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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Jan 08. 2019

퇴근해도 야근 중

퇴근 후 연락 금지!

2016년, 퇴근한 근로자에게 상사가 전화나 문자로 업무를 지시하는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많은 직장인이 너도나도 그 문제로 고통받는다고 하소연했다. 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발의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법이 통과되고 시행돼도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기야 우리나라의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누가 감히 상사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 정말! 퇴근 후에는 연락하지 마세요!”


법적으로 퇴근 후 연락을 금지해도 현실적으로는 계속 이뤄질 것이다. 상사가 지키지 않는다고 누가 고발할 수 있겠나. 분명 업무 보복이 이루어질 텐데. 그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그래, 좋다. 용기에 용기를 내어 그만 연락하라고 말은 못 해도 야근 수당으로라도 계산해 달라는 말을 한다고 치자. 과연 줄까? 주지 않는 회사가 태반일 것이다. 설령 수당으로 계산해서 준다고 해도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얼씨구나, 일을 왕창 시키겠지. 그것이 우리 사회의 뒤틀어진 자화상이다.




나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업무 지시는 아니지만, 나의 상사도 아무 때나 연락한다. 퇴근 후에? 그것뿐이면 좋겠다. 퇴근 후에만 연락한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퇴근 후에는 물론이고 토요일, 일요일, 기타 공휴일에도 서슴없이 연락한다. 시간? 그런 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아침에도 한다. 점심시간에도 한다. 저녁 시간에도 한다. 심지어 한밤중에도 한다.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두 번 세 번 부재중 기록을 남긴다. 거기에 시간 될 때 연락 달라고 카톡을 남긴다. 연락하면? 게임 끝. 최소 40분간 통화해야 한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든, 식사 중이든, 잘 시간이든 상관없다. 본인이 할 말을 다 해야 통화가 끝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집에 손님을 초대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한창 점심 준비를 했다. 준비가 끝나갈 때쯤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은 12시 30분 정도.


‘점심시간인데 길게 통화하겠어?’


설마 하며 전화를 받았다. 한두 마디가 오가고, 통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손님은 이미 와 있었다. 내가 통화하는 사이 점심상이 다 차려졌고, 아내가 식사하자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통화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결국 손님들이 식사를 다 마친 후에야 통화가 끝났다. 손님들에게 사과하고 뒤늦게 식사했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왜 식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이야 쉽지. 그는 내 목을 쥐고 있는 상사다. 마음으로야 수백 번 외쳤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들어보면 급한 이야기도 아니고,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다. 단지 본인이 하고 싶은 말, 넋두리다. 전화기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다.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시 심각한 사회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 한 계류 상태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 그때 다시 검토하겠지. 설령 통과된다 해도 바르게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많은 직장인이 불합리한 처우와 상황에 신음하고 있다. 회사에서 알아서 개선해 주면 좋으련만, 알아서 개선해주는 회사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근로자의 희생만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우리는 그렇게 불합리한 상황에서 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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