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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Jun 22. 2023

발을 다친 나의 테니스 경기

생활 속에 묻어 있는 나의 인문학

발로하는 테니스 경기 


테니스 동우회에 나가면 고수도 있고 초보자도 있다. 나는 초보자도 아니고 고수도 아니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먹는 양은 줄이지 못하니, 테니스라도 해서 몸을 유지하려는 테니스 애호가일 뿐이다. 물론 테니스는 재미있는 운동이다. 단식의 경우 2명이 네트를 중앙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서서 초록색 공을 네트 위로 넘기고, 정해진 라인 안에 그 공을 떨어뜨려야 하는 이 공놀이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4명이 참여하는 복식의 경우는 더 큰 사회적 무리가 형성되므로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테니스 경기를 관람하는 갤러리가 있다면 그 즐거움은 한층 더 증폭된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신나게 테니스를 했고, 주말 이틀은 푹 쉬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또 신나게 테니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부풀어 있었다. 지난주에는 다른 동우회에서 고수들이 방문해 주었다. 막걸리도 마시고 수육도 먹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 고수들의 공을 받는 것만으로도 우리 실력에 도움이 되었다. 고수들과의 경기 이후 갑자기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한 사람이 있었다. 내 술친구이기도 한 체육과 교수이다. 그 교수의 공이 너무 묵직하고, 옆으로 공을 쭉쭉 빼내고, 발리와 스매시도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었다. 고수들과 시합을 하면서 완전히 느낌이 온 것 같았다. 결국 우리 편은 그 교수가 속한 상대편에게 2게임 모두 처참하게 패했다. 그래서 오늘은 복수전을 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코트에 나왔다.


요즘은 학교에 테니스 붐이 불어서 테니스 하는 사람이 열 명이 넘는다. 예전에는 복식 인원도 구성하기 힘든 적도 많았는데, 이렇게 선수가 넘쳐나니 너무 뿌듯하다. 오늘은 네 시 정각에 네 명이 모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 편과 그 교수가 속한 상대편이 먼저 게임을 하기로 했다. 모두 적당하게 스트레칭으로 몸도 풀고, 랠리도 하면서 감을 잡고는 게임을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오 분이 지났는데, 갑자기 내 왼쪽 무릎에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움직일 때는 괜찮은데, 무릎을 구부리거나 옆으로 움직이는 스텝을 밟을 때 통증이 오는 것이었다. 결국 6 대 1로 우리 편이 졌다. 이렇게 그 교수 팀에게 복수하려는 나의 희망은 산산이 무너졌다. 


테니스 고수들이 초보자에게 하는 말이 있다. 테니스는 발로하는 운동이라고! 나 또한 나보다 초보인 사람에게 그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그 초보자에게 라켓 쥐는 그립 법과 라켓이 공에 맞는 타점 등 내 지식 수준에서 설명해 주곤 했다. 특히 내가 완전 초보자에게 강조하는 첫 번째는 공이 우리에게 치기 쉬운 곳으로 오지 않으니, 우리가 빨리 움직여 치기 좋은 위치로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강조하는 두 번째는 라켓과 우리 몸이 벽이라고 생각하고, 그 벽으로 날아오는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맞추어 앞으로 쭉 밀라는 것이다. 이때 공이 우리에게 정면으로 오면 빨리 몸을 옆으로 돌려 라켓과 우리 몸이 벽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 강조점은 라켓을 쥐고 있는 ‘손’이 아니라 ‘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늘 6 대 1로 우리 편이 진 것은 내가 발의 움직임을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발이 제대로 움직이질 못하니 손에 쥔 라켓으로 공을 제대로 맞힐 수가 없었다. 공이 나에게서 먼 곳으로 날아올 때 빨리 그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무릎의 통증으로 발이 묶여 그렇게 하질 못했다. 공이 나의 정면으로 올 때는 빨리 옆으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나의 스윙 자세가 아무리 좋고, 라켓의 면을 아무리 잘 활용하더라도 발이 묶이니 그런 손기술은 무용지물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게임을 하고 나니 우리 편뿐만 아니라 상대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극도 없고 흥미도 없는 게임을 하게 되어 좋은 테니스 경기가 되질 못 했다. 사회적 무리에서 나 하나의 역할이 엉망이 되니 그 무리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내 파트너는 물론이고 상대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모두는 빨리 무릎이 회복되길 바란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주관적인 전경-배경 조직     


