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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향 연설은 대화가 아니다

관계 연습 #17

by 인생짓는남자

쌍방향 연설이 시작되려고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하자. 쌍방향 연설은 대화가 아니니 죽기 살기로 끝까지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시간만 낭비되고, 정신 에너지만 소모된다. 한 마디로 피곤해진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끝내자.




몇 주 전에 직장 동료와 말다툼을 했다. 정말 별 거 아닌 일로 서로 내가 맞네 했다. 우습게도 커피가 발단이었다.

“나 요즘 가끔 심장이 벌떡벌떡 뛰어. 신체검사에서 100m 달리기를 뛰고 나면 심장이 막 뛰잖아. 그것보다 더 빨리 뛸 때가 있어. 아무래도 카피를 마셔서 그런가 봐.”
“그래, 너 커피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 커피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않아. 하루에 적당량 마시면 좋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사람마다 달라. 심장이 안 좋은 것 같으면 마시지 마. 그러다가 잘못될 수도 있어.”

대화는 순조롭게 시작됐다. 서로 첫마디를 주고받았을 때까지는 아무 문제없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벌어졌다.

“그래도 커피 계속 마실래. 잘못되면 잘못되는 거지.”
“네가 잘못되면 가족은 어떡하고.”

이다음부터 “마실래”, “마시지 마” 한치의 양보도 없는 말싸움이 벌어졌다. 말싸움이 길어지자, 다른 주제로 옮겨갔고, 결국 직장 동료가 울분을 쏟아내듯 말했다.

“너는 꼭 그러더라. 속으로는 아니더라도 그냥 맞다고 해주면 안 돼? 내가 아는 다른 사람은 다 그렇게 해주는데 너는 왜 항상 넘어가 주지를 않아?”

동료의 말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응수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너는 내 말에 그냥 넘어간 적 있어? 너도 내 말을 항상 맞받아치면서 왜 나만 맞다고 받아줘야 해? 그리고 틀린 걸 틀리다고 하지 어떻게 맞다고 해?”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한참을 줄다리기한 끝에 겨우 타협점을 마련하고 대화를 마쳤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불통 상황을 겪는다. 내 생각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 침을 튀겨가며 말을 쏟아내지만, 상대는 도무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로는 이해했다고 하지만, 그의 반응을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잘못 이해한 듯 보인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이해했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에 설명을 덧붙이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는 자기 입장에서만 말한다. 이런 상황을 대화가 아니라 쌍방향 연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쌍방향 연설은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걸 말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자기 생각만 말하는 것이다. 내 말이 중요하다. 상대가 어떤 의도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이 중요하다. 내가 상대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와 그 해석을 바탕으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상대의 말을 이해했는지보다 상대가 내 말을 이해했는지가 대화의 관건이다.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 겉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계속 내 말을 하게 된다.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다. 경청은 대화에서 기본 예의이자, 기초이다. 대회를 할 때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상대의 말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할 수 있다. 경청하지 않으면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없다. 그리고 대화에서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으려면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경청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한다. 이런 사람은 대화 시작부터 쌍방향 연설 아니 일방 연설을 한다. 대화하기 피곤한 부류다.

경청을 하더라도 제대로 듣지 않고,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이 있다. 경청하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피곤한 부류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다르게 받아들이니까. 이런 사람과 대화하면 대화가 점점 꼬여서 나도 같이 연설을 하게 되고, 결국 쌍방향 연설을 하게 된다.

대화에서 쌍방향 연설이 벌어지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동의받고 싶고, 자기 생각을 주입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기적이라서 그렇다. 나만 생각하니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쌍방향 연설은 대화가 아니다. 그건 말 그대로 연설이나 다름없다. 내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연설 말이다. 대화를 하려면 말을 주고받아야 한다. 연설을 주고받는 것도 대화가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말을 주고받는 거니까.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대화가 아니다. 말싸움이라고 하면 모를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쌍방향 연설이 시작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심은 그렇지 않지만, 상대의 말에 맞장구 쳐주는 척하면 된다. 맞받아치려고 하면 연설이 끝나지 않는다. 오하려 상대는 독기가 올라 끝까지 자기 말만 할 것이다. 연설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이다.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상대의 말에 적절히 맞장구 쳐주자. 그래야 연설이 빨리 끝날 테니까. 별거 아닌 주제로 피곤해지기 전에 그 상황에서 빨리 탈출하자. 그게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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