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얼굴
"다음 주말에 아들 면회 가려하는데? 같이 갈 거지?"
"굳이 가야 해?"
"그럼 당연하지."
"휴가도 자주 나온다면서"
"그래도 아들이 어떤 부대에서 근무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나는 가보고 싶어."
"난 엄마 아빠가 한 번도 면회 안 왔는데..."
"그땐 부모님이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잖아. 그 시절엔 당신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잖아."
"그러든지..."
나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생각이 다른 걸 헤아려본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아이들을 양육하며 내내 이런 부분으로 의견 충돌이 있어왔고 서운했던 감정이 남아있기에 나는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큰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어머님 병문안을 간다며 가지 않은 것을 나는 당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병문안은 다른 날 충분히 갈 수 있는데도 굳이 그날 갔던 일, 둘째 아이 졸업식에도 당연히 가야 하는 걸 꼭 가야 하냐고 물은 일... 그럴 때마다 나는 무척 마음이 상했었다. 당연한 걸 왜 나는 매번 설득해야 하는지 내내 그런 것들이 화가 나고 힘이 들었다. 분명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욱 그랬다. 그의 어떤 마음의 불편함이 이토록 중요한 일에서 늘 우선순위가 되지 못할까... 그땐 자주 화가 났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는 안타까웠다.
큰 아이가 입대 후 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에 갈 때도 그 먼 데를 가야 하냐는 김 빠지는 말을 했다. 언제나 부정적인 그의 태도는 옆 사람을 무척 피곤하게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해놓고 내가 발끈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냥 흘려들으라는 둥, 갈 거였다는 둥, 그냥 해본 말이라는 둥..' 그렇게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놓고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당신을 위해서 가는 거야. 당신이 훗날 후회하지 않게. 큰 아이 졸업식에 안 간 거 후회되지 않아?"
설득을 하면 요즘은 그래도 듣기도 하는 편이다. 그리하여 먼 진주까지 기훈단 수료식에 참석했다.
정작 수료식에 참석했을 땐 맨 앞자리에 앉아서 우렁찬 군인들의 함성과 함께 열을 맞춰 운동장에 선 아들을 보고 나보다 그가 더 흥분했다.
우리 아이가 가장 줄을 잘 섰다느니, 움직이지 않는다느니 완벽한 표정과 자세를 보라느니... 정말 초등학생 운동회 가서 내 아이 찾아 떠드는 아빠처럼 흥분해하는 소리에 나는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원래 부모는 본인 자식이 젤 멋져 보이는 법인데 그걸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참... 뭐라 말하기도 그렇다.
돌아오며 늠름해진 아들을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다. 자식을 키우며 이런 시간을 놓쳤다면 어쩔 뻔했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했다.
아이들의 입시난 입대 문제같이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면 오히려 외면하고 현실 제도와 전혀 맞지 않는 자신의 군대 얘기를 하려 들었다. 요즘처럼 복잡다단한 입시제도에서 진로 선택에 있어 그 어떤 조언도 없이 혼자 알아서 하게 두라고 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가 이미 선택을 하고 원서를 다 넣은 상태에서 어느 학교 어느 과를 지원했는지 말해주면 왜 그런 학과를 지원했냐고 말했다. 그 일로 참 많이도 남편과 아이는 언쟁했고 나는 아이 편에서 아이를 두둔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아이가 건강문제가 있었음에도 결국 현역으로 가게 됐고 스스로 잘 알아서 준비해 적절한 시기에 갔다.
남편은 본인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엔 늘 양육의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에선 결정을 미루거나 빠졌다. 아이를 픽업한다든가 하는 단순하게 지시하는 것들만 하는 것을 육아에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무엇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내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로 인해 다툼이 발생했고, 나는 그 과정에서 설득되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웠고 나중에는 에너지를 더 이상 쓸 수 없어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수도 없는 갈등을 덮고 덮으면 언젠가는 더 큰 문제가 생겨 화산처럼 폭발하기 마련... 우리는 큰 아이가 중고등학생 때 그런 시기를 거쳤다. 지금은 그도 나도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어느 영역을 가지고 있어 더 이상 설득하려고 서로 애쓰지 않는다. 이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의 전쟁보다 잠정의 평화는 소중하니까... 전쟁보다 불안전한 평화를 택한 격이다.
