관한 관리자, 우르르 보낸 학급, 몰려간 아이들도 양심의 가책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본질은 학교의 안전교육이나 보건교육의 부족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는 다중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안전과 질서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이다. 협소한 구역 내에 과도한 인구가 밀집되었고 이를 질서 있게 통제할 인력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학교안전교육, 심폐소생술 교육과는 무관한 참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 **언론의 기사는 참사의 원인을 학교 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여 학교가 잘못인 것처럼 호도하여, 성실하게 교육한 교사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을 뿐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기사 내용 전체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과는 상관없는 보건교육 관련 주장만을 하고 있는데,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보건 교과가 따로 없고, 중·고교는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어 다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교육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언급은 교육부가 현재 작업 중인 2022년 교육과정 시안 보건교과와 관련하여 **포럼이 평소 주장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어서 이 기사의 의도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게 한다.

이태원 참사의 국가 애도 기간에, 2022년 보건교육과정을 언급하며 보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진실로 누구를 위한 주장인가?

****포럼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보건교육 강화는 현실적으로 가르칠 교사에 대한 수급 없이 보건교사로 하여금 수업하도록 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그로 인해 학교에서 유일한 의료인인 보건교사가 보건실을 비우고 수업에 들어감으로써 응급 처치에 공백이 생기는 아슬아슬한 상태가 전국의 학교에서 십수 년째 지속되고 있다. 사고 발생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포럼은 조장하고 있고 교육부는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수업을 업무로 하지 않는 비교과 교사로 임용된 보건교사의 본질적인 역할은 학교 유일한 의료인만이 할 수 있는 즉각적인 응급상황 대처 및 보건실 운영이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다수 보건교사는 ****포럼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보건교사가 수업으로 보건실을 비우며 응급처치의 공백을 발생시키기보다, 보건실 방문 학생의 건강 문제를 관리하고 즉각적으로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학생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보건교육은 수업이라는 방법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보건실에서 학생의 개별적인 건강 문제를 관리하며 효과적인 일대일 보건교육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교과의 관련 내용을 통해서도 체계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이상 전국 보건교사노동조합 글 일부 인용 -


나의 생각은 위 '보건교사노동조합'의 입장과 비슷하다. 지금, 교육 당국의 변화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건교사의 가장 중요한 일은 보건실에서의 안정적 응급처치다. 현재 보건교사 1인 체제와 학생 수 대비 보건교사를 배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보건수업의 법제화를 찬성하지 않는 이유다. 보건교육이 보건교사에 의해서 해야 한다면 보건교육을 할 교사를 별도로 임용하거나, 관련 교과에서 담임교사에 의해, 체육, 안전교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의 경우 아이들에게 보건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 영역을 관련 교과에서 반드시 다루기만 하면 굳이 보건교사가 수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상황이 변화하면 교육 주체자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건실은 현재 특별히 신체적 문제가 아닌 신체화 문제로 쏟아지는 아이들로 벅차다. 이 말은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모든 학교 상담교사 배치 또한 절하다. 언제까지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이 보건실로 드나들게 방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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