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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Nov 24. 2022

작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이다

유나 이야기

  유나는 혈당이 떨어져 당을 보충하고 당이 오르길 기다리는 시간에 그림 한 장을 그렸다. 보통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얼굴은 커다랗게 몸은 작게 그리듯 유나도 그랬다. 머리와 몸통을 1:1 비율로 그렸고 아이가 서 있는 지구도 그 아이 머리만 했다. 말하자면 자기의 머리만 한 지구에 혼자 서있는 그림이었다. 한쪽 구석에 띠가 있는 행성을 하나 그린 것 보니 유나가 그린 것은 우주다. 그림에서 발견한 특이한 것은 자신으로 추정되는 여자 아이의 몸에 진하게 이중의 테두리를 한 것이다.

  나는 심리상담가도 아니고 그림 해석하는 법 모르지만 아이의 심리 상태가 그대로 반영된 그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당뇨 진단을 받고 보건실에 와서 보인 여러 행동들을 보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지만 모두 생명이 있는 것들이다.

"선생님, 바깥 활동을 해서요... 엄마가 혈당 측정하래요."

"그래"

"선생님 근데요... 저 벌레 사진 찍었어요."

"궁금하네... 무슨 벌레일까?" 아이가 자랑하듯 휴대폰을 꺼내 보여준 사진은 벌레 유충, 모기, 무당벌레였다.

"선생님, 한 마리는 무당벌레예요."

"그러네, 칠성 무당벌레네. 무당벌레 사진 아주 잘 찍었네. 또 찍은 건 없어?"

"선생님 눈치 보여서 못 찍었어요."

"왜 눈치가 보여?"

"원래 사진 찍으러 간 시간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꼭 찍고 싶었어요."

"응~ 그랬구나! 유나가 작은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네"


  당뇨가 있는 이 작은 아이가 정말 작은 것들을 찍어서 내게 보여준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유나가 찍어온 것들은 자기 새끼손톱만 한 작은 것들을 담아왔다. 작지만 모두 생명이 있는 것들이다.


  소아 당뇨를 앓고 있는 유나는 늘 핸드폰을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휴대폰 앱에 저혈당 고혈당 알람이 울리면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아이는 어떤 이유에선지 작은 벌레에 눈이 간 것이다. 선생님 눈을 피해서라도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다. 섣부르고 과한 추측 일지 모르나 그 작은 생명들을 무의식적으로 찍은 것은 자주 채혈을 해고 인슐린을 매일 맞아 적정한 혈당을 유지해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그 아이의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이 순간이 안전해야 그다음의 삶도 기대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 아이는 자신의 처지를 작은 생명체에 투영해 사진을 찍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그날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유나가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선생님, 집에 갈 때 보건실 문 앞 바닥을 보세요."라고 말을 하고 간다.

손바닥 만한 종이에 삐뚤빼뚤 아이가 쓴 글자들... 울컥 눈물이 고였다

'보건 선생님! 감사합니다.  -유나가-'

"유나야, 언제 전학 간다고 했지?"

" 9월에요"

# 아이들의 꿈도 현실을 반영한다


선생님, 저 정말 무서운 꿈 꿨어요!"

"어떤 꿈인데?"

"꿈에... 제가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는데... 그게 와장창 깨져서 혼나는 꿈이요.

사실... 동생이 저번에 핸드폰을 깨서 엄청 혼났었거든요."

"무서운 꿈 맞네"

"선생님, 저 정말 무서워요!"

"뭐가?"

"핸드폰을 떨어뜨릴까 봐 무서워요. 이거 어제 산 건데요. 케이스를 아직 안 해서요. 오늘 엄마가 사 온다고 했어요."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혹시 깨질까 봐 걱정이 되는구나. 가방에 있는 휴대폰이 걸어 나올 수 없으니 오늘 집에 갈 때까지 가방에서 꺼내지만 않는다면 오늘 걱정은 안 해도 될 걱정이네"

"네" 아이가 휴대폰을 슬며시 보조가방에 넣는다.