유튜브에는 패더러나 조코비치, 나달 같은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포핸드나 백핸드로 공을 치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이 많이 있다. 테니스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런 동영상을 보면서 어떻게 라켓이 공을 맞히는지를 학습한다. 보통 우리는 라켓을 어느 정도까지 들고서 테이크백을 하는지, 라켓 헤드가 어디까지 내려오는지, 어느 지점에서 라켓이 공을 맞히는지, 라켓이 공을 맞히고 난 뒤 팔로우스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에 집중한다. 물론 테니스 선수의 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요소로 구성된 하나의 장면이 있을 때 그 요소들은 위상이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요소는 더 많은 관심을 받고, 또 어떤 요소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는 개념은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개념은 전경-배경(figure-ground) 조직이다. 전경-배경 조직의 기초가 되는 법칙을 이해하는 것은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주된 관심사이다. 에드가 존 루빈(Edgar John Rubin; 1886~1951)을 비롯한 그 이후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전경과 배경이 크기, 주변성, 대칭성, 병렬, 볼록함 같은 몇 가지 일반적인 모양 특성에 의해 지각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음 그림을 보자.

전경-배경 조직의 모양 특성

그림 (a)에서 ‘볼록함’의 특성에 따라 검은색 모양은 흰색 배경과 달리 조각별로 볼록한 경계로 제한되기 때문에 전경으로 지각된다. 그림 (b)에서 ‘작은 크기’의 특성에 따라 검은색의 조각은 전경으로 지각되고 흰색의 큰 조각은 배경이 된다. 그림 (c)에서 ‘대칭성’의 특성에 따라 검은색 모양은 대칭성을 이루므로 흰색 배경에 둘러싸인 전경으로 지각된다. 그림 (d)에서 ‘둘러싸임’의 특성에 따라 검은색의 둘러싸인 지역은 전경으로 지각되고, 둘러싸고 있는 흰색 바탕은 배경이다. 


이 네 가지 전경-배경 조직에서 검은색은 전경으로, 흰색은 배경으로 일관되게 지각된다는 점에서 이는 안정적인 전경-배경 조직이다. 이 경우에 전경은 배경보다 더 많은 주의를 받고 더 잘 기억된다. 이에 반해 불안정한 전경-배경 조직도 있다. 이런 조직은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전경과 배경은 보는 사람의 주관성이나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불안정한 전경-배경 조직은 다음과 같은 루빈의 잔(Rubin vase)에서 잘 나타난다.

루빈의 잔

루빈의 잔은 불안정한 전경-배경 조직으로서, 검은색이 배경일 때는 ‘흰색 잔’이 전경으로 지각되고, 흰색이 배경일 때는 ‘마주 보는 두 얼굴’이 전경으로 지각된다. 


다음 이미지도 불안정한 전경-배경 조직의 예이다.

야생동물과 나무

검은색 배경에서는 서로 마주 보는 흰색의 ‘야생동물 두 마리(고릴라와 사자)’가 전경이고, 흰색 배경에서는 검은색 ‘나무’가 전경으로 지각된다. 


안정적인 전경-배경 조직의 경우에는 전경과 배경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불안정한 전경-배경 조직의 경우에는 전경과 배경이 유동적이다. 불안정한 전경-배경 조직에 비추어 ‘발을 다친 나의 테니스 경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오늘 무릎을 다쳐 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테니스 경기를 하고 난 뒤, 나에게 있어서 ‘손과 발을 활용하는 테니스 스윙’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장면에서 손은 ‘배경’이 되고, 발은 ‘전경’으로 인식되었다. 


사실 실제로 테니스 경기를 할 때는 손이든 발이든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 그렇게 손이든 발이든 내 몸 부위를 의식하게 되면 지금까지 몸 기억으로 익힌 자세는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경기 중에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면서부터 나의 관심은 발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테니스 자세가 나올 리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난 지금 나는 테니스에서 손과 발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예전에는 이론적으로만 ‘테니스는 발로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발을 다치고 난 뒤에 테니스를 해 보니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이었다. 앞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테니스 자세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면, 나는 오늘의 경험을 살려 불안정한 전경-배경 조직에서 발을 전경으로 부각하면서 자신 있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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