그렇게 그는 골프에 몰두하고, 나는 읽기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완전히 다른 취미를 가진 우리는 이젠 서로의 영역에 대해 트집을 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미묘한 감정의 균열이 일어날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 그랬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오늘 일정을 묻자, 골프 모임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불꽃쇼 구경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겉으로는 숨기려 했지만 속으로는 비아냥거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뭐? 모임에서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고? 좋겠네. 좋아하는 사람들과 불꽃쇼도 보고... 불꽃놀이는 보통 연인이나 가족이 가는 거 아닌가... 나도 오늘 불꽃놀이 보고 싶었는데... 나는 혼자 보러 가야 하나... 근데 거기서 당신과 마주치면 좀 그렇긴 하겠다"
말해놓고 보니 비아냥거림 맞다.
'그럼 내가 그 모임에 안 나가고 너랑 불꽃놀이 보러 갈까?'라는 말을 기대도 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실낱 같은 기대를 하기도 한 것 같다. 이렇게 뒤끝이 남아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그렇게 말해도 나는 선약을 취소하라고 하진 않을 텐데 그는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러게... 오늘 아마 차들이 무척 많을 거야."
그가 저녁 약속이 있으면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내가 맡아야 하기에 내가 불꽃쇼를 볼 수는 없다. 그러니 따지자면 그는 내가 불꽃쇼를 보지 못하게 하는 나의 권리를 침해한 것과 동시에 내게 아이픽업을 온전히 맡기는 일을 준 셈이다. 그리고 분명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올 테니 그다음 날의 일정도 흐트러질 것이고... 그렇다고 이런 일로 억울하다 싸우는 것은 얼마나 유치한 일인가. 20여 년을 넘게 겪어 온 일이기에 말이다. 나는 정말 내가 그 단계를 초월한 것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타부타 나는 그의 대답에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아침 산책을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딜 가냐는 물음에 나는 짧게 말했다.
"산"
나는 출근할 때처럼 예쁘게(실제 예쁘진 않지만) 화장을 하고 청바지를 입고 얼마 전 마음에 쏙 들어 구입한 휴대폰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운동화를 신고 자동차 키를 챙겨 기분 좋은 척하며 집을 나섰다.
10분이면 도착하는 출판단지에 차를 세웠다. 햇살이 투명하게 나뭇잎을 비추고 바람은 살랑인다. 걷기 딱 좋은 날씨다. 담쟁이가 가득한 벽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가지가 휘어진 모과나무가 가을 하늘아래 탐스럽다. 나는 그 길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 금세 마음이 진정되고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산책을 하며 가을빛으로 물든 꽃과 나무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가 발이
멈춘 곳은 가을이면 거의 십 년째 거르지 않고 사진을 찍게 되는 한 벽면이다.
그 담쟁이넝쿨에서 나는 담쟁이넝쿨이 그린 완벽한 여인의 옆모습을 포착한 후 계절마다 그 변화하는 모습에 궁금증을 가졌던 것 같다. 아니, 처음엔 궁금해서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해부턴가 계절이 바뀌면 그 앞에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내가 알고 싶은 또는 이해하고 싶은 그 무엇을 찾아내려 애쓰지만 아직 찾지 못한 나를 찍으려 한 것이 아닐까...
오늘 당쟁이 얼굴을 찍으며 잠정적으로 내가 추측한 것은 나를 그 벽의 담쟁이에 비춰보며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쯤으로 생각해 본다.
매년 그 여인이(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확인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이랄까.
인지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어떤 감정이나 경험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을 때' 그 감정을 재경험하려는 '정서적 회귀'현상이 나타난다고 본단다. 즉, 내 마음속 아직 '완전히 해석되지 않은 어떤 감정의 기억'이 그 담쟁이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것이 상실과 변화의 계절인 가을에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마치 그것을 찍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이 생기고, 그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사진을 찍는 행위로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담쟁이 여인(나)에게 걸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가을의 담쟁이는 지금 나의 계절을 닮았다.
우주에서 먼지만큼도 되지 않는 나의 사라짐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 그리고 그 존재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 하는 부질없는 욕망... 아마도 나는 그런 내 존재를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매년 그 담쟁이에게로 가 사진을 남기는 것 같다.
매년 비슷한 계절마다 한 번은 들러 담쟁이를 찍지만, 정작 아직도 부유하고 있는 나를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