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비 Aug 10. 2023

어색한 라디오 방송 출연

월요일(2023. 8. 7) 오후에 마산 MBC 〈아침에 행진〉(2023. 8. 9)에 출연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에 출간한 내 번역서 《생각을 기계가 하면, 인간은 무엇을 하나?》의 책 내용도 소개하고, 인공지능과 ChatGPT에 대한 내 의견 등을 묻고 이에 답하는 인터뷰식으로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7월 17일부터 1주일 동안 MBC 경남 라디오 연중캠페인 〈관용은 있다〉에 50초 분량으로 내 목소리를 출연시킨 경험이 있었다. 같은 방송국이다 보니 나에 대한 정보가 공유된 것 같았다. 책 소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방송 출연 제안이었다. 나는 출연 의사를 밝히고, 수요일 아침 8시까지 방송국에 가기로 했다.


15분 동안 인터뷰할 내용은 내가 정리를 해야 했다. 질문과 답변을 작성해서 방송국에 주면, 사회자가 적절히 질문하고 나는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월요일 오후에 연락을 받았고 방송은 수요일이므로, 하루하고 반나절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책 내용을 소개하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청취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책 내용을 요약해야 하니 말이다. 다행히 최근에 브런치에 올린 글 두 개가 생각이 났다. 〈기계가 생각은 하지만 관용은 베풀 수 있을까?〉(7월 10일)과 〈ChatGPT와 인공지능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7월 12일)가 그 두 글이었다. 이 두 글을 다시 읽으면서 질문과 답변의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남은 오후가 끝날 무렵 초고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15분짜리 분량이라 많은 시간은 아닌데도, 라디오이긴 하지만 그래도 방송 출연이라는 생각에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간이 나도 모르게 투자가 된 것 같다. 방송국에서는 원고 작성해서 그대로 읽어도 되니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원고만 잘 작성하면 큰 걱정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초고가 완성되니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 


화요일 아침부터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강의의 경우 전달할 내용을 암기하거나 적은 자료를 그대로 읽으면 그 강의는 듣는 사람에게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다. 원고를 읽으니 어색한 데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원고를 다시 다듬고 다듬는 작업을 화요일 내내 중간중간 시간을 내어 계속해 나갔다. 어쨌든 수요일 현장에서는 원고를 최대한 적게 보면서 구어체로 원고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일인 수요일 아침에 준비한 원고를 한 번 더 읽고 차를 몰고 방송국에 도착했다. 방송 시간은 오전 7시부터 9시까지이고, 난 중간에 특별출연자로 참여하면 되었다. 이미 여성 기상캐스터가 헤드폰을 쓰고 사회자와 방송 중이었다. 자기 분량을 마치고 나가는 기상캐스터가 너무 부러웠다. 이제 내가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PD가 들어가도 된다고 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사회자는 김재영 씨인데, 그는 ‘김군’이라는 불명으로 불렸다. 김군은 편하게 원고도 보면서 하면 된다고 했다. 큐 사인이 들어왔고, 김군이 나를 간단히 소개해 주면서 시청자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내 소개를 하면서 본격적인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그런데 내 소개가 끝나면서부터는 방송 내내 원고를 볼 시간도 없었고 또 볼 필요도 없었다. 김군이 질문을 적절히 해 주었고, 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했다. 시간이 얼마가 지난 줄도 모르고 말을 하고 있는데, 김군이 마지막 질문이라고 하면서 마무리할 시간임을 암시해 주었다. 마지막 질문까지 답변하고 인사로 마무리하면서 스튜디오를 나오는데, 방송 시작 전에 김군이 듣고 싶은 음악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해서 말해준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트록(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인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ime’이었다. 나는 그 음악의 배웅을 받으면서 편안한 기분으로 방송국을 나오게 되었다. 


사실 라디오 방송이니 난 목소리만 나간다고 생각했다. 전날 아내가 어떤 옷 입고 갈 거냐고 묻길래, 어차피 라디오 방송이고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농담으로 면도도 안 하고 반바지에 대충 입고 갈 거라고 했다. 그래도 난 방송국 사람을 만나니 면도도 하고 나름 깔끔한 옷으로 골라 입고 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보이는 라디오 개념으로 유튜브로 스트리밍되는 것이었다. 속으로 정말 면도도 안 하고 옷도 대충 입고 갔으면 큰일 날 뻔했겠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다. 

