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혼자든 둘이든

by 붉나무


살다 보면 벼랑 끝에 서있는 것 같을 때를 종종 마주한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보면 그건 벼랑 끝이 아니고 시작점이었다는 걸 알 때가 있다.

뜀틀 선수를 떠올려보면, 넘지 못할 것 같은 높이 앞에서도 그들은 도움닫기 끝에 놓인 단단한 발판 하나에 힘을 실어 훌쩍 뛰어넘는다. 삶도 그렇다. 내가 겁을 잔뜩 먹고 주저앉을 것 같은 순간, 발판 하나만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 ‘발판’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더 늦기 전에, 가능하면 젊고 여유가 있을 때 그 발판을 미리 찾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발판이란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삼지 않는 방법으로 찾아야 떳떳할 것이다. 스스로에게서 발현되어 기운을 북돋워 주는 그 무엇이라야 한다. 자기 자신을 외면하며 맹목적으로 수동적으로 사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이도 불행해진다. 자기 삶을 가꾸는 것에 수동적인 것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내포하고 있다.

나도 아직도 능동과 수동의 그 중간쯤 어딘가를 헤매는 일이 대부분이다.


한편, 힘든 일이 짧은 주기로 반복될 때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영원히 잠들고 싶은 마음. 우리는 그런 상태를 '생을 끝내고 싶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일 수 있다.

꽤 오랜 기간 내 마음속을 지배한 감정은 ‘우울’과 ‘슬픔이었다. '우울'과 '슬픔'이 자리하게 된 근원을 나는 어렴풋이 알지만 그 모든 걸 가족에게 내색할 수 없는 게 또 엄마라는 자리다. 부러 활기찬 말과 미소로 가식을 떨거나 차분한 척을 하며 연기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내가 밝고 환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푸르른 4월, 길가에 차를 세우는데 사이드미러 너머로 걸어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사람들 같았다.

그 순간, 타인이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그러곤 바로 이상한 감정이 따라왔다.

‘나는 저렇게 아름답지도 못하지만 저렇게 살지 못하고 있구나.’

누군가를 만나 어떤 삶의 방식을 사느냐는 그 사람의 인생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양육하고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갈 무렵, 남편과 소통이 무척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어떻게 하든 해결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로서 나름 노력을 했지만 단시간 내에 개선되지 않았다. 30년 넘게 다른 부모 밑에서 다른 양육방식으로 다른 경험을 하며 산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이토록 지난한 여정임을 결혼 전엔 미처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남편과 내가 서먹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이 관계를 좁히고 싶지도 더 넓히고 싶지도 않지만, 소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가지고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에 홀로 산행을 하고 내려와 차를 타는 중에 마주친 풍경, 그 아름다움에 나는 조용히 서러웠다.


그 순간 내가 깨달은 건, 주로 혼자 다니는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만 지금 이 계절을 나는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꽤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저기 가고 있는 노부부(뒷모습은 아니지만 앞모습은 60 후반으로 보임) 도 어쩌면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았을지 모른다.


둘이든 혼자이든 마음 안에 삶의 환희가 넘치는 봄, 나는 나의 봄을 누리면 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다정히 걷는 모습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솔직한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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