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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면 호구가 된다.

관계 연습#11

by 인생짓는남자


호구가 되는 사람은 항상 혹은 자주 호구가 된다. 그리 미련할까. 천성이 그래서다. 청성이 그런 어쩌겠는가. 손해를 보더라도 스스로 호구가 되는 길을 택하니, 계속 그렇게 수밖에.




초중학교 다닐 때 도덕 시간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예의 발라야 하고, 사회 법규를 잘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더불어 사는 사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세상 물정을 아직 모른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법규를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나부터 배운 대로 살면 정말 아름다운 사회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사회는 교과서대로 되지 않았다.

아름답기는커녕 사회는 점점 더 각박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했다. 너도 나도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 사람들의 목표는 나 혼자 잘 사는 것이지, 더불어 살거나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조금도 관심 없어 보였다. 그런 사회에서 착하게 살라고? 그건 호구가 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착하게 살면 호구가 된다. 현실이 그렇다. 착하면 이용당하고, 물어뜯기는 게 사회다. 사회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사람들은 더불어 살지 않는다. 물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아직은 존재한다.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이지 않게 있다. 미담을 전하는 뉴스 기사가 예전보다는 뜸하게 보도되지만, 여전히 가뭄에 콩 나듯 보도된다. 더불어 사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도 착하게 살면 호구가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착하다고 해서 무조건 호구가 되는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착하냐에 따라 호구가 되느냐 호구가 되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가령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호구가 되기 쉽다. 여기서 말하는 베풂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베풂이 아니다. 쉽게 뺏기고, 쉽게 손해 보는 걸 뜻한다. 뺏기도 되찾으려 하지 않고, 가만있는 걸 말한다. 이건 착하다고 하기보다 순진하거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착하다의 범주에 포함되긴 하니 그냥 착하다고 말하겠다. 다만 그 형태는 구분한다.

자신이 가진 돈, 능력, 시간 등을 남에게 빼앗기고도 항의하지 않고 그저 “허허” 거리는 사람은 호구가 되기 딱 좋다. 아니면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면 역시 호구가 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호구다. 남이 나에게 무언가 부탁하면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거절할 필요가 없고, 들어줄 수 있는 거야 거절할 필요가 없지만, 거절하고 싶은 것도 잘 거절하지 못한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고, 반대로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서다. 간단히 말해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다.

그렇다. 호구가 되는 사람들은 보통 나처럼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다. 내 평판이 나빠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 한 번 깎인 이미지를 다시 세우기 쉽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니 거절을 못하고, 손해 보고도 찍소리도 못한다. 아무 말 못 하니 호구가 되고 만다. 내가 누려야 할 걸 잘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는 나를 보며 답답해한다. 왜 손해 보냐고 말이다. 할 말이 있으면 하고, 해야 할 말은 하지 왜 참고 손해 보냐고 나무란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내가 할 말을 한다는 건 밤하늘에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싫은 소리도 할 줄 아는 사람만 하는 거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회사와 같이 생업이 달린 곳에서 싫은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다 회사 생활이 힘들어지면? 그러다 회사에서 잘리면 식솔은 어떡하라고. 그러니 어림없는 소리다.

안타깝게도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호구가 되는 것이다.




거친 이 사회에서 호구가 되면 좋을 게 없다. 손해 보게 되니까. 물론 호구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손해만 보는 건 아니다. 가끔 그 덕분에 이득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크고 작은 손해를 입는다.

그런데도 기가 막히게도 호구가 되는 사람은 항상 혹은 자주 호구가 된다. 왜 그리 미련할까. 천성이 그래서다. 청성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손해를 보더라도 스스로 호구가 되는 길을 택하니, 계속 그렇게 살 수밖에. 그러니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호구에 해당한다면,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 말자. 호구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자. 그냥 나는 남을 섬기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정신 승리를 하자. 그게 건강에 이로우니까.


마지막 문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



Key Issues

1. 착하게 살면 호구가 된다.
2. 호구가 되는 사람은 계속 호구 노릇을 한다.
3. 호구가 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남에게 이득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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