# 만성 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민감성이 높다

유나는 주사를 맞으러 오는 시간에 한동안 무서운 게 있다며 호들갑을 떨며 보건실로 뛰어들어왔다.


"선생님, 보건실 앞 벽에 소금쟁이 같은 게 붙어있어요"

"그래? 소금쟁이가 물에 안 있고 여기까지 놀러 왔나? 가보자!"

"모기네. 모기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잡아야 해요!"

"그렇지!"


"선생님, 학폭함에 무서운 게 있어요."

"그게 뭔데?"

"어... 누가 화장지에 피를 묻혀가지고 올려놨어요!"

"그래? 무서운 건 치워야지. 매번 피해 다닐 순 없지!"


"선생님, 2층 계단에 오는데 무서운 게 있어요"

"그게 뭔데?"

"거미 같아요"

"어딘데? 가보자."

"거미 맞네, 살려줄까? 죽일까?"

"살려줘요!"

"그래,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놓아줘야지."

거미를 창밖으로 놓아주었다.


  만성 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대체로 유나처럼 주변 환경에 예민한 편이다.

# 유나의 깨알 비밀


"선생님, 저 어제 진짜 진짜 늦게 잤어요"

"그래? "

"엄마 몰래... 2층 침대 올라가서 핸드폰을 했어요."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근데 한밤중에 잠을 안 자고 핸드폰을 하면 다음날 졸리고 그게 자꾸 반복되면 자라는 데 안 좋을 수 있어서 엄마가 속상할 거야."

"네 알아요."


 어느 날은 등교하자마자 아침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혈당이 높을 거라며 당 측정을 해야 한다며 와서는 당을 측정하기도 전에 어젯밤에 속상했던 일을 말했다.

"선생님, 저 어제 정말 정말 화나고 속상했어요!"

"그래? 무슨 일이 있었구나?"

"아니이... 동생이 유치원에서 편의점을 간대요"

"그래? 동생이 편의점 가는데 왜 속상했어?"

"그게 아니라 어제 편의점 간다고 종일 자랑했어요."

"그랬구나. 유나도 편의점 가고 싶은 거야?"

"네"

"동생이 자랑을 많이 했나 보네."

"뻔해요. 분명 젤리랑 초콜릿만 잔뜩 살 거예요! 전 초콜릿은 좀 좋아하지만 젤리는 별로거든요. 동생은 맨날 젤리만 먹어요. 그것도 내 앞에서"

"그러게 많이 속상했겠네. 동생이 아직 유나보다 어려서 뭘 잘 모르나 보다. 언젠가 동생도 그러지 않을 날이 올 거야."


   화나고 속상해요의 이면에 있는 아이 마음은 나는 젤리, 초콜릿 내가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데 동생은 그걸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데다 자랑까지 해서 너무 화나고 속상하다는 것일 테다. 아이는 그걸 자랑으로 계속 이야기하는 동생이 잠시 미운 것이리라. 그걸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겠고 하니 아침 댓바람부터 보건실에 들러 쏟아놓는 것이다.

#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

'삐릭, 156'

"(웃음 가득) 좋다!"

"유나가 좋다니까 선생님도 좋다!"

피를 닦은 소독솜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발뒤꿈치를 들고 사뿐사뿐 보건실을 나간다. 유나의 발뒤꿈치에 유나의 마음이 다 보인다.

 하루 두세 번 채혈로 당을 측정하는 유나가 혈당 수치가 높을 거라 짐작했는데 딱 원하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보건실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 '좋다'를 당뇨를 앓는 아이를 통해 종종 듣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오늘이야말로 '좋은 날'이다. 좋은 날은 어제와 비슷하지만 아주 조금 새로움이 묻어 있는 날, 그걸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자의 것이리라. 유나는 가끔 이 말과 사뿐사뿐 걸어 나가는 모습으로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곤 한다.

# 안녕

유나가 전학을 갔다. 전학 가는 날 어머니가 찾아와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유나 전학 간 학교 보건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다. 유나는 정말 괜찮은 아이라고 칭찬만 했다. 그냥 다 잘한다고 말했다.





*유나 : 가명

*사진: 출판도시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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