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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Sep 11. 2019

실패할 게 뻔한데 뭐하러 도전하나.

“저는 성공할 게 확실하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아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한 말이다.

“저도 그래요!”

지인의 말에 신대륙을 발견이나 한 듯 신나게 맞장구쳤다. 정말 그렇다. 나도 도전을 잘하지 않는다. 아니 내 인생에서 도전이라는 걸 한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대학 지원, 입사 지원 프러포즈 등 인생의 변곡점에서 갖가지 도전, 남들 다 하는 도전을 해보긴 했다. 하지만 남들처럼 ‘모 아니면 도’식의 ‘모험’, 인생을 내 건 도전을 해본 적은 없다. 왜? 실패할 확률이 크니까. 지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성공할 게 확실하면 도전을 하죠. 하지만 실패할 게 확실한 거에 대해서는 도전하지 않아요. 어차피 실패할 건데, 괜히 도전하면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하게 되니까요. 실패할 게 뻔한 거에 도전하느니 성공 확률이 높은 걸 찾아서 도전하는 게 낫죠.”

지인이 내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지인의 말 그대로, 나도 그렇다. 나는 안전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나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 보이면 애초에 도전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낭비를 해야 하니까. 어차피 낭비할 거면 성공 확률이 높은 것에 도전하는 게 백 배 낫다고 생각한다.

나와 지인뿐일까. 사람들은 도전에 인색하다. 나와 지인처럼 실패 확률이 높은 것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좋게 보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책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그럴듯한 이유를 이것저것 아무리 갖다 붙여도 결국 한 가지로 수렴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덕지덕지 붙인 온갖 이유를 다 뜯어내고 나면 이것 하나 남는다. 사람들은 도전하지 ‘않는 게’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인생을 평탄하게 살 수는 있다. 나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도전다운 도전을 해보지 않아서 인생을 평온하게 살 수 있었다. 질곡 없이, 모난데 없이 살아왔다. 그 점은 만족한다. 그런 면에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난데 없이 살았다고 해서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부정적인 면도 있다. 도전하지 않은 덕에 고만고만하게 산다.

도전하지 않으면 인생을 평범하게 살 수는 있다. 인생의 고락 중 즐거움만 누리며 살 수 있다. 즐거움까지는 아니라도 괴로움은 겪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 이상의 것은 누릴 수 없다. 그 이상의 것을 누리려면 도전을 해야 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지금 수준 이상의 것은 누릴 수 없다. 인생의 여유와 만족은 누구에게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사는 집에 입주하기 전에 아내가 한 말이 있다.

“그러면 평생 24평에서 못 벗어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아내 친구의 권유로 지금 사는 집을 구입했다. 33평짜리 새 아파트다. 신혼집을 새 아파트로, 그것도 무려 33평짜리 아파트로 마련할 수 있다는 행복한 꿈에 젖어 덜컥 매매 계약서를 작성했다. 모아놓은 돈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 집에 입주하기 위해 부모님 집에서 3년 동안 살며 정말 열심히 돈을 모았다. 입주를 몇 달 앞두고 우리가 모은 돈을 계산해 보았다. 목표한 금액에 한참 못 미쳤다. 잔금을 치르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걱정이 돼서 아내에게 강력하게 말했다.

“여보 집 팔자. 집 팔고 24평짜리 집을 알아보자.”

아내는 격렬히 거부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모자란 돈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예정대로 입주하자고 했다. 우리 형편에 모자란 돈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건지, 답답한 마음에 재차 팔자고 했지만, 아내는 계속 입주하자고 졸랐다. 더 이상 말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손을 털었다. 아파트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될 대로 돼라” 모자란 돈은 아내에게 떠넘겼다.




앞서 언급한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살아오며 도전다운 도전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아내의 말은 그런 내 인생을 와장창 무너뜨렸다. 아내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33평에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아내의 말은 도전을 피하며 살아온 내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지 않은 탓에 넉넉히 벌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벌이가 나아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그 집을 포기하면 24평은커녕 평생 18평 집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다소 무책임하지만 모든 걸 아내에게 맡겼다. 말하자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인 동시에 소극적인 도전이기도 했다.

결국 아내가 정말로 어찌어찌 모자란 돈을 마련했고, 그 덕에 그 집에서 1년째 잘 살고 있다. 이런 말을 덧붙이기는 뭐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도전다운 도전을 한 덕분에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아내의 말에 도전할 마음이 없었다면 어떻게든 아내를 꺾고 다른 집을 마련했을 테니까.




도전이라는 게 그렇다. 실패 확률이 놓다. 실패 확률이 낮다면, 다시 말해서 성공 확률이 높다면 그건 도전이 아니다. 도전이란 어려운 일을 성취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은 데에 몸을 던지는 건 시도 내지 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실패가 없으면 도전도 없다. 실패가 존재하기 때문에 도전도 존재하는 것이다.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도전해서 성공했을 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고,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에는 도전할 가치가 없다.

사람들은 도전을 두려워한다. 실패할 것 같으니까.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반대로 실패했을 때 잃는 것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전을 꺼리게 된다.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게 시간이 됐든 정신과 육체의 에너지가 됐든 돈이 됐든, 무엇이든지 간에 잃기 싫어서 도전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때론 자신의 신세를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성공한 사람들보다 못해 보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서 얻은 결과이이다. 아니, 그들도 사람이니 실패를 두려워하긴 할 것이다. 다만 실패하면 잃는 게 많기 때문에 잃지 않기 위해 죽기 살기로 덤빈 결과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들의 성공은 도전에 성공하여 얻을 수 있는 게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걸 바라보며 실패의 두려움을 물리치며 나아간 결과일 수도 있다.




지금 집을 사게 만든 아내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 가겠다고 한다. 그 친구 신랑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고, 당장 다음 주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한다. 우리 부부에게도 같이 가자고 난리다. 도전을 즐기는 부부다.  그 친구 따라 집도 구입했는데, 못 갈 것도 없지. 정말 따라 가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아기가 어리다. 이제 백일 지났으니 가면 누가 돌봐 주랴. 베이비시터를 쓰기에는 형편이 안 되는데. 우리는 아직 이르다. 갈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기에 먼저 가서 자리 잡아 놓으라고 했다. 아기가 크면 따라가겠다고. 정말 따라가면 내 인생에서, 집을 사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과연 캐나다에서 살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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