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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Jan 13. 2022

또 부모 차에 치였습니다

부모에게 또 기대하고 실망하다

잘 지내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퉁명스럽게 답했다. "뭘 똑같지. 왜?" "뭘 왜야. 전화를 하도 안 하니까 내가 했지" 또 자기 입장부터 말하는 엄마의 반응에 벌써 질린다. 5살 된 첫째 딸이 묻는다. "아빠 누구예요?" "아 할머니 셔. 아빠의 엄마야. '안녕하세요' 인사해~" 딸은 타 지역에 있는 할머니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그런지 어색해했다. 나는 2살 된 아들과 함께 아이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끊어봐요. 영상통화로 해줄게."


나는 아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비춰줬다. 15개월 된 아들이 해맑게 뛰어다니며 장난을 친다. 딸은 수줍게 누구인지 살폈다. 옆에 있던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구~ 아이들 많이 컸다야~" 아빠가 첫째에게 말했다. "밥은 먹었니?" 아이는 부끄러워서 몸을 오징어처럼 베베 꼬았다. "둘째는 말은 좀 하니?" "응. 그냥 엄마, 아빠, 맘마, 누나 정도 해요." 여전히 내 손은 아이들이 웃는 얼굴을 따라서 열심히 비췄다. 통화가 길어지자 마무리를 지으려고 둘째에게 인사를 시켰다. "바다야 빠이빠이~" 해봐. 원래 귀엽게 잘해주는데 낯선지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웃으며 불쑥하는 말 "등. 신. 같이 빠이빠이도 못하고" 나는 깜짝 놀라 순식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본인은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차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내가 못 들었을까?'였다. 한편으론 애써 아무 일 아닌 척 덮어버리려는 내 태도 화가 났다. 왜 바로 아빠에게 화내지 못했을까? 다시 전화해서 '아빠는 왜 말을 그렇게 ! 그렇게 하지 마세요!' 말하든지. 왜 듣고도 못 들은 척 끊었는지 후회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아내가 묻는다. "여보 아까 아버님이 뭐라고 하신 거야?" "응? 뭐가?" "욕하시지 않았어? 여보 분명히 들었을 것 같은데?" "아니야 듣긴 뭘 들어. 잘 모르겠는데?" 모른 척 말하는 내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역시나 아내는 알고 있었다. "아니 여보 왜 못 들은 척을 하는 거야. 화나지 않아?" "그래 맞아 화가 나. 근데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왜 아이들을 영상통화로 보여줬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말하면서 깨달았다.


"아 혹시 이런 걸까? 내가 아이들을 비춰주면 예뻐해 줄까 봐 그랬거든. 사실은 내가 사랑받고 싶은데 그 기대가 아직 부모에게 있는데 나는 받을 수 없으니까. 아이들을 통해 받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말을 마치자 내 눈시울은 붉어졌다.




속상하다. 아직도 부모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부모를 원망하는 이유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만큼 원망하게 되는 구. 아빠의 농담게는 교통사고와 같았다. 사고 당시에는 경황이 없는 법, 내가 왜 벌어진 일을 부인하려고 했는지, 왜 정상적인 반응을 하지 못했는지 시간이 지나 생각이 정리되었다. 아내는 대화를 마치고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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