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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Apr 11. 2023

실천과 지식으로서 영어학습

지금은 영어학습을 위해 반드시 영어권 나라로 어학연수를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해당 문화권에서 직접 그곳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영어를 체험하면서 학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Corona Virus Disease-19) 같은 팬데믹 사태와 경제적인 이유로 어학연수를 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영어를 공부하고 싶을 것이고, 영어학습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학생들은 최근의 인터넷 등의 IT 발전으로 영어학습을 위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영어학습 방법을 어떻게 활용하고 실천하느냐이다.


인터넷이나 IT를 활용한 영어학습! 이제 이것은 상식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예전부터 많이 활용되었던 무비 잉글리시(Movie English)이다. 영화를 활용한 영어학습 방법은 최근에 넷플릭스(Netflix)라는 매체를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를 학습하기 위해 이제는 영화관에 가거나 영화 DVD를 구매할 필요는 없다. 월 일정 금액을 내면 집 안팎 상관없이 어디서든 영화를 보면서 즐길 수도 있고, 그 영화를 통해 영어학습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떻게 영화를 통해 영어학습을 하냐는 것이다. 영화 선정은 주관의 문제이다. 영화 선정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따져보거나 현 상황에서 봐야 할 영화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면 된다. 


영화를 한 편을 선택하면 영화를 통한 영어학습의 1단계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2단계는 영어학습을 위한 영화 대본과 자막을 준비하는 것이다. 영화 대본은 https://www.scripts.com/에서 구하고, 영어 자막은 Subscene(https://subscene.com/)에서 구할 수 있다. 3단계는 영어의 4가지 기술인 읽기(Reading), 말하기(Speaking), 쓰기(Writing), 듣기(Listening)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 3단계는 대략 1주일 정도 생각하고 시도하면 된다. 즉, 1주일에 영화 한 편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주일 동안 이 단계를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 보자. 이 3단계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듣기이다. 처음에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집중하며 영화를 보면서 듣는 것이다. 이때는 자막 없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2, 3회 정도 무자막으로 듣기를 한 뒤에는 영어 자막을 보면서 듣는 작업을 한다. 영어 자막을 보면서 무자막으로 들었던 내용을 순간순간 확인해 볼 수 있다. 듣기 다음으로는 대본을 출력해 이른바 한국에서 가장 많이 대중화되어 있는 읽기를 한다. 영화 대본을 꼼꼼히 읽으면서 단어와 숙어, 문법 등을 고려해서 전체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는 것이 읽기 단계이다. 그런 다음 내용이 완전히 숙지가 되면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쓰는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화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매개체로 나의 영어 실력을 향상하며 아울러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의 것이란 바로 나의 글이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글이 완성되고 내 생각이 완성되면, 이 생각을 같은 영화를 본 2, 3명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공유 방법은 이들과 함께 하는 영어 토론이다. 즉, 영어 말하기이다. 나의 글과 내 생각은 주관성(subjectivity)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영어 토론을 통하면 그것은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되어 어느 정도의 객관성(objectivity)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3단계를 다 거치고 나면 학습한 자료를 한글 파일로 정리를 하거나, 아니면 학습한 대본과 쓰기 자료를 파일에 관리해 자기만의 것으로 확실히 굳히는 작업도 이어져야 한다. 


요즘은 빅데이터와 코퍼스, 통계 등이 학문에서 주목받고 있고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것은 문학자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 1950~ )가 기계 도움을 받는 자동 텍스트 분석을 가리키기 위해 만든 “원거리 읽기(distant reading)”와 일맥상통한다. 모레티의 “원거리 읽기”는 사회학자 클리포더 기어츠(Clifford Geertz; 1926~2006)가 사용한 “빈약한 기술”(thin description)과 비슷하다. 빈약한 기술이란 사태의 고유한 문맥과 상황적 조건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사태의 의미가 탈맥락화되어 있고, 행위자의 의도나 전제 등에 대한 치밀한 기술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이에 상반되는 용어는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이다. 이는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그 고유한 문맥이나 상황 조건과 함께 가능한 한 생생하고 구체적이며 현장의 언어로 치밀하고 풍부하게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를 통한 영어학습은 “두터운 기술”이고 “근거리 읽기(close reading; 꼼꼼히 읽기)”에 해당한다. 두터운 기술과 근거리 읽기는 결국 실천(practice)이다. 앞서 제시한 영화를 통한 영어학습의 3단계는 보기만 봐도 멋지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영어학습 전문가들이 내놓은 무비 잉글리시 학습법도 있을 것이다. 어느 방법이 맞느냐가 아니라 이런 방법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영어학습자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영어가 잘 안 들리고, 해석이 잘 안 되며, 영작이 어렵고, 말하기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지식(knowledge)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영어가 잘 안 들리는 것은 상대가 말하는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기 때문이고, 영어가 잘 읽히지 않는 것은 물론 단어나 구조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내용의 글이기 때문이며, 영작이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없고 쓸 말이 없기 때문이고, 말이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영어학습은 지식의 문제이다. 인간은 알면 표출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동물이다. 물론 겸손해서 말을 아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을 아끼는 것은 의식적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지식에 대해,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이며 힘이 들어가지 않은 인간 행동은 많이 알면 어떻게든 표출한다는 것이다. 영어의 4가지 기술이 잘 안 되는 것은 해당 영어 내용에 대한 지식의 결여 때문이다. 

《그레이하운드》

2020년에 개봉된 《그레이하운드》(Greyhound)라는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전쟁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영어로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더 구체적으로는 독일 잠수함 유보트(U-boat)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유보트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유보트는 대서양전쟁에서 이기고 있었고, 영국은 결국 해외에서 공급되는 물량이 끊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졌다. 전쟁이 끝난 후 처칠은 “전쟁 중에 정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유보트 위험뿐”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이는 아주 간단한 지식이다. 그런데 지식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즉, 지식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지식(meta-knowledge)의 차원도 영어에 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학습에서 활용할 수 있는 TED(https://www.ted.com/)는 각 분야 전문가의 강연을 모아 놓은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에서는 강연 주제가 무수히 많다. 과연 나는 이 주제 중에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 아는 내용의 영어 강연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 강연에 빠져들고 나도 모르게 영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 영어학습에 관해, 영어 내용에 대한 지식은 필수이고, 영어 자체는 부차적이고 우연적이다. 영어를 비롯한 언어는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고, 이런 좋은 수단을 얻기 위해서는 실천의 문제가 개입하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영어학습을 실천과 지식의 문제로 귀결 짓는다. 

유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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