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요일 아침만 되면 네이버에서 ‘UFC’를 검색한다. 거의 일요일마다 UFC 경기가 열리는데, 이번 주에는 어떤 경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번 주의 메인이벤트 등 다른 경기들도 체크한 뒤, 저녁이 되면 안마의자에 앉아 유튜브를 통해 그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이 나의 주말 일상 중 하나이다. 이번 주 UFC 경기는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 내가 기다리던 경기였다. 그 경기는 2023년 8월 26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UFC on ESPN 52’에서 정찬성 대 맥스 할로웨이의 메인 이벤트이다. 사실, 나는 이 경기가 일요일에 열린다고 생각하고, 27일인 일요일 아침에 네이버 검색을 했다. 그런데 경기가 어제 열렸던 것이다. 바로 유튜브에 들어가니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올라와 있었다.
상대 전적을 보면 정찬성 선수가 승리하기란 조금 어렵지 않을까 나름대로 예상했다. 그래도 난 코리언 좀비 정찬성의 팬이므로 그가 승리해 주길 바랐다. 정찬성의 모든 경기에는 승패와 상관없이 정찬성의 혼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더욱 그의 경기에는 애착이 갔다.
경기를 보는 내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찬성은 1라운드에서 할로웨이에게 펀치를 몇 차례 적중시켰지만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2라운드에서 정찬성은 정타를 맞고 휘청한 뒤 쓰러지자 할로웨이가 초크를 걸었다. 사실 초크에 너무 완벽하게 결려서 정찬성이 빠져나오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찬성은 탭을 하지 않고 버틴 뒤 할로웨이의 한쪽 다리를 잡고 일어나 빠져나왔다. 이 과정에서 체력을 소진한 정찬성은 스탠딩 상태의 타격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정찬성은 3라운드 시작과 함께 거칠게 펀치 러시를 퍼부었다. 3라운드에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하지만 할로웨이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정찬성이 들어오는 순간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꽂았다. 정찬성은 그대로 고목나무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졌고 심판은 그대로 경기를 중단시켰다. 이렇게 정찬성은 3라운드 23초 만에 KO 패를 당했다. 경기 후 할로웨이는 패배한 정찬성을 안아주면서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는 정찬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관중들에게 정찬성에게 환호해 주길 요청하면서 그를 진정한 레전드라고 불러주었다.
UFC 해설을 맡은 마이클 비스핑이 경기 후 할로웨이와 인터뷰를 하고, 이어서 정찬성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회자 비스핑은 정찬성에게 너무 수고했다고 말하고서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느낌인지 소감 한마디 부탁했다. 정찬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만할게요. 나 이거 나 울 줄 알았는데 눈물이 안 나네요. 내가 그만두는 이유는 저는 챔피언이 목표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할로웨이를 진심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후회 없이 제가 준비해 봤어요. 저는 3등, 4등, 5등 하려고 격투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하는데 위에 탑 랭커들을 이기지 못하는 건 제가 냉정하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정찬성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은퇴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후 정찬성은 글러브를 벗고 글러브에 절을 했다. 쉽게 일어서지 못한 정찬성은 이내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정찬성의 인터뷰 내용 중에 나를 휘어잡은 단어가 있었다. ‘냉정’이었다. 정찬성은 경기 전과 경기 중에 계속 주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생각을 하므로 할로웨이가 대단한 선수이긴 하지만 그를 이길 수 있다고 ‘뜨겁게’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자 그는 바로 뜨거운 주관성을 버리고 차갑고 냉정한 객관성으로 돌아갔다. 자신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채 경기를 한 뒤, 경기에 패하면서 자신 속에서 나와 자신과 약간 거리를 두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러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니 자신은 더 이상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자신은 2등, 3등, 4등이 아닌 1등이 되고 싶은데, 객관적으로 봐서 1등이 될 수 없으니 은퇴를 선언했다. 이러한 은퇴 선언은 주관성이 객관성으로 자리를 양보한 결과이다.
우리 인간은 어느 정도의 주관성이나 객관성을 갖고서 실체나 상황을 해석한다. ‘안경’의 예를 통해 주관성과 객관성을 설명해 볼 수 있다. 안경을 벗고 그것을 손에 쥐고 안경 자체를 바라본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안경이라는 실체에 대한 관찰자의 지각은 최대의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 즉, 안경이라는 실체는 지각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 대상으로만 기능한다. 반면에, 안경을 쓰고 다른 사물을 지각할 때는 안경이 관찰자의 의식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 경우에 안경에 대한 관찰자의 지각은 최대의 주관성을 가지게 된다. 즉, 안경은 지각 주체로만 기능한다.
요즈음 정치인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어떤 비리 현장이 발각되어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다. 물론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는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자신은 문제가 있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 것이고, 그 부분이 대중에게 노출되었기 때문에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부끄러움은 안경의 예에서 보면 오른쪽 그림에서의 안경이다. 부끄러움은 자신 속에 숨겨져 있는 주관적 감정이다. 숨겨져 있는 주관성은 가시적이지 않으므로 당사자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끝까지 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그냥 그곳에 평생 있게 된다. 즉, 이런 정치가는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영장류이므로 원래 주관적 존재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이다. 하지만 20살이 넘은 성인에게는 자기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다른 사람과 주변 상황이나 사건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이성적 능력을 관장하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PFC)이 완성하게 발달한다. 정상적인 성인에게는 이 부위가 있으므로 자신에 관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안경의 예에서 보자면, 정찬성은 오른쪽 그림에서처럼 안경을 쓰고 있다가, 전전두피질을 동원해 왼쪽 그림처럼 안경을 벗어서 그 안경을 보면서 평가하는 것이다. 주관성이 객관성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결국 이성의 힘인 전전두피질이 동원될 때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정치가들은 이 부위를 동원하지 않는다. 이 부위를 동원해 자기 속에 있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밖으로 꺼내어 자신과 거리를 둔 채로 그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부끄러움을 자기 눈으로 보면서 반성하는 그다음 행위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정찬성 선수는 주관적인 자신의 능력을 밖으로 꺼낸 뒤 그것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주관적 능력치를 눈으로 보면서 그것을 평가한 뒤 은퇴 선언을 하는 그다음 조치를 취한다. 정찬성과 같은 사람을 보면 우리는 감동한다.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자신의 주관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의 객관적 능력치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냥 그 객관적 능력치를 우리의 주관성 속에 집어넣고 그냥 정찬성이라는 인간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떨리고 전율을 느낀다. 나는 이런 사람을 ‘거인’이라고 부른다. 정말 오랜만에 거인을 봐서 아직도 몸에서 전율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나에게 이런 느낌을 준 정찬성 선수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도 이제 정찬성이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나를 한 번 더 들여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