김군의 아침의 행진

방송국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타는데 바로 카톡이 하나 왔다.   

조현일 선생의 문자

조현일 선생은 현재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중으로, 인지과학이라는 이론적 패러다임으로 동양철학을 해석하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 둘 다 오래전부터 같은 이론에 심취해 있는 상태라 연락을 자주 하면서 지내는 사이이다. 방송 하루 전에 내가 작성한 대본을 보내주면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특히 내 원고에서 언급한 “인공지능이 처음에는 인간의 인지와 지능을 모방해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지와 지능을 이해하는 수단이 된다”는 내 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추가 의견을 주었다. “《뇌과학의 모든 역사》(메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2021)라는 책에서 그리스 시대 이후부터 인간은 그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기술에 인간을 비유하는 인간에 대한 은유적 사유를 했다고 합니다. 20세기 중반에 인간을 컴퓨터에 비유했고, 그것이 1세대 인지과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 인간과 AI를 연구하는 것인 AI라는 신인류에 관한 연구이기도 하지만, 현생 인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이 곧 AI인 거 같기도 합니다. 즉, AI는 현생 인류에 대한 은유적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소개하지 않는 용어이지만, ‘인지적 인공물’에 대한 좋은 예로 “기억을 도와주는 클라우드, 계산하는 행위를 도와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을 도와주는 ChatGPT 같은 생성형 기반의 AI 기술”을 제시해주었다. 이런 교류를 했던 조현일 선생이 방송을 듣자마자 바로 카톡을 보내 나를 응원해 준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조현일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조현일 선생이 말한 ‘소라게와 거미 비유’는 7월 12일에 브런치에 올린 글인 〈ChatGPT와 인공지능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에 잘 나와 있긴 하지만, 간단히 설명해 드린다. 소라게는 버려진 소라껍데기를 찾아 그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다가 덩치가 커지면 기존의 소라껍데기를 버리고 밖으로 나와 잠시 취약한 채로 지낸 뒤 다시 더 큰 소라껍데기를 찾아 그 안에 들어가 생활한다. 거미의 경우, 거미집 없는 거미는 생각할 수 없다. 거미는 거미집과 한 몸이 되어 생활한다. 소라게와 거미 같은 생명체는 소라껍데기와 거미집 같은 도구가 없으면 생존을 할 수 없을 만큼 약한 생명체이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반드시 도구를 개발하거나 찾아서 사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런 유기체는 그런 도구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육체적으로 취약한 것은 이런 유기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도 도구로서의 과학이 필요하다. 그런 도구는 선사시대인 우리의 먼 조상이 약 100만 년 전에 사용했던 주먹도끼가 될 수도 있고, 소크라테스가 우려했던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자연인이 사용하는 톱이나 칼일 수도 있고, 브런치 작가들이 매일 곁에 두고 사용하는 노트북일 수도 있고, 현대인들 모두 곁에 없으면 걱정하고 심지어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하는 스마트폰일 수도 있고, 최근에는 ChatGPT나 인공지능일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은 우리 인간 정체성의 한 부분이므로, 이 부분을 억지로 무리해서 우리에게서 떼어 낼 수는 없다. 이런 기술은 우리의 확장된 인지 또는 분산 인지이다. 기술을 떼 내는 것은 우리 살점을 몸에서 떼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런 기술은 받아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몸이자 우리의 뇌이다. 인간이 몸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리의 뇌를 우리 몸에서 분리할 수 없듯이, 우리는 기술을 우리에게서 분리할 수 없다. 


참으로 어색하고 불편한 방송이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마치고 나와서 지금은 마음이 가볍다. 오늘 저녁에 비도 오고 하니 집에서 삼겹살에 가볍게 증류주 한잔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이벤트 없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련다.

작가의 이전글 감정적 강의를 위한 강의자의 희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