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녹록치 않은 우리 아버지들
아는 감독과 진동 앞바다 바다횟집 노란 가로등에 앉았다
부둣가 귀퉁이에
낡은 배가 쪼그리고 앉아
포말을 피워댄다
그 등짝에 녹슨 우울이
톺처럼 득지득지하다
고독이 짙게 배인
아는 감독에게 왜 사냐고 물었다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사춘기 두 딸의 등쌀에 고단하다고
자기 등을 등굴게 돌돌 말아올린 아나구를
구수한 쌈장에 오돌오돌 독하게 씹어돌리고
남은 뼈 속 수액까지 탈탈 털은
붉은 매운탕을 절실하게 들이키고
마요네스 뒤섞인 양배추를 양볼 가득 바스락거릴 때
왜 사냐고 다시 물으면
왜 사냐고 묻는 사람은
시간이 녹녹한 사람이라고 타박을 한다
결혼하지 않은 시인은 결혼한 아는 감독과 진동 앞바다의 바다횟집에서 회 한사라에 소주 한 잔 기울인다. 담배 생각이 난 그 감독이 밖으로 나와 노란 가로등에 앉는다. 시인도 뒤따라 나온다. 쪼그리고 앉아 담배 피우는 감독을 보니, 바로 옆 부둣가 귀퉁이에 낡은 배가 쪼그리고 앉아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찌나 그 둘의 모습이 비슷한지 일대일 대응이 이루어진다. 감독은 낡은 배이다. 감독이 앉아 있는 모습은 배가 정박해 있는 모습이다. 감독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배 주변에서 이는 포말이라는 물거품이 이는 것이다. 고독이 짙게 밴 감독은 녹이 덕지덕지 붙은 배이다.
험난한 바닷가에서 생존을 위한 조업을 마친 뒤 정박해 있는 낡고 홀로인 배 한 척! 살벌한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삶을 살아가던 도중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고독한 감독! 완전히 새로운 은유가 등장한다. ‘인생은 여행이다’, ‘시간은 돈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등은 오래되고 진부한 은유이다. ‘고독한 우리 아버지는 낡고 홀로인 배이다.’ 이것이 시인이 사용한 참신한 은유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 아버지가 담배의 힘을 빌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 모습은 조업 후에 쉬면서 거품을 일으키는 배와 비슷하다.
시인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감독에게 왜 사냐고 묻는다. 대한민국에 사는, 어쩌면 전 세계에 사는 대부분 아버지처럼 그 감독은 눈 뜨면 출근하고, 일 마치고 퇴근해 집에 오면 자식들의 등쌀에 고단하다고 대답한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직장에서의 업무와 가족부양이라는 업무가 동시에 주어진다. 직장의 업무는 아버지가 개인적 능력을 발휘해 자아를 찾는 수단이다. 가족부양의 업무는 순전히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따른 업무이다. 이 두 업무 중에서 중요성의 비중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아버지는 직장의 업무를 더 중요시하고, 어떤 아버지는 가족부양을 더 중요시한다. 물론 직장 업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그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니 그 두 업무는 동시 발생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감독에게는 두 업무는 어떤 관계일까? 그에게 있어, 직장 업무는 가족부양 업무에 종속되는 듯하다. 가족부양의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 가족부양의 무게를 버텨내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이 감독은 삶에서 고달픔을 느낀다. 그 고달픔은 직장에서의 업무 때문이 아닌 사춘기 두 딸의 등쌀에 따른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엄청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 외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의 모든 것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 주지만, 그런 행위도 어쩌면 나의 심적 평온함을 위한 것이지 순수하게 타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내가 결혼을 했고, 아들이 생겨 가정이 꾸려졌다. 이제부터 내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난 결혼하기 전부터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했다. 이 장르의 음반은 그 당시 수입 판으로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통 국내 앨범보다 3배 정도 더 비쌌다. 보통 15,000원 정도였다. 아기가 태어나 분유를 먹이는데, 아내가 분유를 사 오라고 해서 마트에 갔다. 분유 한 통이 15,000원 정도였다. 아내에게 물었다. 이 한 통이면 한 달 정도 먹냐고. 아내는 나를 비웃으며 1주일도 못 먹는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난 음반 구매를 멈추었다. 아기 분윳값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다 큰 아들이 소고기가 먹고 싶다고 집에서 구워 먹자고 했다. 아내도 자기 먹을 소고기도 사 오라고 했다. 아들을 위해서는 스테이크용으로 사 왔고, 아내를 위해서는 그냥 구워 먹기 좋은 두께로 된 소고기를 사 왔다. 아들은 자기가 스테이크 요리를 해서 옆에서 먹었고, 아내에게는 내가 직접 한 점씩 구워 따뜻하게 해서 아내에게 고기를 바쳤다. 난 무엇을 먹었을까? 어제 먹다 남은 돼지고기를 대충 데워서 먹었다. 그렇게 먹는데도 마음이 너무 편하고 흐뭇했다. 이것이 가족부양의 업무였다. 작년 말에 내가 받는 월급으로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의 돈을 가져다 쓰는데 그 돈도 간당간당한 수준이 되었다. 그 압박에 식구들에게 말도 못 하고 큰 압박을 받았다. 가족부양의 업무에 내가 짓눌린 것이었다.
왜 사냐는 질문에 가족부양의 삶이 고단하다고 말한 뒤, 둘은 다시 바다횟집으로 들어가 식사를 마저 한다. 아나구회를 구수한 쌈장에 찍어 먹는다. 뼛속 수액까지 다 뽑아낸 매운탕도 들이킨다. 마요네즈에 뒤섞인 양배추도 바스락거리며 먹는다. 이때 시인은 감독에게 왜 사냐고 다시 묻는다. 그러자 감독은 시인에게 한 방 먹인다. 왜 사냐고 묻는 사람은 시간이 녹록한 사람이라고 타박을 한다. 왜 사냐는 질문은 삶 자체에 별 의미가 없다. 질문은 언어이고, 삶은 그냥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삶의 90% 이상은 특별한 논리나 언어나 이성이 개입하지 않고 진행된다. 10% 정도 특별한 결정을 내릴 때만 차가운 이성과 언어가 개입한다. 언어나 이성과 관련된 인간의 뇌 부위를 인지적 통제 부위라고 한다. 이 부위는 전체 뇌에서 상대적으로 자그마한 전대상피질(ACC)과 전전두엽피질(PFC)이다. 뇌의 나머지 90% 이상의 부위는 우리 삶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삶에 대해서는 언어나 이성이 관여할 곳이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언어라는 질문을 개입시키면 어색하고 말문이 막히게 된다. 아버지로서의 감독에게는 이성 없이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도 바쁘다. 생각하고 따지고 할 시간이 없다. 그런 시간은 오롯이 삶 자체만을 위한 것이다. 가족부양의 업무라는 삶을 위해 감독은 하루하루 그냥 살아간다. 그런 삶의 존재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삶의 존재 이유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 아버지는 그 삶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것이 우리들 아버지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