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골프를 치고

근거리에서 꼼꼼히 삶 읽기

by 불비

남원에서 골프를 치고


아침 설눈에 흰 골프공은 보이지 않는다

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묻힌다

공이 똑바로 가지 않는다

하루라도 내가 나를 읽지 않으면

내 마음은 똑바로 가지 않는다


골프장 근처에서 남원 추어탕을 읽는다

제 몸의 모든 것을 갈아

누군가의 국물이 된다는 것이 놀랍다

생각에 짠네를 쭉 뺀

곤드레 나물처럼 몸이 맑아진다


골프 사람들과 보살 점집을 찾았다

여자로 헛물이 흐르고

재물로 헛꿈이 흐른다며

낄낄 깔깔 껄껄


저녁 무렵

남원 착한 한우집에 가서

몸뼈와 가장 가까운 늑간살을

앞뒤로 몸을 뒤집으며 굽는다

고단한 일상이 찰진 생고기처럼 찰지라고




근거리에서 꼼꼼히 삶 읽기


요즘 우리는 주변에서 빅데이터(Big Data)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빅데이터는 디지털 기기, 소셜미디어 등에서 생성하고 수집한 많은 양의 데이터를 말한다. 이런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비즈니스, 의료, 과학, 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향과 패턴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삶에서 이런 빅데이터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에 대한 빅데이터에 기초해서 알고리즘이 골라준 신발을 사거나 넷플릭스 영화를 본다. 내가 고민하고 생각해서 고른 물건과 영화가 아닌 기계가 골라준 것을 내가 구매하게 된다. 알고리즘이 나를 읽는 것이다. 이런 읽기는 원거리 읽기(distant reading)이다. 나를 멀리에서 대충 읽고서 나를 판단하고 나에게 물건을 추천한다. 난 그냥 이런 알고리즘의 읽기 방식을 믿고 따르게 된다.


우리 시인은 원거리 읽기에 일침을 가한다. 시인은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침 지인들과 남원에서 골프를 하러 갔다. 아침 설눈에서는 흰 골프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둘 다 흰색이라 구분이 잘 되지 않은 탓이다. 원거리에서는 그 두 색을 구분하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다면, 눈의 흰색과 골프공의 흰색은 미묘하게 구분이 된다. 근거리 읽기 전략을 이용한다면, 골프공을 제대로 보고 맞출 수 있어서 공이 똑바로 날아가게 된다. 내 마음 읽기도 비슷하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내 마음을 읽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빅데이터와 관련해 말하자면, 기계가 나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읽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내가 나를 읽지 않으면 내 마음은 똑바로 가지 않는다. 내 마음은 내 것이다. 내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좌지우지되지 않아야 한다. 하물며 내 마음이 인간이 아닌 기계의 손에 맡겨진다면 어떨까?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타인과 기계보다 나는 내 마음에 더 가까이 있다. 바로 나 자신만이 근거리에서 내 마음을 꼼꼼히 읽을 수 있다.


기계가 내 마음을 읽는 원거리 읽기를 통해 나오는 결과물은 ‘얕은 기술(thin description)’이다. 얕은 기술은 내 마음에 대한 맥락 등이 드러나지 않아 의미가 탈맥락화된다. 내가 근거리에서 내 마음을 읽을 때는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이 결과물로 나온다. 두터운 기술은 고유한 맥락이나 상황 조건과 함께 생생한 현장의 언어로 풍부하게 묘사한 것을 말한다. 이 시에서 두터운 기술의 결과물은 걸쭉한 남원 추어탕이다. 시인은 골프를 마치고 남원 추어탕을 근거리에서 읽고 두텁게 묘사한다. 추어탕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수십, 어쩌면 수백 마리의 미꾸라지가 각자 제 몸의 모든 것을 갈았다는 것이 보였다. 미꾸라지의 뼈와 살이 입에서 씹힌다. 미꾸라지의 몸을 시인의 몸속에 넣는다. 미꾸라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시인의 몸에 바쳤다. 이런 미꾸라지가 시인 몸속에 들어오니 시인의 생각도 쭉 빠지고 몸이 맑아진다. 맑아진 몸은 가볍고 동작도 민첩해진다. 두터운 추어탕 한 그릇이 시인의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인과 지인들은 두터운 추어탕 한 그릇 뚝딱 비우고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보살 점집을 찾아간다. 이들은 신탁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쯤 결혼할 여자를 만나는지, 언제쯤 재물이 들어올지가 궁금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을 내리는 장면이 하나 그려진다. 이 그림에서는 의자에 앉은 신탁과 그 신탁을 보조하는 여러 신전 가이드가 등장한다. 그들 앞에는 두 사람이 신탁을 받으려고 무릎을 꿇고 있다. 어떤 가이드는 환각 상태에 있는 듯한 신탁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있고, 뒤의 한 가이드는 오렌지색 노트를 들고 있다.

신탁.JPG 신탁

신탁의 예언은 이렇게 진행된다. 먼저 신탁의 예언을 받기 위해 온 사람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는 신탁에게 자신에게 닥칠 앞날에 대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질문을 한다. 이때 신전 가이드는 질문자의 감정 상태를 살피면서, 왜 신탁의 예언이 필요한지, 자신이 누구인지, 신탁에게 얻은 정보로 무엇을 할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신전 가이드는 이렇게 개인 정보를 확보하고서는 신탁의 횡설수설한 대답을 질문자에게 해석해 준다. 신전 가이드가 질문자에게서 얻은 정보는 빅데이터가 된다. 이런 빅데이터에 근거해 신탁은 관려된 대답을 내놓는다. 여기서 신탁은 기계에 해당하는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 내놓은 대답은 경향이고 패턴일 뿐이며, 원거리에서 읽은 것이므로 얕은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탁의 예언을 받은 질문자는 그 예언에 따라 앞으로 자기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 시인과 지인들은 현명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점집에서 얻은 정보가 얕은 것임을 알고 ‘낄낄 깔깔 껄껄’ 가볍게 웃어넘긴다.


아침에 골프도 한 게임하고, 점심에 골프를 마치고는 걸쭉한 추어탕도 한 그릇 했으며, 점집에서 가벼운 시간도 보냈다. 저녁이 되자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한우집을 간다. 소의 윤곽을 잡아주는 뼈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던 늑간살 부위를 주문한다. 우리의 전체 윤곽을 잘 유지하고픈 마음에서 늑간살을 주문한다. 소뼈는 먹을 수 없으니 그래도 소뼈에 가장 가까운 부위라도 먹어서 우리 몸의 윤곽을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단한 일상이 찰지도록 찰진 늑간살을 앞뒤로 뒤집어 구워 한 입 먹는다. ‘음~’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소고기의 질감을 느낀다. 시인과 지인들은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이렇게 이들은 멋진 휴가를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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