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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Jun 11. 2023

감정은 몸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싱겁게 끝난 경기, 하지만!


나는 1주일에 거의 5일 하루에 2시간 정도 테니스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보다 살을 조금 더 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사실 테니스를 한다고 해서 살이 그렇게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 운동 후의 갈증 해소를 위해 집에서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허기진 배를 음식으로 과하게 채우다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올해 두 번째 그랜드슬램인 2023 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이 5월 28일부터 6월 11일까지의 경기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난 테니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단 한 경기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다. 그 경기가 결승전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유튜브로 하이라이트를 즐기는 야비한 테니스 팬이다. 한 경기가 짧게는 2, 3시간이지만 길게는 4, 5시간까지 진행된다. 그 시간을 모두 테니스 경기 시청에 투자하기에는 내 시간이 조금 아깝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정말 기대되는 경기가 성사되었다. 그 경기는 세계랭킹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와 세계랭킹 3위이자 그랜드슬램 22회 우승자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의 롤랑가로스 남자 단식 준결승이었다. 2023년 6월 9일에 경기가 열렸다. 이번에도 난 그다음 날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그 경기를 시청할 계획이었다. 어떤 유튜브 영상은 승자의 얼굴만 첫 화면에 나오면서 그 경기 결과를 바로 알게 해주지만, 내가 찾은 이번 영상은 누가 이겼는지 첫 화면을 통해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전체 경기를 보는 느낌으로 1세트부터 보기 시작했다. 

알카라스와 조코비치

나는 조코비치 팬이지만, 이 경기에서는 알카라스가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회전부터 8강까지 알카라스의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보면 감탄사밖에 나오질 않았다.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체력과 움직임을 보면 알카라스는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네트 바로 앞에 떨어지는 상대 선수의 멋진 드롭샷을 서비스 라인 한참 뒤에 있다가도 달려와 받아넘겨 포인트를 얻기도 하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주는 상대 선수의 포핸드와 백핸드 샷을 끝까지 다 받아넘기면서 결국 위닝 샷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그의 체력과 움직임은 거의 신의 경지였다. 물론 질식 수비와 안전하고 자신감 있는 경기 운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조코비치도 기술, 체력, 움직임 면에서 최고 정상급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조코비치(36세)보다 16살이나 어린 알카라스(20세)의 체력이 이번에는 더 좋아 보였다. 


알카라스와 조코비치는 1세트와 2세트에서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펼쳤다. 특히 알카라스는 네트 바로 앞에 떨어지는 드롭샷부터 양쪽 복식 사이드라인을 벗어나는 샷, 키를 넘겨 베이스라인 끝에 떨어지는 로브까지 모든 공을 받아내며 뛰어난 체력과 움직임을 통해 극강의 수비력을 보여줬다. 결국 1세트는 조코비치가, 2세트는 알카라스가 승리를 가져갔다. 그런데 알카라스는 2세트 후반부터 팔의 불편함을 느끼며 연신 손을 쥐었다 펴거나 팔을 터는 동작을 반복했다. 3세트 2번째 게임이 끝난 직후 알카라스는 다리에 경련이 오며 절뚝거렸고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이어가지 못해 게임 페널티를 받아 그대로 게임을 내줬다. 알카라스는 3세트와 4세트를 모두 6 대 1로 내주면서 세트 스코어 3 대 1로 조코비치에게 패하게 되었다. 패배의 원인은 당연히 3세트부터 왔던 다리의 경련이었다. 기대했던 경기가 조금 싱겁게 끝이 나서 아쉬웠지만, 어린 알카라스에게 큰 연민이 느껴졌다. 


알칼라스는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육체적으로’ 정말 좋은 상태로 경기에 나섰지만, 1세트와 2세트의 경기 강도가 너무 높아 2세트 말미에 팔에서 ‘경련’이 시작되었고, 3세트 초반에는 다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경련이 왔다고 밝혔다. 알카라스는 경련의 원인이 극심한 ‘긴장감’ 때문이었고, 그 긴장감의 원인은 상대가 테니스계의 전설인 노박 조코비치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감정과 몸 부상의 상관성     


