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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Mar 14. 2022

퇴사 후 3개월, 나를 울린 '6살 딸'의 한 마디

드디어 6살 딸의 마음을 얻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런 유치한 질문을 내가 할 줄이야. 부모들은 왜 자녀가 곤란하게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빠가 되어보니 자녀에게도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서 묻는 것 같다. 딸 사랑이는 4살 때부터 아내와 내가 이 질문을 하면 고맙게도 "둘 다!"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흐르고 5살 무렵부터는 "엄마!" 망설임없먼저 나왔고 아빠 눈치를 본 뒤에야 "아빠!"라고 말해다. 작년 어느 날 아이가 가족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을 어떤 모습으로 그릴지 궁금해서 옆에 앉았다. 아이는 아빠를 그리고 있는데 집이 아닌 직장에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길래 딸에게 바로 물어봤다.


"사랑아. 아빠를 왜 집에 안 그렸어?"

"아빠는 일을 좋아하니까요."

"아빠가 집에 같이 있을 시간이 부족해서 속상하구나. 사랑이는 아빠가 일 많이 해서 어때?"

"아빠가 계속 없어질까 봐 걱정돼요."

 "..."


현타를 세게 맞았다.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가족을 위한 건데, 가정이 세워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힘이 쭉 빠졌다. 업무 시간이 많아질수록 피곤한 몸과 정신으로 집에 돌아가면 아이에게 넉넉한 아빠가 되지 못했다. 아이와 관계를 좁히기가 참 어려웠다. 직장생활에서도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기본 욕구를 채울 정도의 워라벨을 추구해도 직장에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돈이 없어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돈만 없는 것이 아니라 결국 시간이 없는 문제였다. 적어도 가족에게 '아빠' 역할을 하고 싶다면 어딘가 변화가 필요했다. 가정이 흔들리면서 일하는 구조가 아닌, 가정을 세워갈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세팅하기로 했다.

오전은 '배송', 오후는 '육아', 저녁은 '작가'


아이가 둘이 있어서 고민이 되었지만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그대로 살 수밖에 없는 계산이 나왔다. 아내와 계속 대화하기존 수입 수준을 유지하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많이 확보하는 방향으로 좁혀갔다. 육아 5년을 꽉 채운 아내도 전환이 필요했는데 마침 이전 직장에서 오후 파트타임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1인 기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2년 전부터 '생존책방' 이름으로 생존을 위한 '책읽기'와 '글쓰기'를 콘텐츠를 블로그에 쌓아고 있었다. 아직까진 미비해 수입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오전까지 배송 업무를 추가했다. 오전은 일하고 오후에는 아내가 일하고 내가 17개월 아들 맡아 육아했다. 저녁은 작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게 중요한 미션이 생겼다. 저녁 식사를 아내 퇴근시간에 맞춰 준비하는 이다. 그동안 나는 라면 외에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었다. 몇 주는 반찬가게에서 사와서 조리만 해서 내놓았다. 하지만 계속 사먹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 요리를 하나씩 연습해보기로 하고 유튜브를 보며 하나씩 도전했다. 계란찜을 배우고, 국을 도전해서 어묵국, 결혼 전 몇 번이나 실패했던 김치찌개를 만들어냈다. 다행히 아내가 점점 맛있어지고 있다고 했다. 어제는 아내가 피곤해 보여서 내가 콩나물 밥을 해주기로 했다. 아이들도 다 맛있게 싹싹 긁어먹어주니 마음이 그렇게 배부를 수 없다. 밥을 다 먹고 사랑이가 갑자기 말하길.


"아빠! 아빠가 이제 일 많이 안 해서 좋아요!"


눈물이 핑돌았다. 너무 고마웠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정을 세워가기로 방향을 정한 지 세 달이 다 되어간다. 사실 일을 그만두고 에너지가 남아도 여전히 아이가 징징거리는 걸 받아주지 않고 화내니까 스스로에게 낙심하고 있었다. 딸과 관계 좁히는 게 참 어렵다고 생각하던 참에 사랑이 입에서 아빠가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딸에게 내가 '아빠'의 존재로 마음을 채워준 것 같아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내가 눈물이 난 이유는 지금까지 아빠가 되었다고 아빠 역할을 당연히 할 수 있는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놀라서 "울어요?" 묻더니 따라 울고, 사랑이를 안아주자 사랑이도 눈을 비비더니 눈물이 고여있었다. 식탁이 갑자기 눈물바다가 되었다. 딸의 한 마디는 나를 강력하게 치유해줬다. 아이 마음을 채우고 또 채워주면 결국 차오르는 거구나. 중요한 걸 아이에게 배웠다.


"사랑아. 그래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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