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아빠의 이야기 III -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의 얼굴은 도서관에 들어올 때보다 더 초췌하고 피곤해보였다. 재연 쪽을 바라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재연에게 들어달라는 듯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 아내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아내 병간호를 하면서도, 또 6개월 만에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저는 딸 수아를 돌보느라 맘껏 슬퍼하지도 못했지요. 저에겐 당장 돌봐야하는 딸아이가 먼저였으니까요.
엄마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더 열심히 수아에게 최선을 다했어요. 그렇게 계속 계속 최선을 다해 수아를 키우다보니 수아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점점 커져가더군요. 어느순간부터는 제가 굴릴 수도 없을 만큼 괴물같이 커져버렸어요. 그 즈음부터 내 인생을 걸고 키우는 딸아이가 점점 엇나가는 모습이 보였어요.
어릴 땐 공부도 곧잘 하고, 아빠인 저도 챙기고 따르고 했는데 말이죠.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그래도 내 인생을 걸었는데, 최소한 너라도 번듯하게 자라줘야 하지 않겠니, 아마 그런 생각을 했나 봐요. 점점 아이에 대한 기대도 커가고 욕심도 커갔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제 앞에서 입을 닫은 아이가 답답하기만 했어요. 제 얘긴 들으려고도 안하고. 제 삶이 갑자기 너무 억울해 지더라구요. 그래서 내 억울함을 계속 아이에게 말하고 싶었나봅니다. 나는 인생을 걸고 너를 키웠으니, 너는 내 억울함을 좀 알아달라는 그런 말이요. 아이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아이가 책을 두 권이나 썼을까요. 이 많은 이야기들을 혼자 품고 얼마나 외로웠을지..”
충혈 된 눈가를 손가락으로 연신 누르던 남자는 두 권의 책을 다시 재연에게 건넸다.
“선생님 조언이 맞았습니다. 지금 바로 딸에게 가야겠어요. 아이의 진짜 마음을 들어 봐야할 것 같아요. 책은 잘 읽었으니, 빌려가지 않고 이곳에 두고 가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오늘이 저희 도서관 마지막 날인데, 마지막 이용자분이 만족하셨다니 저도 너무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조금은 홀가분한 표정의 남성은 마지막까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