긴장이라는 ‘감정’과 경련이라는 ‘몸 부상’의 상관성이 너무 가슴에 와닿아 알카라스의 인터뷰를 보는 내내 마음이 미어져 왔다. 운동 경기에서 몸을 다쳐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물러나 슬픔이나 우울의 감정을 선수들이 느끼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축구선수가 갑자기 다리 경련이 와 경기장에 더러 누우면서 손으로 땅을 치며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는 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슬픔과 분노라는 감정이 결과로 나오는 경우이다. 하지만 알카라스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긴장감이라는 감정이 원인이 되어 몸 부상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긴장이라는 감정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긴장 등의 감정은 뇌의 다양한 영역이 함께 작용하는 복잡한 경험이다. 뇌는 어떻게 긴장의 감정을 처리하고 생성할까? 종종 감정의 뇌(emotional brain)라고 불리는 변연계(limbic system)는 감정을 생성하고 조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변연계 내에서, 편도체, 해마, 시상하부를 포함한 몇 가지 주요 부위가 감정 처리에 관여한다. 편도체(amygdala)는 변연계 안에 있는 작은 아몬드 모양의 구조로 긴장을 포함한 감정 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편도체는 감각 정보를 수신하고 지각된 위협이나 위험을 신속하게 평가한다. 상황이 잠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되면 편도체는 생리적·감정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편도체가 잠재적인 위협을 감지하면 코티솔(cortisol)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방출 등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특히 코티솔은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물질로서, 근육의 긴장을 촉진한다. 이 생리적 반응은 신체가 행동할 준비를 하고 긴장의 경험을 강화할 수 있다. 전전두피질, 특히 내측 전전두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은 긴장을 포함한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하지만 긴장이 고조될 때는 이 부위가 활동하지 못하게 되면서 효과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인간의 뇌 구조

조코비치라는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 직면한 알카라스는 긴장이라는 감정이 극도에 이르면서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알카라스의 팔과 다리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결국 전신 경련이라는 부상을 당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감이 생겼을 때 이성을 관장하는 전전두피질이 제대로 활동했다면 알카라스는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알카라스를 포함해 평범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을 느낄 때 과연 이성을 잘 발휘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정상적이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상황에서도 쉽지 않다. 수업 중에 잠이 올 때 이성적으로는 잠을 자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전전두피질은 잠이라는 생리적 반응에 결국 무너진다. 알카라스가 그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기를 포기했더라면 코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방출이 줄어들고, 전전두피질도 제대도 작동하여 경련의 부상을 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스트레스 상황에 계속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성의 힘은 결국 발휘될 수 없었다.


몸과 뇌의 연결     


뇌에서 발생한 긴장이 몸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몸과 뇌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목을 중심으로 그 위에는 뇌가 자리 잡은 머리가 있고, 그 아래에는 팔과 다리가 붙어 있는 몸이 있다. 머리와 몸의 경계선이 막연히 목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어느 지점이 그 경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뇌와 몸을 구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냥 우리의 전체 몸 안에 폐와 심장 등의 기관과 소화관, 뼈처럼 뇌도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의학을 목적으로 신체 부위를 분리할 뿐이지, 일상에서는 그냥 모두 몸이다. 그리고 우리의 신체 부위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팔과 다리 등의 부상(몸)이 슬픔이나 분노의 감정(뇌)을 유발하고, 그 역으로 긴장이라는 감정(뇌)이 팔과 다리의 경련이라는 부상(몸)을 유발하는 것이다. 


흔히 철학에서는 마음과 몸을 구분한다. 마음은 추상적이고 몸은 구체적인 물질 덩어리이다. 합리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고차원의 이성이라고 한다면, 그 마음도 사실은 우리 몸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 중에서 전전두피질이라는 한 작은 부위에서 발생할 뿐이다. 그 전전두피질의 작용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마음이 추상적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추상의 개념을 가시성의 개념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몸은 구체적일까? 물론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눈으로 볼 수 있으니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 신체 내부의 부위는 볼 수 없다. 최신 의학 장비를 사용하면 일부 부위를 볼 수는 있다. 위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을 하면 의사는 그 부위를 눈으로 보면서 진단한다. 하지만 의사가 보는 위나 대장의 부위는 겉모습일 뿐 위와 대장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의사가 보는 신체 부위도 비가시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100% 구체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런 장비가 없는 우리에게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막연하고 추상적인 존재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냥 자연스럽게 움직일 뿐이고 살아갈 뿐이다. 


알카라스도 사람이다. 알카라스도 우리처럼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없다. 긴장감이 극도로 생기고, 그로 인해 전신 경련이라는 부상을 입은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다. 나는 알카라스가 이번 경기에 대해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알카라스는 전신 경련으로 제대로 뛰기 어려웠지만,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뛰었다. 이 점에서 알카라스는 어린 나이이지만 위대한 사람이다. 만약 자기의 긴장과 부상에 대해 자책했다면 그는 경기를 끝까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알카라스는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그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다. 그 상황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인간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지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다.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알카라스에게도 있었을 뿐이다. 나는 이번 경기를 통해 조코비치의 팬이지만 알카라스의 팬도 되었다. 인간의 감정이 우리에게 기뻐서 춤추게도 하지만 우리의 몸을 울게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 알카라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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