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춘기

엄마는 어떤 별로 살고 싶어요?

by 붉나무

지금은 대학생인 큰 아이가 열 살 때 일이다.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목성과 달을 본 아이는 그날부터 꽤 오랜 기간 별과 우주에 빠졌었다.

아이가 어느 날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엄마는 어떤 별로 살고 싶어요?’라고 심각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생각지 못한 아이의 인문학적(?) 질문에 왠지 답을 근사하게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반짝이는 별'이라고 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아이가 원하는 답은 그것이 아니어서 좀 민망했지만 아이의 그 질문으로 나는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이는 그날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신이 알고 있는 우주에 대한 지식을 풀어놓았다.
자신은 원시별, 엄마 아빠는 태양, 살아계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적색거성(아이의 말대로라면 지금은 모두 백색거성이 되었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백색거성, 빌게이츠 같은 사람은 청색거성이라는 것이다.
그날 식탁에서 아이는 별에 대해 무지한 내게 별의 일생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자신은 청색거성으로 살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아버지가 되어 죽을 때가 되면 블랙홀 근처에 가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싶다고도 했다.

이유인즉슨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아이는 그때 이미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본 것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나는 감동과 함께 어떤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가슴 한편에서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나도 이제는 아이에게 배우는 때가 되었다는 것.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누구에게서 이런 감동의 말을 들어볼 것이며 또 들었다고 한들 이만큼의 감동이 올 수 있을까, 또 이 말들로 인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볼 수 있을까,도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할 수 있게 지지해 주자고 결심했다.

그 이후 아이의 별사랑은 대단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기 전엔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이는 별관측을 가지 않는 날에도 일기예보에 민감해졌다. 날씨가 좋으면 주말마다 별관측을 갔으며, 어떤 날은 주중에도 망원경을 들고 집 앞 공원에 달을 보러 나갔다. 그럴 땐 장비를 들어주는 보조가 되가도 했다. 그 해에는 내가 일을 쉬는 중아어서 아이가 원하는 날엔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었다.


오래 전에 아이가 엄마는 어떤 별로 살고 싶냐고 한 물음에 대한 답이 문득 생각났다.

'엄마는 너라는 별을 좋아하는 별을 태어나게 한 특별한 별이라 이대로 엄마 별로 살고 싶다'고 말해 줄걸 그랬다.


당시 아이가 별에 빠졌을 당시 영화 인터스텔라가 나왔을 땐데 아이가 다섯 번은 돌려봤던 기억이 있다.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 천문학과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별을 좋아한다.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시간이 맞으면 가끔 별관측 봉사를 간다. 얼마 전 봉사가 있어 통일 동산 공원에 아이를 데려다주러 갔었다.


그날은 하늘에 구름이 끼어 있어 별관측에는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주차장에 아이를 내려주고 나는 근처 카페에 있다가 카페가 문을 닫는 7시에 나왔다.

근처를 산책하며 멀찍이서 아이가 망원경을 설치하는 모습을 보았다. 봉사자들 중 가장 키 큰 아이가 가장 작은 망원경을 세워놓고 바르게 서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왔다.

날이 어둑해지는데도 하늘엔 아직 많은 연들이 날고 있었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 연날리기 좋은 날씨고 장소에 걸리는 것들이 없어 연날리기 장소로 적합한 평화누리 공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연을 날리러 온다.


간만의 봉사에 하늘이 좋지 않았지만 주위가 어두워지자 다행히 머리 바로 위에 별이 딱 하나 보였다. 드디어 대여섯 명의 봉사자들이 각자의 망원경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뒤 나는 별관측 참여자인 것처럼 슬며시 아이에게로 다가가 아이가설치한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 목성이에요. 주변에 4개의 위성도 보여요. 저쪽 큰 망원경으로 가서 한번 보세요. 더 크게 보일 거예요.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망원경 옆에 줄을 섰다.

가히 같은 목성이지만 더 큰 목성이 보였고, 줄무늬도 선명했다. 4개의 위성 또한 선명히 보였다. 나는 목성을 보고는 주차장 자동차 안으로 들어와 관측하는 모습을 먼발치서 구경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어린아이가 오면 허리를 잔뜩 구부려 설명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한참 그렇게 에만 있는 게 지루해서 나는 또 밖으로 나와 아이 주변을 얼쩡거렸다, 사진으로 그 모습을 담아두고 싶어 먼발치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러다 문득 다 큰 아이 주변을 얼쩡대는 내가 어쩌면 아이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차안으로 들어가는데,

바람이 불고 추워지자 얇은 잠바를 입고 간 아이가 또 걱정이 되었다. 주머니에 있던 핫팩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났지만 꾹 참았다.


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네가 하는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하자, 아이는 대답은 없고 얼른 뭘 좀 먹어야겠다며 운전에 집중하라고만 했다.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나는 아이에게 목성은 어느 계절에 뜨는 거냐고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 목성은 늘 떠있죠. 다른 별이 그런 것처럼. 다만 볼 수 있는 때가 따로 있는 거죠.

그러니까 목성은 언제 볼 수 있는 거냐고, 두 번째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 그건 저도 알 수 없어요. 항상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예측할 수는 없는 거냐고 세 번째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 계산을 하면 지금도 예측은 하지만 모든 조건이 맞아야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니 그 또한 예측일 뿐이죠.

나는 기억력도 좋지 않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적는 것조차 하지 않으면 인생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다행히 종종 기록하고 메모한 것들을 보면 나름 최선으로 살았구나 하고 나를 기특해할 때도 있다. 때론 그런 기록들이 나를 옭아매기도 하고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성장시키고 일으키는 힘이 더 세기에 아이도 기록하는 사람이 되길 늘 바란다.


며칠 전엔 아이 앞으로 우편물이 왔는데 '장기기증희망등록'을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을 하면 보내주는 홍보용 스티커였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걸 등록했냐고 물어보니, 의외로 아이의 답은 간단했다.

- 좋은 거니까요

첫째 아이에게,


언제 그렇게 자라서

이젠 엄마보다 큰 어른이 되었구나

너와 내가

다른 행성인지 모르고 엄마는 너에게 집착했구나

목성의 위성처럼

엄마는 이젠 작은 위성이 되어야겠다.

충돌하지 않는 관계

행성과 위성의 관계처럼


너와 내가

그런 관계가 되자꾸나


더 성장하여 완전한 독립을 하는 날엔

각자의 별로 자기 삶을 빛내보자


너에게도 나에게도

각자의 힘이 적당하여

서로를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는

그런 관계로 잘 살아보자


네가 지구라면

엄마는 달이고 싶다


마음이 힘들 때

달을 보면 괜히 위로가 되듯이

엄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고맙다, 잘 자라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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